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joji) 정규 3집 [SMITHEREENS]
미련은 미련함이다. 무언가를 깨끗하게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붙잡고 있으려고 하는 우둔함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계속해 자신을 과거에 가둬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다. 물론 우리 스스로가 족쇄를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어디까지나 마음의 문제라는 거다. 그렇지만 쉽게 족쇄를 풀고 자유를 받아들이기까지, 끊임없는 미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음을 정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지금의 마음 상태를 받아들이냐의 과정이다.
조지(joji)의 정규 3집 [SMITHEREENS]는 이런 미련의 감정과 받아들임의 과정을 함께 담았다. 첫 곡은 ‘Glimpse of Us’다. 조지의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시작되는 발라드풍의 이 곡은 그야말로 미련 그 자체다. 현재의 연인과 함께하면서도 계속해 과거의 연인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혹시나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여느 이별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이어지는 ‘Die For You’에서는 ‘널 위해 죽을 수도 있다며, 아직도 널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잖아’라고 애절함이 더 커진다. 이미 사진을 태우고, 잊으려고 애써보지만 계속해서 머리에 박힌 기억들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서 감정을 커지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별이나 미련을 두고 시간이 흐르면 해결될 문제라고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양상은 달라진다. 계속해서 끌어안고 가느냐의 문제일 수도, 혹은 묻어두고 가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다. 과거의 인연과 끝이 난 상황은 직시하면서도, 여전히 커져가는 마음과 멈추지 않는 애정의 집착. 하지만 그 모든 걸 내려놨을 때의 자신을 감당할 수 없다는 불안함도 계속해서 우리를 갉아먹는다.
조지 역시 ‘Feeling Like The End’에서 이미 끝이 났음을 알지만, 여전히 놓지 못하는 감정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행복했을 때, 우리는 영원할 거라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이 결국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인지해야 하는 것. 말은 말일뿐이고, 우리의 상황 속에서 결국 그걸 인정해야 하는 쪽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조지는 ‘Before the Day Is Over’를 부른다. ‘너의 마음이 거의 다 떠나갔다는 건 알지만, 기다려 오늘이 지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여보내줘’라면서 애절하게 말한다. 사랑이 끝난 후 추락할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면서 관계를 붙잡으려 애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끝이 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무너진 후, 조지는 ‘Dissolve’에서 나는 아니지만 너는 행복한 삶을 계속 살아주길 바란다라는 말을 남긴다. 계속해서 고통 속에 빠져있는 자신이지만, 그러면서 너만은 아니기를 기원한다는 것. 미련보다 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자기 합리화의 시간. 내가 고통스러운 만큼,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등가교환의 지질함. 궁상이라면 궁상이고, 아련함이라면 아련함인 미련덩어리다. 그런 망령들이 결국에 자신을 부숴놓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가 반드시 온다. 완전히 추락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을 때다. 분명 사랑하면서의 행복한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 시간만큼이나 불행해진 나의 모습이 처량하다. 그 순간 정말 가치 있었던 상대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소중함을 찾는다.
이때부터 조지의 [SMITHEREENS]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NIGHT RIDER’부터 ‘BLAHBLAHBLAH DEMO’ ‘YUKON’ ‘1AM FREESTYLE’까지 조지는 이별의 상황을 완벽하게 직시하면서 결국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는다. 여전히 미련은 남지만 미련에 파묻히지 않고 가끔 추억을 떠올릴 뿐인 상황. 모든 감정이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끔 된 이 인물의 모습은 수많은 사랑과 이별의 풍경과 유사하다. 아니 어쩌면 이별 속에서 쿨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반사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쿨하지 못하다는 게 결국 찌질한 건 아니니깐, 그나마 정신승리를 하기 위해 ‘나의 사랑은 진심이었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게 아닐까. 진심 아닌 사랑이 어디 있다고. 다시 한번 그걸 강조하는 것 역시 찌질함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사랑 앞에서 찌질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것일까.
분명 [SMITHEREENS]는 이 감정의 솔직함을 제대로 담아내려 했다. 그래서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미련의 증폭이나 외로움의 증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이 슬픔의 증폭기를 찾는 이유는, 감정을 하나하나 보수하고 보완하는 것보다 한꺼번에 무너트리고 새롭게 감정을 쌓아가려는 효율성의 문제다. 시원하게 울고 끝내자. 지지부진하게 얕은 감정의 고리를 끌고 가는 것보다 한 번 시원하게 울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좋다. 이때 이별 선배가 쓴 [SMITHEREENS]를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 하지만 단점은 계속해서 이 노래를 주구장창 듣는 내가 미련덩어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24분 23초의 짧은 플레이 시간이 지나고 턴테이블의 바늘이 나머지 여백을 긁어대는 때, 여전히 미련하게 이 판을 돌리고 있는 나의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