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저는 신발 끈을 꽉 묶고 다닙니다. 하지만 이 신발 끈의 매듭이 대체 어디서 풀려버릴지를 예측하는 건 미지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더 세게 꽉 조이도록 합니다. 그러다 오늘 또 신발 끈이 풀렸습니다.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출퇴근 지하철의 환승통로에서 풀려버린 겁니다. 신발 끈을 잘못 밟았다가는 넘어지기 딱 좋은 환경입니다. 그래서 신경을 온통 질질 끌리고 있는 끈에다가 집중했습니다. 혹여나 누가 밟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묶어버리고 싶었지만, 이 교통의 흐름을 방해했다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넘어질지도 모르는 환경입니다. 그래서 일단 걷다가 지하철에 타면 다시 매듭을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내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또 만석입니다. 시루에 담긴 콩나물처럼 끼인 채로 가다보니 신발 끈을 묶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혹시나 누가 걸려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됐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걱정일 뿐이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난 후에야 매듭을 다시 묶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신발에 밟혀서 하얗던 끈이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또 끈만 따로 세탁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우니 머리가 지끈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인파에 휩쓸려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
살다보면, 내가 당장 멈춰서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나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당장 공부를 하려는데 너무 늦은 나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취업을 다 한 상황이라고 꾸지람을 받는 일이라든가, 내가 하던 일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찾으려는데 ‘왜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하냐’라고 지적을 받는 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반대로 내가 꿈꾸던 것들이 있었지만, 현실상 맞지 않으니 포기해야 했던 일들도 여기에 속하겠네요. 분명 내가 가고 있는 건 맞지만, 내 발걸음이 원하는 게 아니라 주변 환경에 맞춰서 발걸음의 방향이 결정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일들을 해야 할 때나, 후회가 될 때가 오면 더러워진 신발 끈처럼 어지럽혀진 내 마음만 남아있습니다. 이 마음들은 후회와 미련으로 덕지덕지 남아서 끝없이 나를 괴롭힙니다. 당장 빨아봤자 검게 묻은 자국들이 희석된 탓에 회색으로 변해버린 제 신발 끈처럼 말입니다. 이참에 제가 걸어온 길들도 돌아봤습니다. 과연 나는 내가 원하던 발걸음으로 걷고 있었을까. 따지고 보면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남들이 좋은 대학에 가라는 것도 무시한 채로 내가 하고 싶었던 영화 공부나 글쓰기에 매진했고, 대학 시절에는 전공 공부보다 도서관에서 내 공부하는 것에 더 집중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일을 하면서도 내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돌아보면 이렇게 살아온 인생에는 부모님의 바람, 돈을 벌어야한다는 무언의 압박감, 번듯한 직장을 찾아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내 발길을 움직이는 사소한 재촉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 재촉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온 건 나였습니다. 후회의 탓을 받아야 하는 사람도 나라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는 후회하지 않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 내 발길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수많은 지하철 인파 속에서 신발 끈을 묶을 곳 하나를 찾는 일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이 나아가고 있는 지금의 발걸음은 어떤가요. 내가 원하는 것인지, 혹은 내가 휩쓸려가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나요. 혹시나 검게 짓밟힌 신발 끈의 삶처럼, 휩쓸림이 당신의 마음에 검게 상처를 입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