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속 영역 넓히기

by 전선훈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신입사원 시기를 지나고 이제는 해외 거래선과 실질적인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일 배우는 재미도 있고 성과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재미가 있다.


그 과정에 내가 중심이 되어서 한다는 것이 지금 하는 일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문득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시장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


한정된 시장에서 독점 형태의 비즈니스가 아니라면 여러 거래선을 확보하는 활동을 왜 안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을 하는 제품이 아니라 철저하게 주문자에 의한 생산 체제인데 왜 거래선은 한 국가에 하나의 거래선만 고집을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신 과장님. 나라별로 거래선이 하나씩 이던데 무슨 이유가 있나요? 우리 제품은 주문자에 의한 생산 제품이 대부분이라 시장에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제품은 아닌 것 같은데요?”


궁금했다.


서로 경쟁을 할 이유가 없는 제품인데 거래선을 독점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지금 같은 영업 구조가 아니었지. 한 국가에 여러 거래선을 두고 엄청 바쁘게 공장을 돌리던 적이 있었어. 하지만 가끔씩 발생하던 품질 문제가 그 많던 거래선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지. 영업은 계속 거래를 하고 싶어 했지만 품질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았던 거지. 현재 경쟁사 대부분의 거래처는 예전 우리와 함께 거래하던 곳이야. 안타까운 일이지.”


“다시 거래를 재개할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 회사가 거래선한테 양치기 소년이 되었어.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회피하고 그러니 좋아할 거래선이 있겠어. 그러니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해서 지금 상태가 되어 버린 거야. 개선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돈 나가는 일에 회사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지. 문제가 생기면 다음 주문량에서 조금씩 공제해 나가는 형태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니 어느 거래선이 좋아하겠어. 그러니 그동안 매달 실적 달성에 애로사항이 많았던 거지.”


신 과장이 체념한 듯 답했다.


실제로 생산부서의 이기주의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자기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부서의 공정 문제로 돌리기 일쑤였고 확실한 물적 증거가 없는 한 유야무야 돼 버렸다.


기술자들의 이기심은 타 부서와의 협업을 어렵게 만들 뿐 제품의 품질 개선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업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 모르게 이면 계약을 통해 배상을 해주는 형태로 무마하면서 끌고 갔지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는 구조의 배상이었기에 거래선이 끊기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 사이 경쟁사들은 손쉽게 거래선을 확보하여 매출을 확대하는 반사이익을 챙기게 된 것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품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영업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과장님. 파일을 보니까 과거에 거래하던 거래선 연락처들이 다 있던데. 제가 다시 한번 연락을 해보면 어떨까요?”


“신입사원이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내가 하면 100% 거절을 하니 전화하기가 겁이 나. 하워드가 정리를 잘해서 연락을 해보세요. 그중에 한 곳이라도 성사되면 좋겠네.”


신 과장은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하워드라 불렀다.


부서의 모든 직원들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그리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업무 파일을 정리하면서 과거의 히스토리를 일일이 확인해 가면서 어떤 방법으로 접근을 하는 게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거래 중단 사유의 대부분은 품질 불만에 따른 보상 문제였고 끝까지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제안도 있었지만 그리 매력적인 제안은 아니었다고 생각되었고 보상 금액을 일정 기간에 나누어 내겠다는 제안밖에 할 수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과장님. 보상 제안이 천편일률 적이던데 다른 방법은 없었나요?”


“회사 몰래 여러 방법을 썼었지. 견적을 낼 때 최소 수량의 기준을 좀 변경해서 이익이 좋게 나오게 하는 수식을 사용하여 가격을 낮춰주는 방법도 써봤고 실제 주문 제품의 수량을 부풀려서 대형 오더인 것처럼 결재를 맡아서 생산해주기도 해 봤지만 다 실패했지. 할 수 있는 불법과 탈법은 다 했던 것 같아.. 하하하하.”


거래선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거래선들은 납품한 회사에서 클레임을 받으면 차기 주문을 위해서라도 100% 금액을 먼저 보상한 후 생산 제조 업체에 보상을 요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제조회사에서 변상 금액을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cash flow 문제가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몇 달씩 나누어서 변상하는 우리 회사의 보상 방법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할부로 외상값을 갚는 경우나 마찬가지라 자연스레 거래선들이 떨어져 나가게 된 구조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화 통화로 새로운 거래 제안을 하기에는 좀 무리라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위해서는 직접 얼굴을 보며 상담을 해야 효과가 있을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읍소 전략도 사용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과장님. 출장을 좀 다녀오면 안 되겠습니까? 직접 만나서 상담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좋은 생각이긴 하네. 하지만 해외 출장은 그리 쉽게 결정되는 사항이 아니어서 말이야. 사장님까지 결재를 맡아야 하는데 과정이 좀 까다롭고 더구나 신입사원이 해외 출장을 간 사례가 없으니 더욱 복잡하지.”


과장이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과장의 말에 의하면 해외 출장은 그동안 장기근속 근무자에 대한 보상 성격이 대부분이었고 영업 담당자들의 해외 출장도 아주 드문 기회라고 얘기했다.


“직접 만나 상담을 해야 해결될 일인데 팩스나 전화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맞는 말인데… 고민 좀 더 해보고 결론 내려 보자고.”


내가 너무 무리한 제안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외 영업을 책임지고 있는 부서가 해외로 출장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해외 출장 자체가 보상의 개념으로 취급된다는 말은 해외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일이었다.


신 과장도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좀 당황한 듯 보였고 회사의 문제가 업무에 지장을 받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였다.


매월 실적 달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난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대체… 거래선도 없는 해외 영업이 말이 되나…팔 곳이 있어야 공장을 돌리든 말든 하지…”


책상 위의 서류들을 정리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가든 못 가든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 과거의 거래선을 다시 모시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워야 할 상황이 되었고 그 전략을 빠른 시일에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하지만 전략에 대한 내용은 당분간 사장한테 보고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 과장과 협의하여 우리 둘만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이 동반되는 전략인 관계로 사실 그대로의 보고는 과거의 전례로 보면 통과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괜한 핀잔을 들을 수도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들어야 하는 전략이기에 내부 관련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진행해야 하는 비밀 프로젝트나 마찬가지였고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눈치라도 채는 날에는 큰 재앙의 불씨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실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도 이중성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신 과장과 나는 속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하면서 정당화하기 바빴지만 불법과 합법의 모호한 경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더 큰 것도 사실이었다.


지킬 과 하이드…


신 과장과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여 나타나게 될까…



신 과장과 전략에 대한 기초 내용을 정리한 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광화문 주변의 도로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멀리 북창동 골목의 네온사인이 환하게 불을 밝히기 시작하며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유혹한다.


혼잡한 차량에 뒤섞인 한낮의 도로는 어느새 온갖 불빛이 뒤섞인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을 시도한다.


그 분위기에 취한 직장인들은 삼삼오오 단골집으로 향하고 골목마다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 찬다.


북창동 골목길의 유혹을 애써 외면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늘 붐빈다.


그래서 좋다.


살아있는 느낌을 느낄 수 있어서…


난 퇴근하면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상위 포식자가 즐비한 정글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면서 영역을 지켜가는 나약한 동물들의 애절한 삶의 모습들이 흥미가 있어서 자주 본다.


어쩌면 그 나약한 동물에 내가 빙의되어 더욱 애잔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나름 먹이 사슬 관계가 확실하게 정리되어 있는 곳에서 자기 자신과 무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나와 비슷한 삶이라고 여겨져서 그럴 수도 있다.


집단의 리더가 되어 종족을 포식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행동과 먹을 것이 풍부한 곳으로 영역을 계속 넓혀 나가려고 하는 행동이 직장인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성과를 인정받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상생이란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야 남을 도와줄 여유가 생기는 것이고 나의 위치가 불안하다 느껴지면 불안요소의 싹을 잘라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조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행위의 중심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비난도 감수하고 실행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모든 성과는 다 내가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실패를 해야 나의 성과가 더 빛을 보게 되고 남보다 더 빨리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고 그 위치에 맞는 정당한 보상도 받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정글 속 동물들은 무리를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남을 이길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리더가 되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권한이 생기고 그 권한을 누리기 위해서 호시탐탐 리더의 자리를 넘보는 개체가 존재하는 것도 내가 살아가고 속해 있는 회사생활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정글 속 동물들의 거친 삶이 우리 직장인의 삶과 별 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되기에 난 늘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을 자주 본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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