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연구원

아~연구하시구나, 어쩌다가...?

by 개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을 아시나요?"

"네, 대학원생에게 시키세요."

그렇다. 나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대학원생이었다. 대학원생 시절은 현재 미화된 추억이 되었지만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20대는 대학시절 내내 파도에 휩쓸리듯, 내 자리를 찾지 못하고 정착이라는 단어는 모르는 사람처럼 항상 부유하던 사람이었다. 뼛속까지 문과였던 나는 어찌어찌하다가 이과 계열로 흘러들어왔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던 선조들처럼 미적분 기호 놓고 미적분 대신 포르테만 열심히 외쳤던 교차지원 학생이 됐다.

이 교차지원 학생은 학년을 올라가면서 점점 전공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이 과 저 과 헤매며 타과 전공 학점 사냥꾼이 되었다. 여러 군데 기웃거리면서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 '뭐 먹고 살지.'였는데... 지금도 별다른 모습은 아닌듯하다.


어쩌다 내가 지금 연구원이라는 것이 되었을까. 이 이야기는 23살의 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마도 벚꽃이 피어있었던 23살의 봄, 내 한 몸 정착할 곳을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눈에 보였고 갑자기 독성학을 전공해서 저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어딘가에 홀리면 정신없이 앞만 보이고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데 23살의 나는 딱 어딘가에 홀린 것처럼 이런 마음을 먹게 되었다.

오잉, 난 아직도 의아하다. 어쩌다가...?


운명의 장난은 이때부터였나 보다.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은 진로담당 교수님을 찾아오라는 문자를 받았고 난 그 길로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렇게 진로담당 교수님이 그런 걸 목표로 한다면 나에게 딱 맞는 자리가 있다며 추천을 해주었고 그 해 8월, 실습생이라는 신분으로 어딘가에 빠져버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교수님을 지금 보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교수님, 전 교수님한테 감정은 없거든요? 근데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난생처음 보는 것들이 많던 실험실은 아주 신선했고 흥미로웠다. 또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그다음 해에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던 거겠지. 그때 대한민국 대학원은 취업의 도피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지금도 그런가?) 하지만 나는 지금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도피가 아니었고 진짜 큰 포부와 목표가 있었노라고! 나는 석사 면접 때 목표를 이야기해 보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주먹을 꽉 쥐고 손을 들며 쩌렁쩌렁 외쳤다. "넵! 저는 네이처에 논문을 내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라고. 아, 아닌가? 노벨상이 목표라고 했었나. 가물가물하다. 교수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성함도 생각 안 나지만 모르는 사이더라도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 몹시 부끄럽거든. 아- 그땐 몰랐겠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지.


후회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이것 또한 나의 지나온 인생이고 내가 끌어안아야 할 나의 것이 아닌가. 문득 출발점에서 계속될 나의 레이스를 글로써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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