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교도소 안에는 많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교도소임에도 모든 물건을 구할 수 있고, 교도소 안 죄수들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쁜 놈들이 태반인 교도소이지만, 브룩스처럼 새를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들도 있다. 자유를 박탈당한 곳에서도 앤디와 레드는 우정을 쌓았고, 앤디는 도서관을 짓고, 누군가를 가르쳤다. 또한 교도소는 형벌로서 죄를 씻어내는 공간임에도 소장과 간수가 불법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신성성을 없앤다. 왜 교도소임에도 그냥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처럼 보여지는지, 또 그렇게 연출했는지 고민해 보았다. 1~5번까지 모두 우리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행위이고, 사람들이다. 소재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일지는 몰라도, ‘자유’라는 메시지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이라면 학교를, 직장인이라면 회사를, 더 나아가 인간관계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원칙 같은 것에도 교도소를 투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도소를 특별하게 연출하지 않고 이런 아이러니들을 넣은 것은 관객들이 ‘투영’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구원
노튼 소장은 앤디의 성경 책을 되돌려주며 그 안에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때부터 의문이 들었다. 앤디가 정말 죄를 짓지 않았다면 과연 구원은 누가 해주는 것인가? 앤디가 가석방을 하는 것이 구원이라면 그건 소장의 권한이니 인간은 인간이 구원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일까. 선과 악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무엇이 절망인지, 구원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자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
성경 책 속 망치
결말 부분에, 소장은 앤디가 성경 책 속에 망치를 넣기 위한 홈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앤디는 책 표지에 ‘소장님 말이 맞았어요. 구원은 성경 속에 있었어요.’라고 적어놓았다. 결국 구원은, 성경이 아니라 망치 안에 있었다는 말이다. 앤디는 인간에게도, 신에게도 아닌 스스로 자신을 구원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 중, 유명한 구절이다. 새로운 세계, 혁신을 위해서는 기존에 있던 것을 부서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도 ‘스스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망치로 흙을 파낸 앤디, 밖으로 나가기 위해 힘껏 부리를 쪼아댄 새. 그들은 자유와 세상을 얻었다. 스스로 해낸 일일수록, 밖에서 그들의 힘은 더욱 강하다.
#길들이기
가석방이 허가된 브룩스는 동료를 해하려 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래야 여기 더 있을 수 있어.” 이에 레드는 그가 미친 게 아니라며 교도소에 길들여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에 잡혀 애완동물이 된 고양이가 다시 밖으로 풀어졌을 때, 스스로 먹이를 구하지 못하거나 밖 생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브룩스는 교도소에 몇십 년간 있었기에 바깥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몰라 불안해했다. 적응하기 힘들어했고, 또 사회도 그런 그를 반기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는 임신과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돼 사회에 복귀를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생각났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은 너무나 편한 일이다. 그 안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하거나 못한 사람들뿐이니 조바심이 들지도 않고, 딱히 노력할 필요도 없으니 몹시 편안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평생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지만, 브룩스처럼 언제 그 세상이 깨질지 모르는 일이다. 그 세상과 하나가 된다면 깨지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혼자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
앤디는 죄수 동료들에게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건 빼앗아 갈 수 없거든” 이 대사에서 결국 앤디가 여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에는 지식, 우정, 종교 같은 것들이 있는데, 모두 앤디가 교도소 안에서 지키고, 만들려 했던 것이다. 교도소를 차린다던가, 죄수들에게 맥주를 선물한다던가, 성경을 읽는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을 빼앗기게 되면 그때는 정말 예전처럼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음악을 틀어 놓고 미소 짓는 주인공
앤디는 그중에서도 음악을 ‘희망’으로 보았는데, 레드에게 희망은 절대 빼앗기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레드는 하모니카(희망)도 여기에서는 쓸모없기에 불지 않는다고 하고, 희망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마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이미 빼앗길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앤디가 그에게 하모니카를 선물하고, 그는 그것을 작게나마 불어 본다. 그 작은 희망은 그가 가석방이 되었을 때 길잡이 역할이 되어주었다. 다시 인간으로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설사 돼지우리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끝까지 간직하며 지내야 한다. 그래야 언제든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