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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태현 Sep 10. 2023

엇갈림

가을이 왔다고는 하는데, 여전히 무더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침의 선선한 날씨를 믿고 긴 셔츠를 입고 나왔다가 낭패를 본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땀으로 축축해진 셔츠를 입고 자주 가는 LP 바에 가서 노래를 들었습니다. 집에도 턴테이블이 있지만 굳이 LP 바에 가서 노래를 듣는 이유는 평소 모르던 좋은 노래를 뜻하지 않게 만날까 봐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은 스피커로 듣는 음악과 큰 스피커로 듣는 음악은 느낌부터가 다릅니다. 특히 록 음악은 역시나 크게 스피커 볼륨을 올려놓고 고개를 까딱 거리면서 듣는 재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서 버드와이저 한 병을 시켜놓고 이리저리 노래를 듣다가 휴대폰을 만지다가, 책을 읽거나 합니다. 가끔씩은 짤막한 엽편 소설 같은 걸 노래에 맞춰서 지어보기도 하는 편입니다.


가을이 왔는데, 센티멘털한 노래를 듣지 않을 수 없죠. 최근에는 그 LP 바에서 아이묭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를 들었습니다.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어본 적은 있었는데, 그렇게 큰 사운드로 직접적으로 들어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일본어는 중학교 때 배웠던 것을 드문드문 기억하고 있는 편이라, 가사를 해석한 걸 흠칫흠칫 보면서 따라 들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꽂힌 가사는 ‘결국에 너는 말이야, 어쩌고 싶은 거야?’였습니다. 가을 분위기에 맞는 뭔가 쓸쓸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이 드는 가사여서, 따로 메모장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맥주 몇 병을 마신 취기로 엽편 소설을 지어봤습니다. 내용은 형편없습니다. 대충 옮겨보자면 숨이라는 인물과 연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숨과 연에게는 정현이라는 친구가 있죠. 두 사람은 당연히 함께 다니는 정현에게 서로의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숨은 연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느 날 기타가 놓여 있는 펍을 세 사람이 찾게 됩니다. 정현이 마침 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아이묭의 ‘사랑을 전하고 싶다던가’를 부릅니다. 그렇게 단 둘이 맥주를 마시던 숨과 연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에게 끌리고 있던 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맥주의 마지막 한 모금이 남을 때까지, 정현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도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아쉬운 만남 끝에 숨은 먼저 집으로 돌아갑니다. 연은 정현과 술을 한 잔 더 마시겠다고 자리에 남습니다. 그렇게 집에 가던 중 숨은 연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싶다는 가슴의 쿵쾅거림을 느낍니다. 그렇게 다시 연과 정현이 있는 펍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두 사람이 없습니다. 전화를 해볼까 생각하지만, 그저 자신이 연에게 느낀 감정 때문에 연이 보낸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을 ‘감정의 신호’라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 길 위에서 숨은 다시 펍으로 가면 연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가야 할까를 계속 고민합니다. 하지만 결국 발길이 닿은 것은 집 앞입니다. 여기서 정현이 숨에게 문자를 해옵니다. ‘연에게 고백을 하고 싶은데 할 말이 없다’고 말입니다.


엽편 소설이라 여기까지 짤막하게 쓰고 보니 벌써 아이묭의 노래가 끝나고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더라고요. 계절과 음악이 만나면 꽤 사람이 센티멘털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소설을 메모장에 잘 써둔 휴대폰은 가방에 넣고 봉인했습니다. 다시 맥주를 마셨습니다. 한 다섯 병을 마셨을 때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이 소설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소설을 꺼내서 읽어봤습니다. 결국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하게 엇갈려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가을은 그런 미련들이 모이는 계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스토리가 또 뭐가 있을까를 골똘하게 고민하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분명 잠이 들기 전 소설의 뒷이야기를 생각하거나 앞이야기를 좀 더 구상했던 것 같은데 잠에서 깨보니 깔끔하게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습니다. 미련하게 소설을 다시 읽어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생각했는데’라고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완벽한 타이밍에 완벽하게 엇갈려버린 것이 하등 내가 쓴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뭐, 항상 모든 순간에 대한 아쉬움은 남습니다만 이런 경우에는 또 다르게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런 미련들을 긁어모아서 언젠가는 거대한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싶지만, 일단은 이번 가을을 나기 위한 땔감으로 쓸까 합니다. 언제나 가을은 미련을 모아야만 그만한 감성 있는 계절로 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글에 대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결국에 너는 말이야, (이 글을 써서) 어쩌고 싶은 거야?’라고. 그런데 어떤 때는 어쩌고 싶은지도 모르고, 그냥 이렇게 쓰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감성과 이성이 엇갈리는 가을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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