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에세이 7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인간이란 행동으로 자기 얼굴을 그린다.”
..... “행동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르트르 『존재와 비존재』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은 1985년 크리스마스 즈음의 아일랜드의 자그마한 마을 뉴로스(New Ross)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빌 펄롱(Bill Furlong)은 아내와 다섯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그는 석탄과 장작을 배달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딸들과 함께 하는 평온하고 소박한 일상에 만족한다.
어느날 그는 수녀원에 배달을 간다. 수녀원이 관리하는 선한 목자 수녀회는 직업 여학교와 세탁소를 겸한다. 사실 그곳은 모자보건소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결혼 하지 않은 여자들이 임신을 하면 가족이 미혼모를 그곳에 보낸다. 그곳은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들을 학대하며 미혼모의 아이들은 부유한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에 입양한다는 흉흉한 소문들로 무성한 곳이었다. 처음 그는 도움을 요청하는 여자아이들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마을에 공공연히 퍼져있던 수녀원의 악행을 직접 목격한 빌은 소녀들을 구조해야할지 아니면 무시한 채 일상을 살아가야할지 고민에 빠진다. 공동체의 침묵 속에서 혼자서 어려운 도덕적 선택을 해야 했다. 가족들이 처하게 될 위기에 대한 두려움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 선 빌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섬세하게 펼쳐진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배로 강은 노역으로 학대당하던 소녀들이 고단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몸을 던진 강이다. 이 구절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역자는 키건에게 연락하여 첫 문단을 어떻게 번역해야할지 조언을 받았다.
“‘헐벗다’,‘벗기다’, ‘가라앉다’,‘북슬북슬하다’,‘끈’, ‘흑맥주’,‘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이 책을 처음 읽는 독자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의 암시를 의식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저는 좋은 이야기의 기준 가운데 하나는 독자가 이야기를 다 읽고 첫 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도입 부분이 전체 서사의 일부로 느껴지고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그 뒤에 이어질 내용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 조그마한 일탈: 선행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은 아일랜드의 악명 높았던 막달레나 수녀원 이야기를 실화적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직접 경험 한 적 없는 일인데도 익숙하고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야기이다.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적 선이 소실된 공동체에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건의 중심엔 학대하고 이용하고 착취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들을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는 이들이 있고 그 일에 공조자였거나 방관자였던 공공기관이 있다. 마지막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 사실을 묵인했던 수동적 공동체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누군가는 행동한다. 이 세상엔 어려운 이들을 보고 가만있지 못하고 무엇이든 도움을 주려는 양심적인 개인들이 많다. 그들의 행동은 지나치게 클 필요도 거대한 의미나 대의가 있거나 하지 않다. 단지 그렇게 해야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 마음의 근간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약자들을 보고 외면하지 않은 마음, 연민과 공감에서 우러나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을 위해선 엄청난 고민과 갈등이 동반된다. 일상의 궤도에서 탈선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행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아주 평범한 누군가의 조그마한 일탈에서 비롯된다. 사실 누군가의 작고 선한 일탈 덕분에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된다. 때론 그것이 평범한 일상아래 감추어 두었던 추악한 진실을 들추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주인공 빌 펄롱이 겪는 도덕적 갈등은 우리 중 누구라도 한번 씩 경험할 수 있다. 빌의 도덕적 선택의 배경은 무엇일까? 빌의 엄마는 열 여섯에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가사 일꾼으로 일하던 중 임신을 했다. 그녀가 곤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가족들마저 외면했다. 그녀를 거둔 건 그녀를 고용했던 미시즈 윌슨이었다. 미시즈 윌슨은 피붙이는 아니었지만 기꺼이 갈 곳 없는 두 모자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농장 일꾼 네드도 그들과 한 가족으로 함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죽고 난 후에도 읠슨과 네드는 빌을 사랑과 관심으로 키운다. 아버지에 대한 갈망과 그리움이 있었지만 빌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그들의 보살핌으로 충분했다.
미시즈 윌슨의 선행이 없었다면 빌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린 시절 빌의 든든한 정신적 물리적 지원군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보살핌은 빌에게 자기 존재의 긍정성과 자긍심을 길러 주었다. 그것은 그가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중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게 했다.
미시즈 윌슨의 선행은 빌에게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선행은 빌의 선행이라는 또 다른 선행을 만드는 동기가 되었다. 그녀는 두 모자의 어려움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빌 모자는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멸시를 받는 수녀원의 아이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미시즈 윌슨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론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사실 빌의 유일한 관심사는 가족이었다. 그에게 가족을 잘 부양하고 딸들을 잘 키우겠다는 소망은 그의 전부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이 살벌하고 척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납작 업드려 앞만 보고 살기로 했다. 일상이 흐트러지지 않게... 수동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의 일상엔 아무 일도 없다. 정말 그럴까? 어려움에 처한 이가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니라 괜찮을까? 하지만 미시즈 윌슨의 조그만 선행이 빚어낸 빌이라는 인격은 다른 대답을 한다.
2. 나만 아니면 돼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빌은 수녀원을 다녀온 이 후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편치 않다. 참을 수 없어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아내 아일린은 그런 일이 그들과 상관이 없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한다. 수녀원은 그들에게 더 없이 고마운 거래처라고 말한다.
“아무 상관 없지. 우리한테 무슨 책임이있어?”
“그게,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 말을 듣다 보니 잘 모르겠네.” .....
“ 사람이 살아 가려면 모른척 해야 할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아내 아일린의 대답과 선택은 매우 현실적이다. 자칫 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남의 일은 모른 척 살기... 수녀원의 소녀들은 내 딸들이 아니며 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을 섣불리 도우려 나서다 마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수녀회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두려울 수 있다. 마을에 거대한 영향력을 지닌 수녀회와 맞서다간 생계도 위태로워지며 수녀회 학교를 다녀야 하는 딸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아일린의 선택을 탓할 수 없다. 그녀 나름의 생존 방식이며 가족을 위한 영리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일린의 대답은 빌을 위로하긴 커녕 도덕적 갈등을 한층 더 한다. 우리에게만 그런 불행이 없으면 괜찮은가? 그 일이 우리에겐 일어나지 않을까?
계속되는 아일린과의 대화는 빌에게 이 상황이 괜찮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당신이 모르는 거 같아서, 당신은 딱히 어려움을 모르고 컸잖아.”
“ 무슨 어려움 말야?”
“ 그게 세상에는 사고치는 여자아이들이 있어. 당신도 그건 잘 알겠지.”
아일린의 인식과 선택은 손쉽게 도덕적 갈등에서 벗어 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커다란 도덕적 모순을 안고 있다. 사실 그녀는 학대 받는 소녀들, 어려움을 겪는 도움이 필요한 소녀들을 피해자로 보고 있지 않다. 소녀들을 피해자가 아닌 세상을 어지럽히고 문란하게 만드는 가해자로 보고 있다. 여기에 가해자의 시선이라는 기적의 논리가 등장한다. 가해자의 시선은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아일린과의 대화는 빌에게 큰 타격을 준다. 빌은 미혼모였던 어머니에게서 자란 자신에 대한 아내의 배려와 이해가 없음을 느낀다. 그리고 아내의 선택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 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었다고.”
“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펄롱이 아일린을 쳐다 보았다.“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빌이 그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소녀들이 그의 어머니와 딸들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그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미시즈 윌슨이 없었다면 그와 그의 어머니는 사회적 약자, 수녀원의 소녀와 아이들처럼 피해자가 될 뻔 했다. 그는 학대받는 소녀들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 아일린은 빌과 반대 지점에 서 있다. 피해자의 시선에서 그들과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선에 동참한다. 하지만 아내 아일린이 보여준 가해자의 시선과 인식은 빌을 거울 치료한다. 그래서 그는 침묵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미시즈 윌슨이 되기로 선택한다.
3. 뻔하게 괜찮은 사람들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의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 즈음이다. 왜 크리스마스인가? 그날은 예수탄생일, 신의 사랑이 온 천하에 깃드는 날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과 사랑이 넘쳐야 할 수녀원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장소였다. 그날 도덕적 양심으로 용기를 내어 도움이 필요한 소녀를 구한 이는 신부도 수녀도 신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다.
뻔하게 괜찮은 사람....
크리스마스라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며 하늘엔 기쁨이 지상엔 축복이 내리는 날이다. 아이들은 산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자그마한 선물을 기대할 수 있는 날이다. 참으로 뻔한 날이다. 그래서 그 날은 뻔하게 누구에게나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한다. 수녀원의 아이들도.. 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뻔하게 괜찮은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다. 아내와 딸들을 사랑한다. 어려운 이들을 보면 연민과 동정을 느끼며 그들을 돕는다. 남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하며 다른 이의 도움과 관심에 감사한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할 줄 안다. 참으로 뻔하다. 때론 그 뻔한 것이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속시킨다.
그렇게 뻔하게 괜찮은 사람들이....
참고문헌: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 클레어 키건,
역. 홍한별, 다산책방,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