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 보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모든 욕망은 나를 파괴한다.’
연습하는 릴리를 보며 단장은 니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자유롭다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릴리가 매력적이라고.
릴리에게 열등감과 불안함을 느낀 니나는 흑조가 되기 위해 매일 같이 연습하지만 쉽지 않다.
니나는 항상 완벽한 백조 연기를 해왔지만, 흑조와 백조는 너무나 달랐다.
흑조는 자유롭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반면 니나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절제하려 했다.
니나가 그런 성향을 가지게 된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그녀의 엄마이다.
니나를 가지고 무용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녀는 니나만큼은 훨훨 날아다니길 바랐다.
자신처럼 되지 않길 바랐고, 자신 대신 꿈을 이뤄주었으면 했다.
니나 역시 어머니의 아픔을 알았기에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동기부여가 아닌 한 종류의 압박이었다.
엄마가 자신 때문에 무용수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는 죄책감,
그렇기에 자신이 대신 꿈을 이뤄야 한다는 압박이 그녀를 점점 병들게 했고, 자신 안에 있던 ‘흑조’를 숨겼다. 본래 성격은 하나였지만, 그 안의 어두운 것을 계속 숨기고 가두다 보니 니나는 결국 자아가 분열되었다.
하지만 완벽한 흑조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지고, 흑조를 상징하는 릴리와 어울리면서 점차 내면에 숨겨져 있던 흑조의 모습이 깨어난다. 자유로운 흑조가, 관능적인 흑조가 된다.
그럼 릴리는 자유로워진 것일까. 릴리의 흑조 앞에는 또 다른 수식어가 붙는다.
‘완벽히 자유로운, 관능적인 흑조.’
결국 니나는 완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아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내면을 들여다보는 물체를 상징하는 거울이 매우 많이 나온다. 니나가 화면 쪽을 보고 있을 때, 거울에는 니나의 뒷모습이 보인다거나, 여러 개의 거울이 한 데 모여있어 니나의 모습이 여러 개로 비친다거나, 지하철 창문을 본다거나 하는 연출이 정말 많다.
거울의 상징은 후반부에 확실하게 보이는데, 바로 니나가 릴리를 살해하는(사실은 아니었지만) 장면에서 나온다. 릴리에 대한 열등감과 자기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극에 치달았을 때, 니나는 릴리를 거울에 밀친다. 거울이 깨지고, 릴리의 모습은 흑조 의상을 입은 니나로 변한다. 니나는 그녀를 유리조각으로 찌르는 순간이 거울 밖 니나와 거울 속 니나의 자아가 완전히 뒤바뀌는 찰나이다. 니나는 단장에게 릴리가 자긴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지만, 정작 니나를 노리는 건 또 다른 자아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니나는 흑조 의상을 입은 ‘니나’를 죽이지만, 실제로는 백조였던 원래 자아를 죽였다. 그건 마지막 장면에서 알 수 있는데, 흑조 연기를 할 땐 아무렇지도 않았던 니니가 백조 의상을 입자, 유리조각으로 찔렀던 위치에서 피가 나온다.
마지막에 니나는 연기를 마치기 위해 단상 위에서 뛰어내리는데, 그 장면은 극 중에서 백조가 자살하는 장면이다. 유리조각으로 자신을 찌른 것도, 단상에서 뛰어내린 것도 모두 니나 자신이다. 극 중 백조와, 니나의 원래 자아인 백조가 동일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니나는 ‘난 완벽했어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그 말은 매우 모순적이다. 단정은 완벽하지 않고, 부정확해도 그것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 흑조라고 했다. 끝까지 완벽했던 니나는 결국 완전한 흑조가 되지 못했다. 그녀는 완벽했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했다. 니나를 그렇게 옭매였던 ‘완벽’은 백조를 죽이고 불안정한 흑조가 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