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세이 9『멕베스 Macbeth』
“Greed is a sin that devours the soul.”
"탐욕은 영혼을 집어삼키는 죄악이다."
단테의 『신곡』
『멕베스 Macbeth』는 영국의 16-17세기 초반의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이다. 아주 오래전 쓰인 꼰대들이나 기억할만한, 요즘 MZ 세대들에겐 익숙지 않은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하려는 것에 독자들은 의아할 수도 있다. 뭐 별 다른 이유는 없다. 날도 더운데( 휴 정말 덥다!!!) 소수 권력자들의 사적 욕심이 만든 크고 작은 전쟁들로 세상은 파괴되고 어지럽혀지고 혼절 직전이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내가 잘 알고 익숙한 세상이 금방이라도 산사조각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경박하고 알량한 인간의 이기적 본능과 욕심이 인류의 삶을 얼마나 뒤틀리게 하는지 목도하며 인간 탐욕의 근원이 궁금해졌다.
예언들: 불완전한 미완성의 말들
『멕베스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과도한 나르시시즘과 권력욕이 부른 참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의 가장 유명한 등장인물은 세 마녀들이다. 그들은 주인공 멕베스에게 예언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심는 운명의 자매들이다. 그들은 한국의 무속과 주술적 신통 능력을 보여주는 무당과는 조금 다르다. 뱀, 개구리, 흉측하고 험한 생명체를 가마솥에 넣고 삶는 게 일이다. 그리고 빗자루를 타고 다니며 바람을 이용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폭풍을 가지고 인간의 배를 정복시키기도 하는 사뜩한 사술을 쓰는 서구의 전형적인 마녀들이다.
첫 장면부터 이런 마녀들이 등장한다.
멕베스는 충성스러운 친구 뱅코우와 스코틀랜드를 위해 용감히 싸워 승전했다. 귀향길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세 마녀로부터 엄청난 예언을 듣게 된다. 멕베스는 코더의 영주로 임명될 것이며 그 후 스코틀랜드의 왕이 될 거란 예언을 듣게 된다.
마녀들이 건넨 예언들은 매우 불완전하고 수수께끼와 같다. 마녀들의 속삭임은 구멍이 숭숭 뚫려 밑도 끝도 없다. 미주나 각주도 없이 멕베스가 코더의 영주가 되고 왕이 될 미래를 가졌단다. 엄청난 미끼가 던져지고 그는 낚인다. 미래는 이미 고정 값이다. 그 미완의 예언을 받아 든 멕베스와 그의 부인은 아무 고민 없이 불완전한 그물망을 사악한 탐욕으로 메운다.
“그들은 멕베스가 의심스럽고 불확실한 표현들을 잘 풀어서 빈 곳을 알맞게 채워 넣고-‘모든 것을 완벽하게’- 완벽한 상태로 만들도록 수수께끼 같은 말로써 자극한다.”
서문 in 『멕베스 Macbeth』
마녀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멕베스 Macbeth』는 11세기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비록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7세기 초반의 정치적 시대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사실 11세기, 17세기뿐 아니라 그 극이 반영하는 사뜩한 계략과 정치적 정쟁, 그리고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파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도 놀랍지 않게 목격된다. 어쩌면 정말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인간이 엄청난 과학적 기술적 문명적 발전을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신석기시대 이래로 인지적 지성적 진화는 여전하다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가 조금 딴 방향으로 갔다. 다시 마녀들에게 돌아가자.
『멕베스 Macbeth』에서 마녀들은 어쩌면 극의 재미를 더하고 관객을 끌기 위한 장치였을 수 있다. 극이 상연될 시기는 과학적 규명이랄 것 없는 초자연적 상상력이 날뛰던 시대였다. 현대의 마법이 하나의 공연으로 존재하는데 반해 오래전 과거 마법은 그들에겐 현실이었다. 실체 없는 마법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과 신념은 폭발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엔 마녀들이 일상에 후미진 곳에 존재하는 것들이라 여겼을 것이다. 16-17세기 마녀 재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공연을 보던 사람들은 마녀의 존재를 믿었을 것이다. 물론 현대를 사는 이들 중에도 주술과 무속에 의존하는 이들이 있듯이 사술과 예언을 믿는 이들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어디든 존재한다.
사실 마녀는 전통적 여성상과 대비되는 여성들을 떠올릴 때 함께 하는 단어이다. 순종적이지도 조신하지 않은 여성들, 특히 남성들의 능력과 용기를 능가해 그들을 위협하는 여자들, 그럼으로써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악한 여성들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그래서 마녀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머리는 길게 산발하고 굽은 큰 코에 괴이하게 주름진 얼굴을 한다. 그리고 세 마녀들은 멕베스 부인과의 연관성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자신이 여성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당시 부정적 여성성에 분노하는 대중들을 극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 이는 전적으로 글쓴이의 견해이다.) 극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연극은 멕베스 부인이 그를 파멸로 몰고 갔다는 강렬한 인상을 주며 그녀를 마녀들과 연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실 멕베스의 파괴적 도파민은 마녀들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마녀들의 예언이 멕베스의 잠자던 욕망을 뒤흔들고 또 하나의 악녀인 멕베스 부인이 그의 욕망이 실행되도록 지휘한다. 말 그대로 멕베스가 세 마녀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멕베스 부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운명은 오히려 더 나았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멕베스의 우둔한 탐욕을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마녀와 멕베스 부인의 간교한 부추김과 용의주도함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미완의 예언이 완성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오자 진정 마녀들은 어떤 존재들인가? 그들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존재이다. 그들은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마녀들은 악한 존재이다. 인간의 마음 깊이 잠자고 있는 악을 깨우는데 매우 능통하다.
‘그놈의 배를 난파시킬 수 없지만 폭풍으로 실컷 뒤흔들어 놔야지. “
첫 번째 마녀
마녀들은 인간의 욕망이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인간의 심성을 뒤흔들어 깨우기만 하면 다음은 인간 스스로 난파선에 오른다.
이처럼 세 마녀는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는 외부적 존재일 수 있지만, 인간 심연에 깃든 심술과 변덕, 사악함, 즉 인간의 선하지 못한 악한 본성의 반영일 수 있다. 열리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에 꽈리를 틀고 들어앉은 못된 것들일 수 있단 말이다. 그리고 그 요망한 것들은 불시에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숨죽이고 있었던 대가, 그 수고의 계산서를 들이민다.
삶의 본질은 거짓이다
장르가 연극이기도 하지만『멕베스 Macbeth』는 이야기 자체로 연극성이 치사량에 이른다. 뭔 소리야 싶겠다. 이미 암시했듯이 마녀들의 예언을 바탕으로 멕베스의 미래는 정해진다. 마녀들이 내민 예언이라는 불완전한 대본을 받아 든 멕베스 부부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들 나름의 야심을 담아 세심히 다듬어진 대본을 완성한다. 멕베스는 마녀의 예언을 듣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예언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다음 결단 앞에 미적거린다. 그 순간 최대 조력자이자 연출가인 멕베스 부인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마녀들의 예언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녀에게 예언 자체가 목적이며 대본의 결말이 된다. 능동적이고 신속하며 주도 면밀히 대본을 만든다. 남편을 적절히 통제하며 그의 역할을 세심히 알려준다. 용기 없고 수동적으로 머뭇거리는 남편을 책망하기도 하고 용기를 북돋기도 하며 그가 왕을 암살하도록 그리고 왕위에 오를 수 있게 모든 무대를 지휘한다.
하지만 그들의 극은 비극이 된다. 결말은 그들이 원하던 것이 아니다.
“ 인생이란 그저 걸어 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 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우쭐대고 투덜거리지만, 곧바로 잊히는 가련한 배우. 그것은 바보 천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이다.”
멕베스
멕베스가 죄악의 무게에 고통스러워하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내뱉은 대사이다. 인간 삶의 본질을 예리하게 집는 대사이다. 삶은 자신을 연기하는 무대이다. 나라는 인간을 연기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에 직면하고 다양한 인간적 본성과 욕망의 충동질 속에서 삶의 과정을 통과한다. 삶을 산다는 것은 각자가 나름의 대본으로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삶은 그림자, 진짜가 아니라 허구, 거짓에 가까울 수 있다. 연극은 관객을 잘 속여야 한다. 그래야 극은 진짜라고 느낄 정도의 설득력을 지녀 성공한다. 삶도 거짓의 본질에서 벗어나 진짜가 되려면 마찬가지다. 나를 연기할 때 타인들에게 공감을 얻고 나의 진정성과 선함이 전달되어야 '나'라는 연기자와 나의 삶인 연극에서 성공할 수 있다. 분명 멕베스 부부는 권력을 얻기 위해 계략을 세우고 그 계략에 따라 연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자, 연극은 실패한다. 멕베스 부부는 진정한 친구들,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시종들에게 정당성과 공감을 얻지 못한다. 다시말해 그들은 그들 삶을 보는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공감도 지능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산다. 그 삶이라는 무대 위에 각자는 배우의 역할을 한다. 무대 위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결정한다.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욕구와 욕심을 먼저 채우기 위해 내 이익이 먼저인 사람으로 살 것이지 선택하며 살아간다. 선하게 사느냐 악하게 사느냐는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물론 니체는 선하게 산다는 것을 노예근성이라 말했지만 그건 그 양반의 생각이고 어쨌든 글쓴이는 인간의 선함은 타인에 대한 사랑의 본질이라 여기기에 선함의 힘을 믿는다.
또 딴소리 시전.....
삶이라는 무대 속에서 우리는 어떤 대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 선한 것은 악한 것, 악한 것은 선한 것.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을 날아다니자.”
마녀들 in Macbeth
극의 초반에 나오는 마녀들의 대사이다.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어떤 면에서는 한 끗 차이 일 수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의 행위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지닌다. 예언을 받은 멕베스는 악랄한 선택이 아니라 분명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 코더의 영주로 살며 선한 영주이자 왕의 충성스러운 신하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왕이 될 수 있다는 야심을 마음에 품은 채, 구태여 살인이나 잔악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왕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런 선택 대신에 서둘러 탐욕을 채우기 위해 가장 악한 대본을 선택한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데에는 그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그의 아내가 큰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멕베스가 가장 극악한 선택을 한 이유는 공감의 문제이다. 그의 욕심은 그가 저지를 악행의 결과로 발생할 타인의 감정과 그들의 비극적 결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게 타인의 목숨과 안위는 권력을 획득하는데 도구일 뿐이다. 갖가지 술수를 통해 타인을 이용하고 그들을 속이고 배신한다.
멕베스 부부에 의해 왕은 잠자는 중에 살해되고 그의 아들들은 그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모함으로 도주하며, 충성스럽고 진실된 동료인 뱅쿠오도 멕더프의 아내와 아들도 제거된다. 가족, 친구, 지인 간의 사랑과 신뢰, 충성심, 진정성 등의 소중한 인간 본성과 가치들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고상하고 품위 있는 인간적 덕목을 패데기 치고 인간의 추악한 본질의 강력함을 유감없이 전시한다.
탐욕에 눈이 먼 부부에겐 악행의 결과로부터 발생되는 타인들의 지옥과 슬픔을 미리 상상하고 그려보고 그것을 느끼는 감정적 능력, 공감은 없다. 물론 감당 안 되는 분수에 넘치는 일을 벌이고 미래에 찾아올 파멸과 비극을 예상 못하는 것으로 봐서 스스로의 능력치를 인식하는 메타인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공감은 지능이다. 멕베스 부부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 타인의 감정이 어떨지 공감할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권력 찬탈은 타인의 공감과 조력을 얻지 못했으며 명분도 없었다. 멕베스 부부는 분명 계략을 꾸며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지략을 겸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로 일어날 타인들의 분노와 반격, 복수의 힘을 무시한다.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사랑하고 느끼면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파괴할 때 발생될 부작용을 예측하지 못했다.
멕베스는 극심한 공포로 죽은 유령들의 환상과 환시에 시달린다. 멕베스 부인도 몽유병에 걸려 밤마다 성 안을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그들의 죄를 고백하며 다닌다. 그녀는 죄책감과 공포로 병증이 심해져 자살하고 멕베스는 그의 악행으로 죽임을 당한다. 사실 공감의 지능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감각과 인식 능력이 요구된다. 이 지능은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끊임없는 단련과 수련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멕베스 Macbeth』,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 김 강, 펭귄클래식,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