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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Jul 26. 2023

어느 날 층간소음이 찾아왔다

EP.5-2 어느 날 층간소음이 찾아왔다


뉴스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들과의 분쟁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층간소음을 두고 다투다가 주먹다툼을 벌이거나 아예 가스 밸브를 열고 집을 폭파시키는 경우까지,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들이 층간소음을 이유로 벌어진다. 가장 사소한 층간소음은 쿵쿵거리는 소음이다. 위층에서 뛰어다니는 소리가 고스란히 아래층으로 전달되면서 소음과 진동이 유발되는 경우다. 대개 낮 시간대나 저녁 시간대에 많이 발생하는 소음이다. 조금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층간소음은 인테리어 공사로 인한 소음인데, 이런 경우 미리 이웃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행하는 게 다수다. 또 다양한 층간소음 유발 사례들이 많겠지만, 사람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건 ‘도대체 뭘 하고 있길래, 집에서 저딴 소리가 나는 거야?’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소음이다.


내가 살던 수유의 방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바로 그랬다. 평소에도 쿵쿵 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렸던 집이기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거주 2개월 차부터 이 집에서 나는 소음들이 내게 거슬리기 시작했다. 최근 지어지는 건물들이 소음 차단에 약하기 때문에, ‘저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2개월 차부터는 정말 기상천외한 소음들이 내 방으로 밀려들어왔다. 가장 첫 번째 소리는 화장실에서 뭔가를 부수고 있는 소리였다. 쿵 찍으면 10초 뒤 쾅 찍는 소리가 약 2분간 이어졌다. 처음에 나는 무슨 공사라도 하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면 원룸에서 저런 소리가 날 이유는 없었다.


사실 소리라는 것은 사람의 감각 중에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공포 영화를 볼 때도 가장 공포심을 유발하는 건 귀신의 비주얼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나는 소름 끼치는 소리들 아닌가. 그렇기에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날 때면 사람들은 ‘상상’이란 것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쿵 소리가 날 때는 ‘누가 넘어졌나?’라는 생각을 했고, 쾅 소리가 날 때는 ‘싸움이 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더 극단적으로는 ‘저 집에서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상상까지 하게 만들었다. 아무런 시각적 정보 없이 전달되는 께름칙한 소음에 내 상상의 나래는 거의 내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목격자 김경래 씨(가명)로 출연하는 것까지 확장돼 갔다.


사진은 수유가 아닌 이후 이사한 신림 자취방이다


새벽의 잠을 깨우는 소음


이 소음은 자주 밤까지 이어지기도 했는데 정말 어느 시간대든 불규칙적으로 쿵쾅 대는 소리가 화장실 천장에서 울려댔다. 특히 어느 일요일 하루는 오전 10시부터 그 소리가 나더니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멎은 적도 있었다. 정말 나는 그때 뭔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윗집 화장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흡사 그 소리는 톱으로 뭔가를 써는 것 같은 소리가 되기도 했고, 망치로 무언가를 둔탁하게 때리는 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윗집이 공방이 아니고서는 이게 범죄의 현장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하지만 오후 1시 이후에는 그 소리가 멎어서 나도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소리에 대한 공포심이 폭발한 건, 내가 그 집에 머무른 지 약 5개월 때가 된 무렵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요일의 일상을 시작하던 내게 갑자기 ‘끼르륵 끼르륵’ 소리가 들려댔다. 그리고는 단말마의 ‘악’ ‘악’ 거리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니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위쪽에서 그 소리가 울려 퍼지기에, ‘나는 그래 이건 무슨 사달이 났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하지만 신경과민이리라. 저 소리도 곧 끝이 나겠지 싶었다. 그리고 나는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빠른 샤워 후 외출을 했다. 그리고 오후 9시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나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오후 11시쯤 잠자리에 누웠다.


그때 다시 그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쾅’이었다. 망치로 바닥을 때리는 소리는 아니었고, 망치로 화장실에서 어떠한 물건을 때리는 것과 같았다. 이후에는 ‘퍽퍽’ 소리가 났다. 이건 물건이 둔탁한 것이 아니라 쿠션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열렬한 팬으로서 다양한 범죄 현장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었던 나는 마치 권일용 교수가 빙의한 것처럼 머리를 굴려댔다. 그리고 ‘이건 분명 뭔가 수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괜히 범죄현장에 개입이 됐다가 수틀리지 말라는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참았다. 어떻게든 저 소리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잠에 들어야겠다는 일념 하에 눈을 감았다.


소음은 미지의 영역까지 상상하게 만든다, 자료 사진은 박물관에서 찍었다.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


하지만 나의 눈은 세 시간째 감기지 못했다. 새벽 1시가 되어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리드미컬하게 변하고 있었다. 쿵하면 쾅하고, 쾅하면 끼긱하고, 끼긱하면 까각하는 소리들의 변천사가 시작됐다. 내가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 갑자기 우리 집 현관문을 누가 ‘쾅쾅’ 두드려댔다. ‘이게 무슨 일인가?’라는 공포심을 안고 조심스럽게 나는 “누구세요?”라고 말하면서 문을 열었다. 그때 아주 익숙하게 생긴 20대 남성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옆집에서 노래를 불러대던 남자였다. 그 남자는 갑자기 “이 새벽에 뭔 짓을 하길래 시끄럽냐”라고 쏘아댔다. 그때 나는 느꼈다. ‘아, 이 사람도 이 소리 때문에 제대로 빡쳤구나’라는 걸. 그리고 그 남자 옆에는 이미 문을 열고 나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가 이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거 저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고 저희 화장실 천장에서 나는 것 같은데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내가 문 밖으로 나섰을 때도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기에, 나는 약 열두 명의 성난 사람들에게서 용의자 신문을 받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합세해 위층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위층으로 올라간 우리는 나의 바로 윗집의 문을 열심히 두드렸다. 이미 2층의 사람들도 밖에 나와 있었다. 유일하게 열리지 않은 내 윗집의 문이, 바로 이 소음의 원인이라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약 1분을 두드렸을까. 인터폰에서 나지막하게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였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잠깐 나와보세요”라고 말했지만, 여성은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서요”라고 둘러댔다.


이에 우리의 급조된 소음 공해 대책 위원회는 여성을 대표자로 내세워 이 집에게 다시 한번 “나와보시라”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3분이 지났을까. 소음이 멈춘 뒤에야 이 여성이 정체를 드러냈다. 당연히 방에는 남자친구는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이 소음의 원인이 다소 더 공포스럽거나 112에 신고를 해야 할 일이었겠지. 우리의 대책 위원회 여성 대표는 도대체 화장실에서 무슨 짓을 하시는 거냐고 쏘아대면서 집으로 들어갔지만 어떠한 범행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제발 시끄럽게만 하지 말자고 경고하고 각자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때의 시간이 새벽 2시였다.


흡족한 사건 해결을 마치고 나는 집 앞의 흡연구역으로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옆집 남자도 뒤따라 나왔고, 위층에서 마주친 또 다른 거주자도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다. 우리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연기를 뱉어댔다. 그 순간 우리의 분위기는 마치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해결한 형사들처럼 아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거짓말처럼 세 명 모두 담배를 끄고 집으로 돌아갈 때 “수고했어요,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했다. 한 명의 빌런이 서로 교류도 없던 원룸 거주민 세 사람에게 일종의 연대 의식을 만든 것일까. 아쉽게도 그 이후에 그 두 분과는 더 교류가 없었지만,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확실하게 느꼈다. 여기는 정말 혼자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또 나 역시 소음의 범인이 되지 않기 위해 확실히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화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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