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쓰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태현 Jan 23.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사방이 지뢰밭이다. 단단한 콘크리트들이 너무나 탄탄하게 도시를 지탱해주고 있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늘 언제 지뢰를 밟고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함 속에 산다. 이 단단한 도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유약한 존재였는지 깨닫게 될까봐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그러면서도 이 존재들이란, 매일 아침 눈을 떠서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지뢰를 밟았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나는 오늘 살았다’라는 안도와 ‘내일도 살아야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 앞에는 매일 밤 절망이라는 고지서가 날아오지만 오늘 안고 있는 안도와 희망으로 그 값들을 치른다.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있었다. 그가 남긴 사진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지만 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고 ‘없다.’ 그의 삶이란, 맞다. 사방이 지뢰밭이었다. 본명은 엔드레 에르노 프리드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미국인 로버트 카파로 기억한다. 그리고 전설적인 사진기자로 기록한다. ‘세계 2차 대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할리우드 영화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다수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꼽을 거다. 그 영화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장면, 바로 노르망디 상륙 작전 되시겠다. 그곳에도 로버트 카파가 있었다. 대신 손에는 총 한 자루 없었다. 그저 카메라만 들려 있었다. 총탄이 여기저기서 날아다니고, 이미 그 총에 맞아 피를 흘려가며 소리를 외쳐대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지만 로버트 카파는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다. 그리고 그가 남긴 사진을 토대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시퀀스가 만들어졌다.


물론, 로버트 카파는 그 악명 높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살아남았다. 이후에도 쭉 2차 세계 대전의 전장에서 그는 활약했다. 그 동안에도 그의 손에는 총 대신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도 기적적으로 로버트 카파는 2차 대전의 종식까지 살아남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로버트 카파는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나고 3년 뒤 다시 전쟁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이번에는 중동전쟁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도 2년 동안의 전쟁 취재를 마치고 프랑스에 정착한 그는, 4년 뒤인 1954년 인도차이나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떠났다. 노르망디에서도 살아남았던 로버트 카파는 그해 5월, 베트남 전선에서 지뢰를 밟았다.


그가 세계 2차 대전 사이에 남긴 일기들을 읽어보면, 참 담대한 사람이구나 싶다. 담담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로버트 카파의 글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보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의 모습이 서려있다. ‘오늘 살았다’라고 안도하면서 ‘누가 죽었대’라는 말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진 속에도 은연중에 묻어있는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지로 자신을 내모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마치 내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죽음이 곁에 있어야 삶은 더욱 활기차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얘기했다. 세상살이를 두고 그는 “슬픔으로 가득 찬 감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염세주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의 시작처럼 “도시는 전쟁터”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썼다. 그는 사람은 고독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낼 결의를 가져야 한다고 평생에 걸쳐 시를 썼다.


로버트 카파는 한 때 이런 얘기를 했다. “다시 전쟁에 가야 한다면 난 총으로 자살을 해버릴 거야. 난 너무 많은 걸 봤어.” 맞다. 나는 그의 영혼이 “죽음이 곁에 있어야 삶은 더욱 활기차다”라고 말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전장으로 갔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환경 속에 자신을 몰아세웠지만, 그는 결코 스스로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누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는 대신 그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렀다.


오늘밤 누군가의 현관에 ‘절망’이라는 고지서가 배송될지 모른다. 그는 그 값을 치를 안도와 희망마저도 바닥이 나서, 이제 정말 이 도시의 유령이 되어야겠다는 결심까지 한다. 끝없는 삶에 대한 환멸감 탓에 차라리 도시 사방에 깔린 지뢰를 밟고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간다. 우아한 염세주의자가 아닌 처절하게 실패한 낭만주의자에 빠져들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무엇일까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수많은 죽음을 찍어온 로버트 카파 앞에도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었다. 처절하게 삶을 바라는 영혼들만이 파인더 속에서 일렁거렸다. 어쩌면 불안과 절망이라는 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생기는 삶의 포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의 사진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를 뿐이다.


“모든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말한 쇼펜하우어도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날이 단 한 번뿐이고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 것임을 항시 명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엇갈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