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중학교 1학년이던 나는 관성적으로 토요일 저녁 예능을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 당시 <놀러와>를 좋아했던 나는 편성이 변경된 지도 모른 채, <놀러와>를 보기 위해 MBC로 채널을 맞춰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TV에서는 촌스러운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한 유재석과 가운을 쓴 남성들의 모습만이 등장했다. 김원희는 온데간데없고, ‘무한’이라고 소리 지르던 유재석. 부랴부랴 신문지를 펴고 편성표를 확인하자, 편성표에는 오후 7시 <놀러와> 대신에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이 적혀있었다. 갑작스러운 <놀러와>의 폐지 소식에 놀랐던 나는 MBC에 항의 메일이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놀러와>는 편성을 바꿔서 다음 주 금요일 밤에 정상적으로 방송이 됐다.
<토요일> 속 코너였던 <무모한 도전>은 나와 첫 만남부터 삐걱댔다. 함께 출연했던 닥터노(지금은 노홍철이 더 익숙하다), 정형돈, 이정, 표영호는 사실 인지도가 크게 높은 상황도 아니었고, 황소와 줄다리기를 한다는 이상한 설정은 그다지 내 취향을 저격하지 못했다. 앞서 폐지된 <대단한 도전>의 아류처럼만 느껴질 뿐이었다. 특히 <놀러와>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었으니 그들의 줄다리기 고군분투가 마냥 즐겁게 느껴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고, <무모한 도전>은 불안함이 컸는지 이병진, 이켠을 새롭게 투입해 지하철과 달리기를 하는 기상천외한 미션에 돌입했다. <놀러와>의 개편 특집을 보고 앙심이 풀렸던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팔짱을 풀고 <무모한 도전>을 예능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 오리배를 타고 유람선과 대결을 하고, 동전 분류기와 동전 세기 대결을 하고, 컨베이어 벨트와 연탄 쌓기 대결을 하면서 <무모한 도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능이 됐다. 아직까지도 닥터노의 수다스러움에 대해 고통을 호소하면서 자양강장제를 외치던 차승원의 모습이 눈에 훤하다.
하지만 MBC는 분명 <무모한 도전>이 불안했을 터다. 계속해서 멤버의 변화가 생기고, 시청률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방영 6개월 만에 <무리한 도전>으로 개편을 시도했다. 하지만 개편 이후에도 성적이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실외에서의 체력적인 도전이 아닌 ‘머리가 문제’라며 퀴즈 프로그램으로의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모두 기억하겠지만 이 변화는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는 대변혁의 기점이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말하던 ‘오늘부터 확 바뀐다’라는 표어는 그대로 현실이 됐다.
그렇게 나는 <무한도전>이 종영하게 된 2018년까지,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들과 함께 토요일을 보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취업까지. <무한도전>은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존재였다. 평일에도 늘 <무한도전>을 켜두고 밥을 먹었고, 멤버들이 DJ를 맡은 라디오를 즐겨 들었으며, 가요제에서 등장했던 노래들은 항상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주야장천 틀리는 노래들로 자리 잡았다. 슬플 때는 ‘명수는 12살’ 특집을 보면서 웃었고, 아플 때는 ‘무한상사’ 특집을 보면서 웃었고, 내 꿈이 무너졌다고 생각했던 때는 ‘짝꿍’ 특집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조정특집’을 틀어놓고 있는 나는 부정할 수 없는 ‘무한도전 키드’다. 누군가는 폐지가 되고 4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왜 갑자기 <무한도전> 이야기를 쓰는지 의문일 것이지만,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4년이나 걸린 것 같다. <놀면 뭐하니?>가 <무한도전>의 부재를 채워줄 것 같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 인터넷에서 ‘없는 게 없는 무한도전’이라는 제목의 글을 볼 때마다 그리움은 더 커진다. 그래서 지금도 <무한도전>을 본다. <무모한 도전>이 처음 시작했을 때, 앙금을 품게 했던 <놀러와>에 대한 추억보다 <무한도전>의 추억이 더 귀중한 건 정말 아이러니다.
가끔씩 <무한도전>이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건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도 자신들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고, 나 역시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 그저 그들과 함께 <무한도전>이라는 추억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마침표를 찍는 시점을 ‘조정특집’ 속 정형돈이 외치는 ‘이지 오어’(easy oar)에 맞추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을 잠시 멈추고 다시 감정을 정리했다.
이 순간 멤버들은 힘차게 노를 젓고 있다. 출발 신호를 듣지 못해 늦게 출발하고, 노선을 잘못 보고 상대방의 레일을 침범하기도 한다. 심판정의 파도 탓에 고생하기도 하고, 상대들은 저 멀리 멀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를 젓는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나도 나의 삶 속에서 ‘무한도전’을 이어가고 있구나 생각한다. 이제 곧 정형돈의 외침이 들려올 시간이다. 그럼 나는 마침표를 찍을 테니, 다들 오늘도 ‘무한도전’하길 바라며 ‘이지 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