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닙니다
EP.5-1 원룸의 악당들
주말이 되면 나의 습관이 있다. 평일에는 잠을 다소 부족하게 자기 때문에, 늦게까지 퍼질러 자고 일어나 집 청소를 하는 버릇이다. 그렇게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하고 나면 토요일의 늦은 오후부터 일과를 시작하는데 약속이 있지 않은 이상은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다. 이건 일요일에도 비슷한데 약속이 잡히지 않으면 절대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게 나의 주말 일상이다. 원래 집돌이 성향이 있어 더 그렇지만, 비싼 월세를 내가면서 잠만 자는 용도로 방을 쓰는 게 굉장히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집에서 뭘 하든 ‘집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내게는 매우 중요하다.
평일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도 그 이유다. 일을 하고 들어오면 대개 오후 7시나 8시쯤인데, 평일에는 약속이 잦기 때문에 보통 오후 10시나 11시에 귀가를 하는 루틴이다. 그러면 씻고 바로 잠이 드는 편이다. 게다가 혹시나 늦게 일어날까 봐 최대한 불편하게 취침등까지 켜놓고 베개를 두 개 정도 몸에 끼워놓고 잠이 든다. 그러면 선잠을 자게 돼 아침에 빨리 일어나게 된다.
평일에 이만큼 불편한 잠을 자기 때문에 주말에는 무조건 ‘많은 잠’을 자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잠만 자면 아깝다는 이유로 최대한 늦은 시간에 잠들기도 한다. 그러면 보통 새벽 2~3시에 잠들어 다음날 오전 11시쯤에 깨게 된다. 내가 살던 수유의 방은 꽤 채광이 좋았기 때문에, 오전 11시쯤이면 방 안 가득 햇살이 차올라서 자연스럽게 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앞서 나를 깨우는 것은 현관에서 새어 들어오는 소음들이었다.
원룸의 구조상 현관과 방을 구분해 주는 중문이 없기 때문에, 현관 너머의 소음이 쉽게 방으로 넘나들 수 있다. 이 말인즉슨 내 방의 소음도 현관 너머로 잘 넘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집에서도 꽤 말소리를 작게 내는 편이다. 굳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누군가에 알려주기 싫어서다. 하여튼, 이 현관에서 새어 들어오는 소음들의 정체는 이런 것들이다. 앞집이나 옆집이 현관문을 쾅쾅 세게 닫아대는 소리,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누군가와 엄청 크게 통화를 하면서 복도를 걷는 소리, 오토바이를 타고 도착한 배달원들이 문을 두드리면서 “배달 왔어요”라고 말하는 부류들. 특히 우리 앞집과 옆집은 얼마나 문을 세게 닫아대는지 이 사람의 외출 여부를 문 닫는 소리로만 알아챌 수 있었다.
욕실은 노래방이 아니다
그래도 이런 것들은 생활 소음이어서 어쩔 수 없겠다 생각하고 넘어갔으나 조금은 선을 넘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욕실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건축물의 구조상 화장실의 환풍구들은 다수 다른 방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경우가 다수다. 덕분에 화장실의 소음은 더 쉽게 다른 집으로 넘어가기 쉬운데, 이런 욕실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당연히 다른 집에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된다. 내 경우에는 바로 옆집의 사람이 ‘노래 부르기’ 빌런이었다.
이 사람은 샤워를 할 때마다 노래를 불러댔는데, 가장 많이 부르던 노래가 부활의 ‘Lonely Night’였다. 덕분에 나 역시 그 노래를 질리도록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불러대는 것을 어느 정도 참고 지냈으나, 밤이 되어서도 만약 노래를 불러댄다면 한 마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품고 지냈다. 괜히 문을 두드리고 항의하다가 내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나. 그 사람의 애창곡이 부활의 노래에서 어느 아이돌의 댄스곡으로 넘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주말의 늦잠을 만끽하고 있던 내 귓가에 알람이 울렸다. 차라리 진짜 핸드폰 알람 소리였다면 좋았을 것을. 아예 옆집의 사람은 핸드폰으로 노래를 켜두고 욕실에서 노래를 불러댔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가 10분이 이어졌다.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소에서 고성방가를 질러대면 당연히 노이로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두 달이나 그걸 참고 있던 내게도 한계가 왔다.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 옆집의 벨을 눌렀다. 벨이 몇 번 울리다 옆집이 문 너머로 물었다. “누구세요?”라고. 나는 “옆에 사는 OOO호인 데요, 잠시만 나와 보세요.”라고 얘기했고, 그쪽에서는 “잠시만요”라고 대답하고는 2분 뒤에 정체를 드러냈다. 그 2분 사이에 혹시나 나는 내가 당할 봉변에 대비해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다. 물론 옆집 사람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렇게 드디어 두 달 동안 나를 괴롭히던 가수를 만나 나는 화장실에서 노래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린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좀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곳은 ‘같이 사는 곳’ 임을 강조했다. “저 역시 불편한 거 있으면 고쳐드릴 테니, 소음만 줄여달라”라고 부탁했다.
의외로 옆집의 ‘욕실 가수’는 그 요청에 선뜻 사과를 해왔고, “노랫소리가 그렇게 넘어가는 줄 몰랐다”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나는 옆집과 원만한 해결을 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 번씩 옆집의 욕실에서 보는 유튜브 소리가 들리기는 했으나 노랫소리만큼 크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러고는 나는 이 집의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환풍기에 댐퍼를 설치했다. 환풍기가 켜질 때를 제외하고는 외부 소음과 냄새가 차단되는 역할 덕분에 어느 정도 소음을 잡아줄 수 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소음’까지 만이다.
함께 산다는 걸 망각한 이들
그렇게 옆집과 원만한 소음 합의를 끝냈으나, 공동 주택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빌런들이 넘쳐난다. 예를 들어 생수를 대량 구매한 뒤 복도에 적치를 해두고 문 여는 것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침을 뱉는 사람들, 문 앞에 붙은 전단지를 떼서 그냥 복도에 버리는 사람들 등 같이 쓰는 공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이들이다. 집주인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민원이 화가 났는지 공동현관문 앞에 ‘주의 사항’을 붙여놨지만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주의를 줘봤자 할 사람은 계속하고 있기 마련이다.
특히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분리수거와 관련된 것들인데, 보통의 공동주택에는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따로 분류된 음식물쓰레기통에 집어넣거나 분리수거 플라스틱과 캔들을 구분해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다수 원룸의 분리수거장은 거의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다. 음식물이 그대로 담긴 배달용기들을 ‘분리수거’랍시고 던져놓거나,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아닌 그냥 비닐봉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배출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렇게 되면 건물 주변이 굉장히 더러워지는데 특히나 1층이었던 우리 집 창문을 통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타고 넘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반지하에서 탈출해 환기를 제대로 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날이 따뜻한 날에는 창문을 쉽게 열 수 없어 ‘도대체 나는 왜 이런 집들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지?’라는 한탄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만이라도 룰을 지키자는 생각에 모든 배달 용기들을 설거지한 후 배출했고, 꼬박꼬박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 배출했다. 그리고 혹시나 소음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현관문을 닫을 때는 최대한 조용히 닫기 위해 노력했다. 나라도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지켜준 예의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지켜줬을 때의 일이다. 그 예의를 지켜주지 못한 자가 바로 내 위층에 살았다. 그리고 다음 글에서는 약 7개월 동안 나를 괴롭힌 위층의 빌런에 대해 아주 길고도 장엄한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