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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업에 따라

나를 변화게 만든다

by 최혜영

시대적 변화로 인해 물류는 더 이상 성공적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껐고 나의 재능을 살릴 미용을 선택하게 되었다

둘 때딸은 미용대학을 막 졸업할 시기에 나는 제안을 하게 되었고

."연정아 엄마 좀 도와주라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너랑 같이 하고 싶어 "

딸은 나랑 2시간 거리를 살고 있었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엄 마를 도와주겠 다며 2시간씩 오고 갔던 딸이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왕복 4시간으로 인해 지친 딸은 계속적으로 올 수 없었고 우울해져 보이는 딸에게 나는 위로를 하지 못했다.

딸은 내가 위로하지 못한 것에 서운했었고 잦은 싸움을 하게었다

"엄마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라는 딸의 말에 아차 싶었다

내가 일에 바빴던 날의 핑계로 딸들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다가는 것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딸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노력하기 위해 딸과 다시 마주했다

딸이 뭐든 것을 얘기해줬을 때는 내가 너무 소홀한 게 아닌가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고 아이들이 힘들었는지 몰랐었다 이때까지 살면서도 나만 보기 바빴었다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도 스스로 잘 자라와서 부모의 곁에 빈자리를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마음의 이유가 생기고 보니 혼자 자란 나도 부모의 빈자리를 느낀 건 같았다

나와 같은 빈자리를 느끼게 해 준 거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끔 나는 느낀다

받는 것이 있어야 주는 게 있다는 것을 사랑도 받아봤어야 주는 방법을 아는데 나는 사랑을 받은 기억을 말해보라고 하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랑에 대해서는 너무 약한 나에게서 사랑을 받는 자식들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감정적인 느낌을 받을 때에는 문득엄마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해도 자식이라는 문구는 지워지지 않는 거 같다

지금에서야 엄마를 찾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엄마를 찾으려 정보를 얻으려고도 했었다

등본에 등록절차 못한 엄마는 어딜 가나 찾을 수 없다고 했었다

희망을 잃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슴이 답답했지만 내 곁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었다

고민 끝에 삶이 힘들다던 둘째 아이에게 자취를 할 수 있도록 집을 알아바 주고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이아이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상태가 엄마였으면 한건 아닐까? 싶은 마음에 모든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

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딸과의 나는 딜을 했고 딸이 아꺼하는 강아지를 일하는 곳에 같이 오는 것을 허용할 테니 일을 같이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딸과 둘이서 하는 일이 쉴 수가 없었고 결국직원을 채용하게 되었지만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방문판매처럼 찾아가는 서비스로 판매하는 시대에서 매출에 다한 판매수당을 벌어가는 것을 했을 때 매월 맞혀야 하는 할당량이 있었다

매출이 없으면 판매수당은 별로 못 벌지만 잘만하면 월수입이 내가 원하는 금액을 벌 수 있었고 매달 해야할당 때문에 힘들어도 출근해서 매일 고객을 만나 고객을 위해 고객의 맞게 컨설팅해 준다

이일도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같이 버는 시스템이다

더 나아가 물류로 네트워크로 활성화되고 써보고 반해서 일을 갈아타는 시점 2016년도였다

남들이 다하는 거다

윗사람들이 버는 거다

빛 만지고 힘들거라 하고 생각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2018년에는 네트에 나으는 월천 아줌마가 되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꾸준히 쓰게 하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리더로 발전하게 되었다

1년은 회사를 알아보고 정말 소비자는 소비잣혜택을 사업자는 사업자 혜택으로 정말 열심히 달려왔다

성공의 7단계부터 명단작성을 하고 나로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개의 소개로 정말 정신없이 뛰어들었다

네트워크라는 내 마음에 들었지만 남에 눈에는 다단계였다

단계는 상위권에 올라가 많은 사람의 박수와 내 파트너에게 우상이 되었고 회사 잡지에 모델로 선발되어 실리기도 했다

이때 이 일이 천직인 줄 알았다

고급스러운 음식과 가족이 해외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평생 아이들도 이일을 시킬 거라며 자신만만했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사람들은 거리 두기로 인해 소득과 매출은 저조해지기 시작도고 이때 고비가 또다시 오기 시작했다

미용실은 재건축으로 인해 폐업한 상태였고 네트 하면서도

이런 거 와하냐고 소가락질 했지만 사업하면서 사람들도 같이 사업하고 번창해서 강의도 하니깐 영원할 줄 알던 내 직업이 아니었다

쇼핑몰이나 가맹점에 관해 사업분야를 공부하게 되었다

집에서 하는 플랫폼 시대를 준비하게 되었고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다할 수 있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남편을 조르기 시작했고 사업투자금은 남편이 해쥤다

나를 위해 또다시 전성 시다가 온 것이었다

플랫폼시대의 도버는 분들이 재벌가들은 아니었지만 합동해서 하시는 것을 보고 선택하게 된 것이다

1명도 피해를 안주는 네 잎클로버 같은 사업이다

결국엔 사업도 파산을 하고 다시 미용에 전업하고 있다.

전문성 있는 미용은 꾸준히 해야 되는 나의 유일한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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