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왜 그랬을까
"그때 너네 할머니가 내 머리를 벽에 찧었어. 월급 내 마음대로 쓰면 안된다고."
"할머니가?"
엄마와 대화를 하다가, 엄마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을 때, 새로운 외할머니의 모습을 듣게 됐었다.
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해서 월급으로 3만원을 받은 19살 아가씨. 2만원은 남동생 학원비에 보태고 1만원은 생활비에 보탰다. 얼마간 그렇게 하다가 자기 월급의 일부라도 자기가 계획해서 사용해보고 싶다는 뜻을 엄마에게 밝혔는데, 그녀의 엄마는 안된다고 했다. 엄마와 딸은 말다툼을 했고, 엄마는 딸의 머리를 잡고 시멘트 벽에 쿵쿵 찧었다.
내가 모르는 외할머니의 모습, 그에 대한 호기심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내 외할머니는 그러니까...사람들이 외할머니 하면 떠올리는 표상같은 사람이었으므로. 외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따뜻한, 인자함, 자애로움으로 이루어진 사람.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랬다니. 대학가고 싶은 딸에게 돈 벌어야 한다고 다그치고 머리를 벽에 찧기도 하는 무서운 엄마였다니.
그 때의 그녀는 무슨 상황속에 놓여있었길래 그랬을까 궁금해졌다.
애 둘 키우는 것도 힘든데 애 여섯을 어떻게 키웠지?
그 전에도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이따금 궁금하긴 했었다. 아이 둘 키우기도 벅찬데, 할머니는 어떻게 여섯을 키운거야? 싶었으니까. 직장을 다닌다지만 남편도 육아를 잘하는 편이고 도움주는 제3자도 있는데도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벅찬데 '가장역할을 하면서 아이 여섯을 키운 여자'의 매일은 어땠을지 상상이 안됐으니까.
지방도시로 이주하면서 주어진 외할머니와의 시간
지방에 있는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서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사했다. 이주가 불러온 여러 변화중에는 남편이 멀리 출퇴근하게 되었다는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도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서울에서보다 적은 예산으로 서울에서보다 넓은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는 이모의 돌봄부담을 덜어줄 겸, 딸의 육아를 도와준다고 자신의 엄마는 못돌보게 된 친정엄마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줄 겸, 몇 달에 한번 할머니를 모셔와서 이삼주 머무르시게 했다.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머무르시는 기간에 외할머니와 수다를 떨게 되었고
할머니의 살아온 날들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 많이 질문했다.
이 말들이 흘려 지나가버리는 것이 아까워 기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