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1 혼자 사는 것의 외로움
은은한 조명의 불빛이 따스하고도 감성적으로 집에 내려앉았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다가 뻐근한 허리 탓에 침대로 옮겨 누워 마저 책을 읽어 나갔다. 당시 내가 자주 읽었던 책들은 철학서들이 다수였다. 아마 그때 내가 읽던 책이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었던 것 같다. 이미 한 번은 읽었던 책이어서 후루룩 책장을 넘기고 있다가 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책을 덮고 나는 베개에 오른쪽 뺨을 대고 누웠다. 주황색 전구의 불빛을 머금은 하얀 벽지가 보였다. 그리고 버릇처럼 나오는 한숨처럼 “아, 외롭다”라는 말을 내뱉었다.
‘심심하다’라든가, ‘배고프다’라든가, 버릇처럼 튀어나오는 말들이 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혼잣말이 꽤 늘었는데 이 말들이란 누군가에게 하는 말도, 내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건 단순히 공간의 적막을 깨기 위한 일상적인 행동 중 하나였다. 말을 할 때, 음을 넣어서 이야기하거나 그냥 혼잣말을 하는 어른들을 보고 깔깔 웃어댔던 과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나였다. 밥상을 차리면서 괜히 “밥 먹어야겠다”라고 말하거나, OTT에서 볼 예능을 고르기 위해 “오늘은 뭘 볼까나”라고 의미 없는 말들을 뱉어댔다. 매번 밥을 먹을 때는 <무한도전>을 틀어두는데, 굳이 “오늘은 뭘 볼까나”라고 한마디 해보는 거였다. “아, 외롭다”라는 말도 그런 경우였나. 아니다. 그건 뭔가 목 깊숙이 박혀있던 묵은 가래를 뱉는 것과 같이 개운하면서도 안쓰러운 느낌을 주는 문장이었다.
이건 단순한 문제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건 여자친구가 없어서야”라고 얘기해도, 나는 알았다. 이건 그런 차원의 외로움이 아니었다. 이건 이 공간에 혼자 있어서, 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 감정을 나눌 상대가 없어서, 가족들이 곁에 없어서, 뭘 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만 같아서, 밖에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도 결국 돌아와서 혼자이니깐 느끼는 외로움이 마치 하나의 무거운 철공으로 뭉쳐서 내 가슴팍을 누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벌써 서울에 올라오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때였다. 나는 갑자기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내 심장을 누르고 있는 이 외로움이라는 철공을 끌어안고 “외로워”라고 말하고 있었다. 한 단어로 간단히 얘기하자면 ‘청승’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난 늘 혼자였다. 이게 참 사춘기 소년의 오글거리는 문장 같지만, 정말 그랬다. 이건 부모님이 날 혼자 내버려 뒀다 같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부모님은 늘 내게 다정히 대해주셨고, 나 역시 그런 부모님 밑에서 굉장히 행복함을 많이 느끼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 ‘혼자’라는 건, 누구와도 내 생각이나 고민을 공유하기 힘들어서 느낀 감정이었다. 중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나는 나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는 멀티버스라든가, 다른 행성 세계 같은 게 아니라 나만의 정신세계였다. 이 정신세계는 논리 체계도 정확하게 잡혀있지 않았고, 뒤죽박죽인 상황에서 나에게만 오롯이 ‘A는 C다’로만 정의될 수 있는 자아 체계의 세계였다. 지금은 얼추 ‘A는 B이기 때문에 C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내 내면을 풀어서 얘기하는 게 쉬워졌다. 허나 당시에 나는 ‘A는 C인데 왜 그런지는 몰라’라고 얼버무리는 어린 꼬마였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A는 C다’로 설명되는 나의 세계는 내 뇌 속에서만 굴러다니게 만들고, 나는 ‘A는 A다’라고 설명되는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착실하게 거쳤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삶을 연기하면서 살고 있다’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떤 감정을 느끼더라도 ‘이건 내 감정인 걸까, 아니면 사회화 과정을 거쳐서 배운 감정인 걸까’라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한 번은 ‘혹시 내가 사이코패스는 아닐까?’라는 극단적인 상상을 해보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철학 책들의 담론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교육을 받은 후부터는 이런 나를 나 스스로 해석해 보기 위해 온갖 책들을 읽어댔다. 호기롭게 중학교 1학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당연히 난 《꿈의 해석》의 약 10%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삶을 어릴 때부터 살다 보니 나는 어디서나 ‘혼자인 것 같았다.’ 혼자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는 혼자가 아니었고,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나이가 들어서도 그대로인 것이, 여전히 나는 내가 느끼는 생각이나 감정을 늘 어느 순간 한걸음 뒤에서 보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나 자신을 객관화시키는 건 좋지만, 이 때문에 나는 힘이 들 때도 나 조차에게 기댈 수 없었다. 결국 근원적으로 나를 외롭게 만드는 건 나였다. 그래서 “외롭다”라는 말이 목구멍 저 깊숙한 곳에서 성대를 울리고 목젖을 치고, 혀로 입천장을 때리고, 입술을 오므렸다가 펴면서 튀어나온 걸까. 그나마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는 ‘그 공간 속에서 외롭다’라는 게 나의 독특한 사고체계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지만, 나 혼자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더욱 나를 깊숙한 심연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방의 벽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도 자취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면, “그건 자취를 하지 않아 봐서”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올 때가 있다. 이 말 뜻에는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고, 매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을 먹는 걸 ‘혼자 해야 한다’는 걸 오롯이 인정하게 될 때 느끼는 멜랑꼴리 한 감정을 느껴보지 않아 봐서라는 뜻까지 담겨있다. 물론, 충분히 자취를 하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도 존재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면 진짜 혼자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이란 결국 다른 인간과 함께 살아야 하는 동물이다. 스스로 독립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친구와의 만남, 사회적인 동료들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격리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로워진다. 외로움의 또 다른 말은 동떨어져있다는 슬픔이다.
나 역시 밖에 나가 있을 때는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게 강해졌다. ‘고독’을 오독오독 씹으면서 잘 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팬데믹 시대 속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 나는 아직 혼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뼛속 깊숙하게 깨달았다. 만약 내가 체념하고 나를 짓누르고 있던 외로움이라는 철공을 들어 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난 아마 그날부로 침대에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내가 과거형으로 쓰고 있었다는 건, 나 스스로 외로움을 던져버렸다는 뜻이다. 그때 나는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외로움의 감정을 쏟아내 쓰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외롭다는 것도 결국 학습된 나의 감정이 아닐까?”
맞다. 나를 늘 혼자라고 느끼게 만든 나의 이상한 정신세상이 여기서도 이상하게 발현됐다. 갑자기 외로움이라는 감정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나는 ‘혼자 살면 원래 외로운 법, 그렇다면 안 외롭게 느끼면 된다’라는 정말 단순하면서도 근원적인 답을 내렸다. 이 답은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깐”이라는 ‘펀쿨섹좌’ 고이즈미 신지로의 어록과도 같이 어처구니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답이었다. 이미 20만 원으로 내 방의 공간도 바꿨던 나였기에, 외로움도 충분히 떨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외로움을 물리치기 위해 또 다른 관계로 도피하기는 싫었다. 그건 표현 그대로 도피와 같았다. ‘독방 살이’는 감방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 내가 처음으로 인테리어 한 집에서 느낄 감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건강하게 혼자 살기’의 방법을 본격적으로 구상하고 구성해 가자고 결심했다. 정말 더 이상의 도망은 없었다.
※ 매주 수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