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태현 Jul 19. 2023

집과 이별을 합니다

EP.4-2 집과 이별을 합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내가 가져온 건 27인치 캐리어에 들어가는 짐 밖에 없었다. 구닥다리 노트북 하나와 여벌의 옷, 책 두 권이 짐의 전부였다. 하지만 서울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짐이 늘어나더니 수유로 이사를 갈 때에는 용달차 하나를 불러서 이삿짐을 옮겨야 하는 수준이 됐다. 나름 미니멀리스트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로지 나의 생각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옷들이 늘어나더니, 주방 용품, 생활 용품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책을 빌려보지 않고 사서 읽는 습관 때문에 책들도 불어났다. 주기적으로 알라딘 중고서점을 통해 책을 처분하기는 했지만, 아끼는 책들은 모아두다 보니 둘 곳이 없어 침대 아래 빈 공간에 집어넣어 놓기도 했었다. 게다가 운동을 하겠다고 사뒀다가 고급 빨래 건조대가 되어버린 철봉까지 있었다.


일단 이사를 가는 집의 사이즈가 반지하 방의 1/2 수준이었기에 짐을 줄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잘하지도 않던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물론 여기서 다이어트란 ‘지방 줄이기’가 아닌 ‘짐 줄이기’였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정리’라는 단어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다. 첫 번째로는 어떠한 물건이나 상황을 올바른 자리로 옮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는 어떠한 물건이나 사람, 상황을 떠나보내거나 처분한다는 의미다. 어쨌든 두 의미 모두가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나는 두 의미를 함께 실천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방과 이별을 해야 할 때였다.


오래전 살았던 내 고향의 방은 이랬다, 어쩌면 이 방과도 이별을 했으니 그다음 이별도 쉬웠던 걸까. 감성적이게 덧붙인다.


헤어짐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나 집이나 정리에는 꽤 복잡한 단계가 필요하다. 먼저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들을 구분해 내는 작업부터다. 살다 보면 덕지덕지 붙은 옆구리 살처럼 필요치 않은데 생기는 것들이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맛있다고 먹어대면서 생긴 살과 같이 처음에는 필요가 있다고 구매한다. 내게는 철봉 같은 것들. 짐 다이어트를 하면서 가장 부피가 컸던 철봉을 비롯해 안 쓰는 전자기기들을 정리했다. 철봉은 당근마켓에 12만원에 올리자마자 입찰자가 생겨 잘 팔 수 있었다. 15만원에 구매했으니 3만원 정도의 감가라면 충분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쓸데없이 고장 났지만 박아뒀던 무선 이어폰, 키보드 등을 버렸다. 이제 추억의 거리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가장 필요 없는 것들을 구분해서 처분했으니 이번에는 애매한 것들이다. 전 연인에게 받은 선물처럼 가지고 있으면 찝찝하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물건 같은 존재들. 내게는 그게 철 지난 옷들이었다. 어차피 다시 입을 계획은 없는데 또 언젠가는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되는 옷들을 두고 고민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일종의 미련인데, 미련이라는 감정은 뭐든 아쉬움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하지만 내게는 짐을 줄여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미련을 떨쳐 버리고 이 옷들을 헌옷수거함에 스트라이크로 꽂아 넣었다. 다만 이때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그다지 좋은 구속이 나오지 못했다. 뭐든 이별에는 미련이 남는다.


그러고는 이사 당일까지 사용해야 되는 물건들만 제외하고 차곡차곡 짐을 정리하자고 마음먹었다. 엄청난 계획파인 나는 이미 이사 3주 전부터 모든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었다. 먼저 새 집에 필요한 침대를 구매할 때는 이사 당일 받을 수 있게 지정일 배송 요청을 해뒀으며, 전자레인지, 새 주방집기 등도 미리 배송을 해 받아 놨다. 이사 첫날부터 바로 새 집에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한 거였다. 그렇게 새로운 물건을 마련하는 것에 일주일이 소요됐고, 남은 2주는 야금야금 짐정리에 돌입했다. 또한 반포장 이사를 위해 용달차 아저씨까지 섭외를 마쳤다. 더운 여름에는 괜히 이사 당일 짐을 정리하다가 쉽게 지칠 수 있기 때문에 뭐든 행동을 간소화해야 했다. 짐을 싸면서 이 방과의 추억도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자주 싸돌아다녔던 신촌의 거리.


“반지하야, 이제 그만 널 잊을게”


그렇게 모든 짐을 정리하고 신촌의 반지하 방을 떠나는 날 아침 일찍 용달차 아저씨가 도착했다. 미리 짐을 다 싸둔 것을 보고 아저씨는 “아니 반포장 이사인데 뭔 짐을 다 쌌대?”라고 놀라 했다. 나는 “빨리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고는 아저씨와 함께 짐을 옮겼다. 사과박스 크기 기준으로 약 7개의 박스가 나왔다. 부피가 큰 선풍기와 의자, 내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올 때 들고 왔던 캐리어, 컴퓨터까지 다 싣고는 나는 반지하 방의 불을 끄고 현관 앞에 나섰다. 오전 10시쯤이었나. 해가 뜬 지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이 반지하는 어두웠다. 뭔가 이곳에서 2년을 보냈다는 게 거짓말처럼 빨리 흐른 것 같았다.


이런 감성적인 감상을 접어두고 나는 그 어둠의 공간과 빛의 공간의 경계에 있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제발 이 반지하방의 문을 다시 열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기원까지 그 속에 담았다. 물론, 다음 세입자가 이곳에 들어오겠지만 그분 역시 빠른 탈출의 기회를 잡기를 바란다라는 마음도 담았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 차태현처럼 “우리 반지하방은요, 벌레가 많이 나오고요”라는 대사라도 남길 걸 그랬나 보다. 용달차에 마지막으로 나라는 짐을 싣고 나는 신촌의 거리를 벗어났다. 무수하게 오르고 내렸던 계단과 오르막길을 지나쳐 가면서 이 동네를 떠난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씁쓸하기도 했다. 오래 다투며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것 같은 아련하면서도 후련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용달차가 수유에 들어설 때부터는 그런 아련함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잠깐의 미련은 깔끔한 새 집에 들어서자마자 말끔하게 잊혔다. ‘역시 반지하보다는 지상이 최고다’라는 감탄이 들도록 흡족하게 내 방을 바라봤다. 나는 용달차 아저씨가 내려준 짐들을 풀어놓기 시작했고, 사과박스 7개의 짐들은 재빨리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이미 머릿속에 그려둔 정리 구상이 그대로 실현했고, 옷장 용량이 초과된 옷들은 캐리어에 넣어 옷장 위 공간에 넣어뒀다. 어차피 겨울옷들이었기에 필요하면 겨울에 꺼내 쓰면 됐다. 그리고 딱 맞춰 침대까지 배송됐다. 조립을 마친 침대에 누워 나는 창문 가득 들어오는 햇살을 만끽했다. 날씨는 더웠지만 이 귀중한 햇빛을 온몸으로 쬐고 싶었다. 그러면서 이제 어둠의 삶을 청산하고 가석방 후 밝은 사회로 나온 무기수와 같은 심정으로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리고 깜빡 잠이 들었다. 잠이 깬 건 2시간이 흐른 토요일의 오후 8시. 갑자기 어디선가 소음이 들려왔다. 불규칙적으로 쿵쿵 거리는 께름칙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도 30분간 울리더니 사라졌다. 다시 소음이 차단된 평화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새 출발을 다짐한 가석방 무기수에게 그 소리가 어둠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심어주게 될 것이란 걸. 그리고 그게 똥차 가면 벤츠 온다는 공식이 모든 것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제였다는 것 역시 말이다.


다음 화에서 이어집니다. 매주 수요일, 일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월세 유목민의 여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