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세이 8 『작별 선물 The Parting Gift』
"당신이 겪은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을 치유할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가보르 마테 (Dr. Gabor Maté)
『푸른 들판을 걷다 Walk the Blue Fields』는 2007년 출판된 클레어 키건(Clair Keegan)의 8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단편집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게 주로 아일랜드 지역성과 목가성을 배경으로 한다. 아일랜드의 사회, 종교, 일상의 뒤틀린 현실을 담담히 묘사한다. 대체적으로 문체는 간결하나 정확하고, 담백하나 은유적이다. 그녀는 부러 독자에게서 과도한 감정을 끌어내려 노력하지 않는다. 독자를 쥐어짜는 대신 감정의 여백을 내어준다. 독자 각자의 상상력과 사색의 깊이에 따라 그 여백은 다양하게 채워진다. 공동체 내에서 역할과 권위를 잃은 종교, 신에 대한 사랑과 세속적 사랑 앞에 망설이는 사제, 가정 내 구성원을 파괴하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자들, 어느 하나 잘난 구석이 없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사람들, 결혼 생활 동안 삶의 결핍을 메우지 못하는 여성들, 건강하지 못한 부모 아래 자라는 고통 받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키건의 인물들은 삶에 서툴고 투박하나 생명력을 지닌다. 그들의 정서는 아일랜드의 기후와 묘하게 어우러진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적 설명에 공들이기 보다 농가의 일상과 목가적 자연과 날씨, 기후변화를 잘 이용한다. 아일랜드의 거칠고 변덕스런 기후와 같은 녹녹치 않은 일상은 인간에게 불어 닥치는 시련인 동시에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감정을 반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키건은 우울과 좌절을 부채질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투성이의 인물들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녀는 그들에게 절망에 빠진 채 좌절 속에 발목 잡히기보다 새로운 단계로 나아 갈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 그 고통에만 집중하지 말라. 그 고통이 깊게 스며든 어두운 방의 문을 열고 한 줄기 빛이 인도하는 새로운 삶을 향한 통로로 나아가길 충고한다.
연약하지만 꺽이지 않는...
『작별 선물 The parting Gift』은 어릴 적 부터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정신적 물리적 폭력성에 노출되었던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가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집을 떠나 뉴욕의 대학교로 가는 날 아침을 배경으로 한다. 아버지의 학대도 참기 힘들었지만 그것을 방관하며, 자기 대신 딸을 그에게 성적 재물로 바친 어머니의 행위는 끔찍했다. 생물학적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모로써의 자격이 없었다. 그녀를 보호하지 못하는 가정, 집이라는 공간은 그녀에게 지옥이었다.
아이는 연약했지만 꺽이지 않았다.
“벚나무가 휘어진다. 바람이 강할수록 나무도 강해진다.”
사실 그녀가 삶을 꿋꿋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하려했던 오빠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동생을 아버지의 야만적 폭력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한 오빠의 모습은 부모의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그는어린 부모였다. 물론 어린 여동생에게 신체적 안전과 보살핌을 제공하려는 몇 살위 오빠의 노력은 그녀를 온전히 보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살아남아 탈출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 힘을 준 근원이었다.
오빠는 아버지가 여동생의 방을 함부로 열지 못하게 여동생의 방에 자물쇠를 만들어준다. 어린 시절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준 그녀 방의 열쇠는 여동생의 공간에 대한, 자신의 몸에 대한, 자신에 대한 자기 결정권과 주도권을 상징한다. 그 열쇠는 그녀의 방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이는 오직 그녀임을 알려준다.
그녀는 안다. 과거와 현재의 고통이 가득한 문을 열고 나아가 새로운 삶, 미래의 문을 열어 젖혀야 하는 이 또한 자신인 것을 안다. 마침내 그녀는 오빠의 트럭에 몸을 싣고 뉴욕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공항으로 간다.
치유, 또 하나의 성장
“모든 것이 흐릿해지지만 당신은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티셔츠와 면세점을 지나 게이트로 향한다. 마침내 게이트에 도착하니 거의 아무도 없지만 당신은 여기가 맞다는 걸 안다. 당신은 또 다른 문을 찾다가 여자의 신체 일부를 알아본다. 문을 밀자 열린다. 당신은 환한 개수대 거울을 지나친다. 누군가가 괜찮냐고 묻지만-정말 바보같은 질문이다-당신은 또 다른 문을 열었다 닫을 때 까지, 칸막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문을 잠글 때까지 울지 않는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딸이지만 여성으로 느끼는 양가적 감정 앞에 그녀는 잠시 아버지 옆에 어머니만 두고 떠나는 것에 죄의식을 느낀다. 불행한 어머니의 삶, 죽을 때까지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그녀의 삶이 떠오른다. 불행한 과거 속에 드문드문 존재하는 혈연의 정에 머뭇거리고 남겨둔 슬픔에 눈 앞이 흐려진다.
하지만 그녀는 떠나야 한다. 폭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던 과거를 뒤로하고 미래 앞에 버티고 선 완고한 문을 열어야 한다. 상처들을 치유하고 더 나은 성장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비행기 탑승 전 잠시 안전한 공간, 그녀만의 공간을 찾아 그녀는 슬픔의 감정을 털어낸다. 마침 그곳이 화장실이라는 것이 뜬금없지만 너무 적확해 실소를 자아낸다. 어쩌면 그 화장실은 썩어 문드러진 감정의 찌꺼기를 배출하기에 안성마춤일 수 있다. 그곳에서 그녀는 고통, 증오, 연민, 상처 가득한 사랑 등, 복잡한 감정들을 쏟아낸다.
가보르 마테 (Dr. Gabor Maté)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트라우마나 상처에 머물 수도 있지만 자기 책임과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치유 여정을 선택할 수도 있다. 분명 그녀는 후자를 선택했다. 과거와 작별하고 더 나은 삶을 시작할 책임감과 용기를 지니고 있다. 상처 위 딱지가 떨어지면 새 살이 돋아 날 것이다. 상처에 차 오른 새 살은 주변부와 다를 것이다. 분명 그 얼룩은 그녀의 삶에 강인함을 더할 것이다.
참고문헌: 『푸른 들판을 걷다 Walk the Blue Fields』,
클레어 키건, 역 허진, 다산책방,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