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가 사는 곳 1

단편소설

by 김솔한

소년은 한 손에 강아지를, 다른 한 손에 이북 출신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철원 와수리의 콘크리트 도로를 걸었다. 도로 양옆의 메마른 풀들은 바람에 눕듯 몸을 접었다. 통일이 되고 군부대가 떠난 뒤, 마을은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

소년은 여행을 계획했다. 아버지의 뼛가루를 그의 고향에 흩뿌리고, 오래전에 떠나 기억 속에 희미해진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돈이 없었기에 무작정 걷고자 했다. 여행에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잘 구분되지 않았지만, 열여덟의 객기는 그런 구분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강아지 똥개를 맡겨야 했다.

형, 어디 가는데.

여행을 갈 거야.

나도 따라갈래.

됐어.

소년 희성은 슈퍼집 아들 정빈을 뿌리쳤다. 그는 빛바랜 슈퍼마켓 문을 밀고, 처마 아래에서 라이터를 켰다. 잠시 뒤 정빈이 따라 나왔다. 그는 품에 강아지 똥개를 안은 채 말했다.

담배 피는 거 이른다.

누구한테.

몰라. 우리 할매한테.

지랄.

담배 연기가 멀어질수록 두 사람의 사이도 서먹해지는 듯했다. 언어가 만들어지지 않는 곳. 슈퍼 앞에서 어느 노인이 요란하게 카트를 밀었다. 캔 몇 통과 폐건전지 따위의 것들이 덜컹거렸고, 그 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희성과 정빈은 카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노인이 언덕 아래로 사라질 때, 소년은 아버지의 지난날들을 떠올렸다. 그는 냉면을 팔았었다. 왜 냉면이었나. 아버진 북에서 왔지만 평양 출신도 아니었다. 희성은 ‘평양냉면’ 간판 아래서 15년을 넘게 살았고, 그것은 인생에 끼어든 크나큰 거짓이었다.

골초 새끼.

정빈은 큰 맘 먹고 형에게 욕을 질렀다. 돌아오는 건 공허한 시선 뿐, 정빈은 혹여나 반응이 있을까 불안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이것만 피고.

말이 끝나자마자 꽁초가 떨어져 희성의 발아래서 숨을 죽였다. 똥개는 정빈의 품에서 낑낑거렸다.

형 돈 없잖아. 내가 돈 좀 삥땅칠게. 카운터에서.

됐어. 돈은 충분해.

어떻게?

고모라는 사람이 와서 몇 푼을 쥐어줬어.

형한테 고모가 있었어?

나도 처음 알았다.

희성은 두 번째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옆에 있는 슈퍼집 아들이 어떻게든 따라올 거라는 것.

걷다가 불평하지 마라.

응?

가면서 힘든 티 내지 말라고. 돈은 필요 없다.

아.

바라던 승낙이었지만 정빈의 얼굴은 밝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걱정이 밀려온 탓이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뢰를 밟으면 어쩌지?


희성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어머니 생각을 했다. 그녀는 돌과 같았다. 평소엔 존재를 느낄 겨를도 없지만, 한번쯤은 떠올릴 만했다.

돌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어머니도 그러했다. 희성의 기억 속에 그녀는 이야기꾼이었다.

통일되기 전의 이야기야. 어머이가 살던 곳에도 동물원이 하나 있었어. 비쩍 마른 사람들이 사자와 호랑이, 곰 같은 짐승들을 맡아 키우고 있었지. 어느 날, 동물원에 불이 났어. 몇몇 짐승들이 우리를 빠져나왔고, 그중에는 덩치 큰 코끼리도 하나 있었지. 코가 유난히 매끈하고 길쭉한 놈이었어. 성질도 비교적 온순했다고 하더라. 코끼리는 하염없이 벌판을 쏘다녔대. 처음 보는 몸집에 놀란 맹수들은 곰이든 멧돼지든 가리지 않고 부리나케 달아났고, 코끼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 그 세계의 왕이 되어 있었지. 하지만 왕에게는 먹을 것이 없었어. 여름이 지나고 날이 급격히 차가워지자, 회색빛의 외로운 왕은 그저 계속 걸었대. 그러다 무기를 잃었어. 그 매끈하고 길쭉한 코를 말이야. 왜 잃었겠니. 어머이가 온 북쪽과 희성이가 사는 남쪽 사이에는 무서운 곳이 하나 있어. DMZ라는 곳인데, 밟는 순간 터지는 폭탄들이 잔뜩 묻혀 있지. 지뢰라는 거야. 코끼리는 그걸 밟았던 거지. 오래된 것이었지만 힘은 여전히 셌어. 덩치 큰 코끼리의 코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그래도 왕은 멈추지 않았어. 코가 사라진 채로도 묵묵히 걸어 다녔다더라. DMZ 북쪽에 사는 사람들이 가끔 그 모습을 보기도 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코끼리를, 코가 없다 해서 ‘끼리’라고 불렀어.

엄마도 봤어?

응, 봤지. 고향의 자랑인 걸.

끼리 죽었어?

글쎄.

그런데 한국에서 코끼리가 어떻게 살아?

우리 희성이 똑똑하다.

희성은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을 기억했다. 온기는 분명했지만, 얼굴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괴로웠다. 소년은 몸을 웅크리고 헤진 베개를 꽉 붙잡았다. 냉면집 구석에 마련된 주거공간엔 아직도 고기 육수 냄새가 공기 중에 배어 있었고, 소년은 냄새를 맡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파묻었다. 오늘 잠은 글렀군. 소년은 생각했다.

좁은 창문에 부딪힌 돌멩이가 눈뜬 새벽의 시작을 제대로 알렸다. 아마도 정빈일 거라고 희성은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희성이 창문을 열자마자 정빈이 입을 열었다.

지금 가자.

몇 시야.

다섯 시.

내가 다섯 시간이나 뒤척인 건가.

뭔 소리야.

아냐.

희성은 두꺼운 양말을 꺼내 신었다. 4월의 새벽은 아직 추웠다. 그는 젖은 수건을 널지 않은 걸 후회하며, 칼칼한 목을 가다듬었다.

빨리 나와.

밖으로 나오자 완전무장한 군인처럼 경직된 자세로 서있는 정빈이 눈에 띄었다. 희성은 살짝 웃음이 나올 뻔했다.

똥개는?

할매한테 맡겼어.

할머니는 뭐라셔.

그냥 여행 다녀온다 했어.

그렇군.

희성은 고개를 돌려 푸른 빛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의 어서 가라는 손짓이 느껴졌다. 소년은 그에 응답하듯 가방끈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걸음을 재촉했다.

형, 이거 신발 죽이지. 아버지 거야.

정빈은 전투화를 들어 밑창까지 보여주었다. 그는 그것이 유품이라 말했다. 아버지가 마지막 전투에서 신었던 것을 자기가 몇 번이고 닦았다며, 너스레를 떨고. 그가 살아계셨다면 자기를 개 패듯이 팼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빨갱이와 친구 먹으러 간다고 싫어했을 거야.

나랑도 못 놀게 하셨겠군.

아마도.

어쨌든 전쟁은 끝났어. 통일은 됐고.

그래.

정빈의 캐리어가 뒤늦게 희성의 눈에 들어왔다.

어디 여행 가냐?

여행 아니야?

희성은 자신이 하는 건 여행이 아니라고 말했다. 목적지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고,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고, 가는 길에 식당이 없으면 굶을 수도 있다고. 마음이 바뀌어 가지 않는대도 이해한다고.

그래서 음식 챙겨왔잖아.

희성은 골똘히 걸으며 생각했다. 거친 바닥에 바퀴 끌리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짐이 될 뿐이야.

정빈은 캐리어 끄는 것을 멈췄다. 순간 일대의 모든 소음이 모조리 제거된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두 사람은 방향을 틀어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정빈은 낡은 문을 소리 나지 않게 능숙한 손길로 열고, 눕힌 캐리어에서 물건 몇 개를 꺼냈다. 안에는 심지어 컵라면도 있었다. 희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정빈은 육포와 약간의 전투식량, 생수 몇 통, 그리고 칫솔과 치약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시 슈퍼의 진열대에 차곡차곡 쌓았다. 캐리어는 구석에 밀어놓았다.

희성은 정빈보다 먼저 밖으로 나왔다. 낡은 문을 최대한 조심스레 열어보았지만 소리는 감출 수 없었고, 그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는 이것이 와수리에서 피는 마지막 담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