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바다가 있고, 높디 높은 산이 있다. 산은 바다를 내려다보고, 바다는 산을 올려다보는 것만 같다. 그렇게 늘 산은 바다의 풍경을 감싸 안는다. 언제나 이 높은 산에서라면 저 광활한 바다를 다 품었다고 느낄 것만 같다. 하지만 이것은 산만의 착각이다. 실상 산은 저 넓은 바다를 다 품지 못한다. 반면에 바다는 산의 모습을 그대로 자신의 외면에 반사해 산을 품는다. 바다는 자신에게서 산의 모습을 띄우며, 그를 품는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바다가 품은 산의 모습 조차도 단 일면에 불가하다는 것을.
서래(탕웨이 분)와 해준(박해일 분)의 모습도 산과 바다 같다. 서로를 모두 알고, 품고 있는 듯 하지만 그것이 모두 착각이니 말이다. 바다와 같은 해준은 서래라는 산에 부딪히며 파도처럼 산산히 부서지고, 서래는 조금씩 자신이 침식되어감을 느낀다. 두 존재는 그렇게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고, 알지 못했던 존재의 이면과 더 커져가는 사랑에 의해 붕괴되어감을 안다.
바다의 사랑은 만조일 때, 마치 산의 비밀을 다 품고 숨겨줄 것만 같지만, 감정의 간조가 왔을 때는 너무나 처참하게 산의 비밀을 밝히려 한다. 해준 역시 바다와 같다.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찾게 해요"라고 모든 비밀을 품에 안을 것만 같게 해놓고, 결국 그 비밀을 언젠가는 드러내려 한다. 하지만 바다를 사랑한 산은 언제나 꼿꼿하게 서있다. 산은 바다를 다 품지 못하지만 만조일 때는 내 모습을 그대로 흡수하는 바다를, 간조일 때는 아무런 일 없다는 듯 너무 멀리 밀려나가는 바다를, 늘 바라본다. 그게 산의 운명이고, 서래의 운명이다.
그래서 산은 헤어질 결심을 한다. 바다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랑을 시작하는 산과, 산이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랑을 시작하는 바다의 질기고 지리한 운명의 싸움과 헤어지려 한다. 이제 산은 자신의 높이 만큼 깊은 웅덩이를 판다. 그리고 산은 그 웅덩이 속으로 바다와 함께 뒤엉키며 빨려들어간다. 늘 바다를 풍경 속에 품었던 것과 같이, 산은 바다의 깊은 심연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산이 사라진 바다는 '미결'된 사랑의 감정을 가진 채, 그 미련하고도 아련하며 씁쓸한 사랑을 이어나가야 한다. 산의 그 높은 높이만큼 깊숙하게 만들어져 버린 웅덩이들을 삼키면서, 이제는 정말 산의 비밀을 모두 품으면서, 이미 자신 속에 산이 묻힌 것도 모른 채로. 바다는 그 순간부터 산산히 부서지는 격정의 파도 없이 조용히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정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에도 바다의 속은 끊임없이 회오리치고 부서지고 있을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조차도 사랑임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