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가 사는 곳 2

단편소설

by 김솔한

01화 끼리가 사는 곳 1 (이전 챕터)


돈은 최대한 안 쓸 거야.

왜?

거기 정착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돌아갈 거야.

너는 돌아가야지.

두 사람은 말없이 걸었다. 1층짜리 건물들이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어도 벗어나려면 많은 걸음이 필요했다. 조금 지겨워졌을 때, 세상은 드넓은 황갈색 땅을 내주었다. 희성과 정빈은 그 사이의 회색 다리를 건넜다. 가드레일에는 긁힌 자국이 가득했고, 차는 지나가지 않았다. 다리가 끝나자 두 사람은 울퉁불퉁한 도로에 입성했고, 절대 황갈색 땅은 밟지 않았다. 가끔 도로 위의 갈대 조각들만이 발에 스칠 뿐이었다.

희성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몸을 낮춘 산맥이 양옆에서 그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끔 얇은 이불을 걷어 내는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너구리 짓이었다. 너구리를 포함한 야생동물들은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이방인 둘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해가 뜨기 전에 더 깊숙한 곳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저기. 저기 보여? 새얀이가 사는 곳이야.

그게 누군데.

박씨 아저씨 딸. 와수리에서 제일 예쁜 애일 거야. 서울서도 먹힐지도 모르지.

난 모르겠네.

그럴 것 같았어.

박씨의 집이 점점 가까워졌다. 초록색 철망 너머로 셰퍼드 세 마리가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두 사람이 지나가자 산 깊은 곳에 닿도록 세차게 짖어댔다. 수탉에 버금가는 알람시계였다. 조금 더 자극하면 철망을 뛰어넘을 수도 있을 듯 했고, 희성과 정빈은 걷는 속도를 높였다. 목줄은 없었다.

쟤들이 널 싫어하는데.

형을 싫어하는 거야. 나는 저 집에 가봤다고.

그래.

두 소년은 계속 걸었다. 과거 군인들을 실은 버스에 몸을 내주었던 노쇠한 도로 위, 뒤를 돌아보면 마을은 작아져 있었다. 비닐하우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푸석한 콘크리트길은 언제부터인가 구렁이처럼 몸을 구부렸고, 희성과 정빈은 짐승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꼴이었다. 다만 그 끝에는 산酸이 아닌 산山이 있었다. 산의 초입부, 과거 군 지휘소의 폐허가 자리를 잡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정빈은 아는 척을 했다.

예전에 북한을 처바른 부대야.

응.

우리 마을을 먹여 살렸잖아.

응.

왜 철수했을까?

모르지.

정빈은 폐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군사물품이라도 찾으려는 듯 기웃거렸고, 희성은 조용히 뒤를 따랐다. 깨진 돌계단, 망가진 예초기, 타이어 쪼가리, 부식된 컨테이너. 정빈이 뭘 찾는 진 몰라도 그가 원하는 건 없어보였다.

총이 없네.

당연히 없지.

대신 사찰이 있었다. 자연이 끝내 쓰러트리지 못한 어떠한 의지처럼, 사찰은 폐허들 틈에서 혼자 솟아있었다. 희성과 정빈은 그곳으로 자연스레 이끌렸다. 다만 원래 있어야 할 중앙의 불상은 보이지 않았고, 다 썩어가는 우물마루는 밟으면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았다. 소년들에겐 그 모습마저도 신비해 보였지만.

두 사람은 잠자코 원래 불상이 있었을 자리를 지켜보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을 때는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였다. 폐허를 벗어나자 콘크리트 길 입구에는 ‘통일기념관’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었고, 소년들의 발걸음은 빨라졌지만 그것도 잠시 오르막이 지속되자 맥이 빠졌다.

정빈은 툴툴거렸다.

지나가다 멧돼지라도 봤으면 좋겠네.

길이 콘크리트인지 흙인지 의심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통일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자연친화적이었다.

이 길 맞아?

표지판이 일로 가라잖아.

어?

정빈이 가리킨 곳에는 낡은 마대자루와 끊어진 케이블타이가 있었다. 그것들은 힘없이 나풀거렸다.

잠깐 담배 좀.

정빈은 산비탈을 등지고 도로 끝자락 아래로 떨어지는 절벽을 보며 라이터를 켰다. 이따금 풀 위를 껑충 뛰어다니는 참새만이 절벽에서 자유로웠다.

정빈은 괜히 절벽 끝으로 가 아래를 보고, 아까 본 마대자루와 케이블타이를 생각하며 말을 걸었다.

왜 그것들이 여기 있지.

전에 군대가 여기 있었어. 이건 작업의 흔적일 거야. 산비탈의 흙을 퍼서 마대에 담고, 담고, 담고.

뭐 때문에?

모르지. 다 폈다.

소년들은 오르막길 최상단에 있는 탑을 보며 힘을 냈다. 십자 모양의 철골 구조를 가진 기이한 느낌의 송신탑. 근방에서 유일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는 인공물이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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