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쓰다 막히는 경우들이 있나요? 저는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는 때에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글을 써버리고는 합니다. 물론,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골치가 아픕니다. 깜빡이는 모니터의 커서만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쉴 때도 많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 그랬던 적이 많습니다. 문예창작학과에 다니던 저는 과제로 소설이나 시, 감상문을 써야할 때가 많았습니다. 당장 글은 써야하는데, 아직 내 속에서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오르지는 않아서 머리를 헝클일 때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마음의 온도를 올려보고자 커피를 마시거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거나, 인터넷에서 잘 쓴 글들을 흘깃흘깃 보면서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을 장작처럼 마음속에 주입시키고는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억지로 쓴 글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과제의 마감 시간은 지켜야 해서 억지로 쓴 글들을 제출하고는 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억지로 글을 써서 에너지를 다 소비해버려서, 정작 ‘글이 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때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것도 힘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두, 세 달에 한 번씩 에세이 한 편을 쓰거나 습작시를 쓰거나 했습니다. 정말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일 때입니다. 하지만 그때 쓴 글들도 마음에 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항상 쓰고 난 글을 보면 퇴고할 곳들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드라마 에세이 글들도 예전에 쓴 것들을 다시 퇴고하고 있습니다. 쓰고 싶어서 썼는데, 너무 마음이 앞서나가서 문장들이 헝클어지거나 논리적이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감정이 주가 되는 글에서 논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어쨌든 감정이 커지는 논리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글을 쓸 때는 그냥 글의 문장이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서 키보드를 누를 뿐입니다. 나중에 퇴고를 몇 번 하기는 하지만, 다시 말했듯이 이미 퇴고를 마친 글들도 계속해서 퇴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어디서든 의미부여를 하는 습성이 있어서, 글을 쓰는 것도 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지도 않을 때 억지로 하다보면 정작 하고 싶은 것이 나타났을 때는 기력을 다 소진하고 난 후입니다. 제게는 사람 관계가 비슷합니다. 살다보면 피곤한 관계들도 있고 소중한 관계들도 있는데, 억지로 모든 관계가 다 중요하다고 체력을 끌어다 쓰다보면 정작 소중한 관계에 신경을 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걸 알게 된 후부터는 굳이 내가 신경 쓰지 않아서 끊어질 관계에 대한 미련들을 버려내고 마음을 크게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근데 또 퇴고의 문제입니다. 마음가는대로, 소위 일필휘지로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는 ‘그 때 했던 말보다는 이런 말을 하는 게 더 나았을까.’라는 생각이 밀려오기도 하고, ‘그 선택 보다는 다른 선택이 더 나았을 것 같은데.’라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글은 언제든 퇴고할 수 있지만 한 번 지나간 삶의 시간은 퇴고할 수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쨌든 다음에는 그런 실수나 후회가 생기지 않도록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퇴고가 아닌 회고는 한 번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글을 퇴고한다고 해서도 그게 항상 좋은 글이 된다는 보장은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괜히 또 ‘걱정을 사서 하고 있나.’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정신머리로는 도대체 ‘완벽한 행복’을 찾을 수 없겠다 싶기도 하고요. 도저히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서 버틸 수 없을 때는 다른 사소한 걱정을 하는 편입니다. 진짜 후회될 것들 말고, 당장 눈앞에 있는 걱정거리 같은 것들. 제게는 책상 정리가 그래서 도움이 됩니다. 하루를 보내고 나서 걱정이 태산일 때는 책상을 정리하면서 ‘이건 어디에 두지?’ ‘이건 또 언제 버리지?’라는 사소한 걱정으로 채웁니다. 그러면 어느새 하루 동안 쌓아뒀던 걱정이나 후회들을 잊어버린 저를 발견합니다. 성공입니다.
계속 한 글만 퇴고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 다른 글들을 쓰고 있는 지금과 별반 다를 바 없네요. 그래서 이게 지금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글인지, 아니면 인생에 대한 글인지 무의미해지는 것 같은데, 이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결국에 어떤 의미가 중요한지는 쓰는 사람 마음이 아니라 읽는 사람 마음에 따라서일 테니 말입니다. 이 말을 던져보고 혼자 공감 가서 끄덕여봅니다. 아까는 제가 썼는데, 지금은 쓴 걸 제가 또 읽고 있으니 수긍이 갑니다. 자화자찬이라고 하나요. 근데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나중에는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일단 걱정을 내려두고, 글 쓴다고 어지럽혀둔 책상 정리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아참, 그래서 문장을 쓰다 막히는 경우는 왜 물어봤냐고요? 이렇게 그냥 쓰면 된다고 조언 아니, 첨언 아니, 실언을 하는 것도 문장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 같은 명문을 만들 것도 아닌데, 일단 써봅시다. 그렇게 살아봅시다. 물론, 제 생각일 뿐이라는 것도 잊지 마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