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2 죽은 집에 숨 불어넣기
평소에 정리정돈은 꽤 하고 산다만, 집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잠만 자는 곳으로만 내버려 두다 보니 손 볼 곳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상태에서 ‘내가 사는 곳’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것도 무리였고, 집을 꾸미는 건 또 체질이 아니었기에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무작정 책부터 끄집어냈다. 당시의 내 책장에는 시집, 소설, 각종 이론 서적, 영화 서적, 종교 서적들이 분류도 되어있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꽂혀 있었다. 일단 이 책들부터 똑바로 정리정돈을 하고 나면, 그나마 책장에는 내 사람 사는 숨길이 불어넣어 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다.
우선 책들을 각 분류로 나누고,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을 구분하여 꽂아두기로 했다. 대체로 일본 소설들은 비슷한 규격의 양장본으로 출판 돼 정리하기가 수월했지만, 미국이나 유럽 소설, 또 한국 소설들은 책마다 규격이 다 달라 어떻게 꽂아두어야 이리저리 튀어나오지 않고 매끄럽게 정리가 될까를 이리저리 돌려봤다. 그러다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을 절묘하게 섞어두면 그나마 깔끔하게 정리가 될 것이라 생각해 그냥 대분류로 꽂아두기로 했다. 이후에는 이론서적들을 꽂아두었고, 자투리 공간은 예전에 써두었던 시나리오 원고나 낙서를 휘갈긴 스케치북으로 메웠다. 그런 후 책장을 바라보니 ‘꽤 그럴싸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 주변을 바라봤다. 책장을 정리했는데도 뭔가 이곳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이유란,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로 살면서 기존 옵션인 책상과 옷장을 제외하고 내가 들여놓은 가구라는 게 조그마한 접이식 식탁, 의자, 침대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무채색을 좋아하는 습성 탓에 매트리스 커버와 침구도 회색이었고, 의자와 방석까지 회색으로 도배해 놓아서 마치 디스토피아 사회를 집약해 놓은 집 같았다. 그래서 곧바로 인터넷을 켰다. 세상이 좋아져서 팬데믹 시대에 쇼핑은 간단한 클릭 몇 번으로 해결을 할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감성이다
먼저 침대 옆에 놓을 협탁과 조명을 사기로 했다. 감성의 기본은 조명이 아니겠나. 6000K의 형광등 색온도로 밝혀진 집보다는 3000K 정도 전구의 색온도가 은은하게 집을 감싸면 꽤 사람 사는 집 같은 인테리어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덩그러니 조명만 놓기는 그러니깐 나무 재질의 협탁까지 사면 뭔가 카페처럼 집을 꾸밀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컴퓨터 책상에도 감성을 추가하고 싶었다. 재택근무 특성상, 대다수의 시간을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보내다 보니 책상에 숨을 불어넣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건, 가죽으로 된 커다란 장패드였다. 조명이 은은한 주황빛이다 보니 브라운색으로 깔아 두면 그럴 법할 듯했다.
인테리어 소품들도 여럿 장바구니에 넣었다. 예를 들어 펜꽂이 하나에도 감성을 주고 싶어 원목 펜꽂이를 샀고, 이외에도 원목으로 된 조그마한 소품들을 구매했다. 자취방의 벽지가 하얀색에다가 기존 옵션 가구들이 대다수 하얀색이었기에 어떻게든 브라운 계열로 톤 다운을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멋대로 벽지를 도배한다거나 가구를 교체하다가는 이 집을 떠나게 됐을 때, 임대인으로부터 청구될 어마어마한 금액을 감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약 20만 원의 금액만 들여 소품들을 채워 넣었다.
팬데믹 시대에도 택배기사 아저씨들은 안전하게 밖을 돌아다녔다. 마치 코지마 프로덕션에서 출시된 저 유명한 게임 <데스 스트랜딩>의 주인공처럼, 택배기사들의 투철한 배달정신 덕분에 전염병이 창궐한 시대 속 우리는 여전히 밖과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택배들도 안전하게 이틀 만에 내게 배송이 됐는데, 모든 물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언박싱을 진행하지도 않았다. 원래 변화는 한꺼번에 줘야 큰 만족감을 준다. 야금야금 바꾸면 뭔가가 계속 아쉽다는 느낌을 주지만, 한 번에 큰 변화를 주면 그 만족감이 일시적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잔바리 펀치를 때려서 얻는 판정승보다는 제대로 된 훅이 상대에게 꽂혀서 받는 K.O 승이 더 쾌감이 높지 않나.
집을 꾸민다는 건
업무를 쉬는 토요일 낮이 되어서야 나는 도착한 모든 택배 박스들을 열어젖혔다. 택배 박스와 자질구레한 쓰레기들은 분리수거로 배출하고 나서 난 재빨리 집 꾸미기에 돌입했다. 침대 옆에 나무 협탁을 놓고, 그 위에 조명을 올려뒀다. 그리고 협탁 사이에는 아주 감성 가득하게 책들을 올려놓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이후에는 책상 위에 가죽 장패드를 깔고, 그 위에 원목 소품들을 앙증맞게 배치하면서 마치 도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나만의 카페 같은 집을 완성해 갔다. 모든 인테리어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의 어둠이 방을 채우고 있었다. 어둠이 왔다는 건 회심의 조명을 켤 때가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의 모든 불을 끄고, 침대 옆 놓인 자그마한 전등의 스위치를 눌렀다. 은은한 주황빛이 방을 감쌌다. 브라운 계열 장패드와 원목 소품들이 놓인 컴퓨터 책상에도 감성이 내려앉았다. ‘아 이래서 다들 인테리어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 냄새나지 않았던 공간을 20만 원으로 바꿀 수 있구나. 그동안 그저 있는 그대로 살았던 삶과 달리, 처음으로 내 돈을 내고 내가 사는 공간을 뒤바꾸는 경험을 한 거였다. 그때의 쾌감이란, 처음으로 자취방을 구해 독립을 했던 자유로움보다 더 강렬했다. 그 순간만큼 나는 월세유목민 처지 따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을 꾸민다는 건, 결국 이 공간을 내가 사랑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사람이든지 공간이든지 결코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채워 넣으면 그만이었다. 이걸 깨닫는데 고작 20만 원이라는 금액 밖에 쓰지 않았지만, 2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저 바쁘게, 열심히, 묵묵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살다 보니 그렇게 살면 결국 ‘나’를 잃는다는 것을 그 순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거였다. 다들 집을 나가봐야 집의 소중함을 안다고 하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 고립이 되어서야 집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했지만, 집에 숨 불어넣자고 한 인테리어가 내 삶에 숨을 불어넣은 일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아마 그때부터였나. 집은 내가 만들어가는 곳이며, 나를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생각 깊숙한 곳에 각인한 것이. 대충 어쩌면이라고 어벌쩡 넘어가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분명 있다. 바로 이때가 내가 서울에서 혼자 사는 걸 본격적으로 시작한 순간이라는 것이며, 그 순간은 어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 그저 2020년 5월의 어느 평범한 주말이었을 뿐이라는 거였다.
※ 매주 수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