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서른이 넘기 전에
줄거리 소개 [출처] 네이버 영화
파니 핑크는 자의식이 강한 29살의 노처녀. 집, 직업, 친구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정작 사랑할 남자가 그녀에겐 없다. 더 늦기 전에 한 남자를 빨리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퀼른-본 공항의 소지품 검색원으로 일하며, 비행기 소음이 떠나지 않는 퀼른의 허름한 고층아파트에 산다.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면서 마인드 콘트롤을 하고, 죽음의 과정을 연습하는 강좌를 들으며 자신이 잠들 관을 짜서 방에 두기도 하지만, 29살이 되는 처녀에겐 공허할 뿐이다. 파니는 어느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오르페오 드 알타마르를 만난다. 그는 천리안을 가진 사람처럼 심령술에 정통해 있는 신비로운 영혼의 소유자, 파니에게 운명의 한 남자를 예언해 주게 된다. 아르마니 상표의 옷을 입고, 고급 블랙카를 모는 30대 초반의 탐스러운 금발을 한 남자를, 그리고 23이라는 숫자가 그 남자의 징표라고... 망설이며 자신없어하는 파니에게 오르페오는 그 남자가 파니 인생에 있어, 마지막 남자라고 강조한다. 신통치는 않았지만, 기대에 찬 예언에 돈을 지불한다. 아침 출근길에 2323번을 단 로타르슈커의 블랙 재규어를 보았을때 파니는 운명을 믿게 된다. 수줍음 많은 파니는 두 눈을 꼭 감고 로타르의 차와 충돌하면서, 자신에 마지막 사랑찬스에 정력적으로 달려드는데.
전에 커뮤니티에서 어떤 글을 접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에 관한 글이었는데 거기에서 그 이유가 나이에 따른 기준이라고 했다. 이것만 없어져도 우리나라 우울증의 절반이 없어질 것이라고 글쓴이는 확신했다. 그때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빨리 남들을 쫓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조급함을 만들고 조급함은 신중하게 선택할 기회와 시간을 빼앗는다. 아주 운이 좋아 그 선택이 내게 좋은 삶으로 인도해 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삶에 어긋남을 주고 결국엔 잘 선택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까지 안겨준다.
영화 속 파니 핑크도 마찬가지다. 30세가 지나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조급해하며 결혼 상대를 찾으려 한다. 그녀의 엄마 역시 상대가 누구든 간에 어떻게든 빨리 결혼시키려 하고, 같은 직장 동료는 서른 넘은 여자를 원자폭탄에 빗대며 자존감을 깎아먹는다. 이 영화가 1995년에 나온 영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물론 그때에 비해 결혼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혼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나이 마지노선’에 서게 되면 불안에 떨게 된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거기다 ‘언제 결혼할 거냐.’ ‘지금 안 하면 못한다.’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굳게 다짐했던 결심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안 하면 나중엔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결혼할 남자를 찾게 된다.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에 꼭 맞는 남자를 찾게 되는 것도 아니다. 시기가 지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여자는 자신의 기준보다 훨씬 낮은 남자를 마지못해 선택하게 된다. (글쓴이와 주인공이 여자이기에 이렇게 표현했지만, 남자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오늘날 여자들과 1900년대 후반에 사는 파니 핑크가 정말 별다를 바 없다.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왜 이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을까. 직진만 하는 삶이 좋기야 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앞에 나무가 쓰러져 있을 수도, 물웅덩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돌아가려 하면, 왜 쉬운 길을 놔두고 돌아가냐고 한다. 나한텐 쉽지 않은데. 항상 나이를 기준 삼고, 그에 뒤처지면 낙오자라고 남을 비판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먼저 돌아가는 연습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파니 핑크는 평생 함께 할 대화 상대를 필요로 했다. 오르페오는 자신이 죽는 순간에 파니 핑크가 함께 하길 바랐다. 금발 남자는 혼자 자지 못했고, 파니 핑크가 자신의 유일한 아파트 친구라며 붙잡으려 했다. 이런 그들이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외로움이 합쳐져 똘똘 뭉치고 다른 모습으로 변해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외로운 상태에서 사랑을 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외로워서 하는 사랑은 결국 나 자신을 갉아먹게 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 인해 없어진 외로움은 언제든 다시 재발할 수 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타인이 떠나면 남는 게 없는 관계가 된다. 영화가 어딘가 공허하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등장인물 모두 외로움으로 타인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니 핑크는 금발 남자의 배신에 힘들어하다가, 곧 다른 남자가 자신의 운명의 짝이었음을 알게 되고 곧바로 웃으며 괴로움을 극복한다. 파니 핑크의 안에서, 타인이 빠져나가고 다시 다른 타인이 들어와 채워졌음을 알 수 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극복한다지만, 이렇게 곧바로 해결되는 게 사랑이라면, 난 그것을 믿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이란 단어와 주제가 계속 나온다. 파니 핑크는 ‘스스로 결정하는 죽음’ 모음에 가입해 있고, 집 안에는 관이 있다. 백인 남자는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오르페오는 애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살하려 했으며, 마지막엔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며 조금 특이하고 이상한 죽음을 맞이한다. 주요 세 인물 모두 죽음에 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그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르페오가 마지막에 파니 핑크에게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계속 앞으로만 가. 시계는 차지마. 항상 '지금'이란 시간만 가져.
그러면서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내가 앞서 나이 마지노선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사다. 시간과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파니 핑크의 집에 있던 ‘관’은 죽음 그 자체를 상징하며 그녀가 집에 관을 두는 것은 죽음과 미래에 얽매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그 관을 버림으로써 파니 핑크는 ‘지금’을 살게 된다. 이제 더 이상 그녀는 초조해지지 않고, 나이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