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태현 May 21. 2023

이게 Z세대라면

모네스킨(Måneskin) 정규 3집 [RUSH!]

바야흐로 ‘MZ세대’라는 단어의 광풍이 어느 정도 사그라지고 ‘Z세대’라는 단어만이 자리를 잡고 있는 시대다. 알파벳으로는 XYZ를 모두 소진해 버렸기에 이제는 다음 세대는 알파(A)라고 불러야 하는 이 세대 묶기의 아집을 볼 때면 과연 세대를 구분 짓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과도기의 시점에 ‘Z세대’의 대표 밴드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등장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202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의 우승자 모네스킨(Måneskin) 되시겠다. 그간 다소 클래식한 음악들로만 국가대표가 뽑혔던 이탈리아에서 하드 록 장르인 ‘ZITTI E BUONI’로 승부를 본 만큼, 모네스킨은 자신들만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 하나만은 뚜렷했던 밴드였다.


사회학적으로 본다면 세대란 이렇다. 역사적이거나 문화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유사한 의식이나 태도를 가지게 된 집단. 하지만 ‘Z세대’라고 표현되는 집단의 유사한 태도라고 한다면 ‘서로가 완전히 다르다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게 유사한 태도냐, 아니면 전혀 다른 태도냐를 따지는 게 어려워진다. 그렇기에 이 시기부터는 '세대'라는 표현보다는 개인의 표현 방식이 더욱 집중받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모네스킨은 더욱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장 이 밴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도 없거니와, 이전에 등장했던 밴드와의 유사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본인들이야 라디오헤드나 레드 제플린, 해리 스타일스, 롤링 스톤스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영향을 받은 스타일을 하나로 묶어두면 ‘혼종’ 그 자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그들의 첫 영어 정규이기도 한 정규 3집 [RUSH!] 역시 영어와 모국어인 이탈리어 노래가 섞여있는 만큼, 과연 이게 ‘영어 정규’가 맞느냐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만든다.


허나 이런 혼란스러운 의구심이 들게 하도록 만드는 게 원래 모네스킨이 가진 정체성이었다면 정체성이었다.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도 거의 알몸을 연상하게 만드는 살색 의상을 입고 등장했고, 페스티벌 무대 위에서는 시종일관 여성 베이시스트인 빅토리아가 웃통을 벗고 연주를 하는 탓에 유튜브 영상도 제지당하기 십상이지 않나.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나아가서 아예 앨범 재킷부터 심상치 않다. 밴드의 멤버들이 누워서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의 도약을 바라보고 있는 부분이다. 스스로를 양성애자라고 밝힌 빅토리아만 웃음을 짓고 있고 다른 남성 멤버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금기와 자유의 그 중간 지점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하나로 묶어 표현하기 힘든 ‘Z세대’라는 표현처럼 혼란스러움만 가중된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뿐만이 아니다. 재킷에서 바이닐을 끄집어내 턴테이블에 꽂을 때면 더욱 뜨악하게 되기 때문. 라벨에는 아까 재킷에서 점프를 하고 있던 여성의 둔부와 팬티가 새겨져 있는데, 턴테이블에 고정해야 하는 홈이 참 부끄러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이 외설이냐, 예술이냐고 묻는다면 모네스킨은 당연히 발칙하게 웃으면서 예술이라고 소리칠 거라서 더욱 이들의 속내가 앙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모네스킨의 앙큼한 속내에도 첫 곡인 ‘OWN MY MIND’를 들으면 강력한 하드 록 사운드에 마음을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타이틀곡 ‘GOSSIP’은 톰 모렐로의 현란한 기타 연주와 함께 이제 이탈리아 뜨내기 밴드가 아닌 세계적인 밴드로 성장한 모네스킨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어지는 록이 아닌 팝에 더 가까운 세 번째 트랙 ‘TIMEZONE’까지 들어보면 이제 모네스킨은 대중성에 더욱 집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누군가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흡족해야 하는데 조금씩 정체성의 희석이 오는 것만 같은 아쉬움이자 아재의 걱정이랄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갑자기 네 번째 트랙 ‘BLA BLA BLA’부터 사이드 A의 마지막곡인 ‘DON'T WANNA SLEEP’까지 냅다 달려가는 에너지를 보면 아직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많겠구나라며 흡족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게다가 이제 사이드 B로 판을 돌릴 때, 다시 한번 이들의 음흉한 속내가 묻어 나오는 라벨 사진을 바라보면서 ‘그래, 얘들을 내가 어떻게 규정하겠어’라는 마음까지 들게 한다. 더군다나 열두 번째 트랙인 ‘MARK CHAPMAN’부터 ‘LA FINE’, ‘IL DONO DELLA VITA’까지 이어지는 이탈리아어 가사들과 이들의 에너지틱하면서도 서정성 있는 연주와 노래를 듣다 보면 ‘그래도 정체성을 지켰다’라는 안도감이 팍 밀려오는 거다. 도대체 한 앨범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들게 하는지, 태생부터 혼잡했던 이들을 바라보면서 안정감을 얻으려고 한 내 탓일까. 그래, 이게 정말 Z세대의 특징이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인정하게 되면 내가 질 것 같다는 아집. 그래서 마지막까지 악착같이 이들의 정규 3집 [RUSH!]의 판을 돌리고 있게 된다.

   

그러면 이제 등장하는 노래란 이들의 히트 싱글 ‘MAMMAMIA’ ‘SUPERMODEL’ ‘THE LONELIEST’다. 마지막 세 개의 곡을 자신들의 색채 가득하고 대중성 있다고 찬사 받은 곡들로 채워놓은 걸 보면 분명 인정 욕구는 있다는 것인데, 앨범은 ‘나는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아’라며 애써 쿨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이 앨범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만약 앨범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반항과 타협, 그리고 그 중간’이라면 극찬해야 할 것 같지만 그것이 아니라 ‘반항과 타협, 그 어디도 아닌’이라는 애매모호함이라면 내 평가도 애매모호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굳이 발매된 지 4개월이나 넘은 이 앨범을 이제야 리뷰하게 된 건, 여전히 모네스킨이라는 밴드가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들의 성장가능성을 엿보기 때문이리라. 그것도 아니라면 Z세대가 되지 못한 아재의 넋두리라든가, 혹은 월드투어에서 한국만 쏙 빠진 게 내심 아쉬운 팬의 마음일 거다. 만약 정말 이것도 아니라면, 다시 한번 자기들의 진정한 정체성인 이탈리아어로만 된 앨범으로 세계를 정복할 생각이 없겠느냐라는 번역될 가능성도 없는 ‘라떼’의 조언을 남기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찌질할 수밖에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