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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Aug 16. 2023

그래도 내 집인 걸

EP 6-1 그래도 내 집인 걸


서울에서 월세 유목민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나는 ‘혈혈단신’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게다가 보증금을 내고 꼬박꼬박 월세를 낸다고 해도, 내가 누운 13㎡ 남짓의 공간은 내 것이 아닌 집주인의 것이었으며 언제든 떠나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 불안정함은 필연 삶의 불안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의지할만한 친구도 몇 없었으며, 또 의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상 나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외로움’과 ‘고독’을 양 옆구리에 끼고 서울의 밤거리를 휘적거리고 다녔다. 외로움과 고독은 술안주로써도 아주 안성맞춤이었는데, 혼자 식당에서 밥 먹는 것도 힘들어하던 나는 서울생활 2년 만에 홀로 포장마차에 앉아 술을 마시거나 술집에서 혼술을 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발걸음처럼 내 일상도 늘 나부꼈다. 몇몇 이성친구들을 사귀기도 했지만, 그 관계가 주는 불안정성 탓에 내가 오히려 관계에서 도피해 버렸던 때도 있었다. 그래야만 더 큰 추락과 좌절을 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정말 의지할 것 없던 내게는 유일한 낙하산이었으니깐. 그러나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그 짓이야 말로 나는 내 삶을 천천히 낙하하게 만들고 있었던 낙하산들의 줄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멍청한 짓이었다. 사실상 도피하지 않았어도 될 것을 지레 겁먹어 ‘고독’이라는 뒤주 속에 내 발을 들이고 있었던 거였다.


신촌 반지하에서 이사해 수유로 적을 옮겼을 때는 적어도 반지하에서 했던 짓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관성이라는 물리학 법칙은 역시나 벗어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다. 난 여전히 비틀댔고, 그러면서 내가 서 있는 곳이 물 위인지, 단단한 땅 위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리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더 적어졌다. 어차피 이곳은 내 집도 아닌 걸. 내 집은 저 멀리 200km나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나는 왜 여기서 혼자 이렇게 아득바득 고독을 씹으면서 버티고 있나라는 생각에 자주 치를 떨었다. 지독한 향수병이었다. 덕분에 이사 후 꼬박 한 달 동안 새벽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술에 취해있거나 카페인에 취해서 거리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아주 빠르게 나는 낙하, 아니 우아한 표현은 집어치우고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월세 유목민이면서도 카페 유목민이었다.


내 삶은 언제나 ‘어쩌다’였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되고, 어쩌다 서울에 와서 어찌어찌해서 기자로 밥을 벌어먹고 살던 인생 아니었나. 그래서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는 신세 한탄을 한숨의 꼬리로 잡아두고 있었을 때, 어쩌다 나는 이직 제안을 받았다. 직업을 바꾸는 건 아니었고, 직장을 바꾸는 문제였다. 이미 추락 지점까지 약 10m를 남겨둔 시점이었나.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속 연출처럼 추락하던 내가 갑자기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느낌. 꿈이었나. 꿈은 아니었고 현실이었다. 사실 이직을 눈에 불을 켜고 노리고 있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2년간 버텨왔던 게 그저 묵묵히 버틴 게 아니라 누군가의 눈에서는 보이고 있었던 발걸음이었다는 걸 느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어떻게 보면 인정 욕구였고, 어떻게 보면 그만큼 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있었던 때였으니까.


이직 제안을 받은 뒤부터는 더 바빠졌다. 휘청거릴 여유도 없었다. 다시 면접을 봤고, 전 회사에서의 신상을 정리했다. 직장을 옮긴다는 건 새로운 월급 통장을 발급받기 위해 주거래 은행이 바뀌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몇몇 서류를 가지고 옥신각신 다투는 일도 있고,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적응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안 그래도 바빠 피곤한 상황에서 이웃들은 늘 말썽이었다. 계속해서 내 신경을 긁어대는 층간 소음, 벽간 소음부터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 때문에 환기를 시킬 때마다 방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아주 향기로운 냄새까지. 밖에서의 일들은 풀려나가는데 월세유목민인 내 신세가 더 대비됐다. 그때의 내 감정이 한탄이었냐고? 따지고 보면 어리광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렇게나마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어떠한 열등감을 밖으로 표출하고 싶었던 걸지 모른다. 그 열등감이란, 결국에 이 서울에 올라오게 된 그 모든 이유 때문들(연재를 시작한 첫 번째 글에 적어뒀다.)이었으니.


그렇게 이직 후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더더욱 나는 집을 회피했다. 청소할 면적이 적어 안성맞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방은 생각보다 더 좁았고, 그 협소한 곳에 처박혀 시간을 보내면 뭔가 나를 더욱더 골방으로 밀어 넣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빨래하거나, 자거나, 드라마를 볼 때만 집에 있었고 이후의 모든 시간은 카페나 회사에서 보냈다. ‘내 집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더욱더 강해졌다. 전세로 살든, 월세로 살든 결국 나는 가질 수 없는 이 공간에서 겨우 숨 쉬기 위해 열심히 일해 번 돈을 갖다 바치는 인생이 아닐까 하는 자기 혐오감에 휩싸였다. 그게 다 고독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냥 탓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런 고독으로 나를 밀어 넣은 주범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카페에서도 마스크는 써야 했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졌다


2020년 1월부터 스멀스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던 코로나19라는 깡패가 본격적으로 국내 세력을 넓혀 나간 건 그해 2월 말부터였다. 3월이 되어서는 이 조직폭력배의 세력이 더욱 커지면서 한국은 어딜 가든 조직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불심검문은 QR코드로 생활화 됐고, 아예 비상계엄령이 내려져 야간통행금지법을 연상하게 만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국 사회에 팽배해졌다. 정부는 이 깡패와의 전쟁을 위해 사적 모임의 인원까지 조정했고, 결국 나의 거리 생활도 거기서 억지로 마무리되어야 했다. 밖에 싸돌아다니면 나 역시 깡패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으니, 대규모 수용소로 보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바깥 생활을 자제해야 했다.


그때부터 대항해시대에 버금가는 ‘대재택근무’의 시대가 시작됐다. 억지로 집에 처박히게 된 내가 목격한 것은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나라는 인물이었다. 생활반경이 몇 킬로미터에서 고작 몇 미터로 줄어들자 나는 이 조그마한 자취방의 월세를 더욱 가치 있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쩌면. 그래 또 ‘어쩌다’는 그러니깐 어쩌면으로 생각을 돌렸다. 그 생각의 전환 끝 지점에서는 버티는 방법이 정말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인식의 뚜렷함이 위치하고 있었다. 내 책장에 분류도 똑바로 되지 않고 꽂혀있는 책들처럼, 텅 빈 냉장고의 서늘함처럼,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 빼고는 사람 냄새가 아무것도 묻어있지 않은 이 조그마한 공간의 분위기처럼 살고 있었던 나. 이미 신촌의 반지하방을 도망쳐 나왔을 때 마주해야 했던 ‘나라는 현실’이었지만, 바쁘게 산다고 외면하고 있었던 건, 이 집이 결국 나라는 풍경이었다는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진실이었다.


월세를 낸다고 해서, 겨우 계약서에 명시된 임대 기간만 머무른다고 해서 이 집이 내 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소유이든, 결국 내가 살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공간을 이토록 혐오하고, 미워하려고만 했을까. 왜 내가 사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가 얹혀있는 상태로만 머무르려고 했을까라는 또 다른 좌절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좌절 속에서 내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엄혹한 코로나19라는 환경 속에서, 또 이직까지 한 상황 속에서 나는 이제야 도망치지 않고 극복해야 하는 삶을, 나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걸 냉혹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제 나는 집을 벗어날 수도 없었고, 꼼짝없이 집에서 혼자가 된 나를 마주해야 했다. 겨우 반지하에서 탈출했지만 오히려 더 공고하게 쌓아 올리고, 허물어질 때면 또 다른 벽돌을 쌓아 올렸던 고독의 벽 속에서 스스로 망가지고 있었던 나를 정말 무너뜨려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나는 먼저 어지럽게 꽂힌 책장의 책들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 급격한 체력 저하와 휴가로 인해 2주 간의 글 도피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늦어져 죄송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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