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스토리 - Part 3

by 전선훈

출장 3일째 되는 날.


오늘은 홍콩의 국경일 이어서 예정되었던 미팅은 취소가 되었다.


휴식도 취할 겸 해서 오늘은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여행 일정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따르릉…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린다.


직감적으로 한국에서 온 전화라 느껴졌다.


어제 보낸 팩스 내용의 보고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온 전화라 생각했다.


“여보세요. 하워드입니다.”


신 과장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보고 내용에 대한 확인 차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하워드가 보낸 보고 내용이 엄청난 내용이어서 회사가 다들 난리가 났네. 첫 출장에 그 많은 금액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 않았는데.. 생산 쪽에서도 주문받은 양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계속 전화가 오는 상황이라 다시 확인하려 전화를 한 거네. 확실한 거지? “


“네. 맞습니다. 그리고 아직 몇 군데 더 미팅이 남아있습니다. 그것만 잘 마치면 추가 주문도 더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여기가 국경일이어서 예정된 미팅이 다 취소되었습니다. 추가로 진행되면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워드. 고생이 많아. 조금 더 수고하고 오늘 하루 좀 쉬시게.”


“네.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곽상무의 들뜬 목소리에 부서의 분위기가 어떤 상황일지 대충 짐작이 갔다.


생각지도 못한 주문량으로 인해 생산 부서와 해외 영업팀 모두가 활기차게 돌아갈 거라 생각하니 영업의 영향력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어차피 숫자 놀음이라고 선배들이 얘기했지만 영업의 영향력은 회사 전반에 강력한 단합 효과를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고 내용은 이미 곽상무에 의해서 사장님 포함 모든 부서에 조금은 더 부풀려져 알려졌을 거라 생각이 드니 기분이 묘했다.


모든 일의 좋은 결과는 늘 조금씩 부풀려져서 회자되기 마련이고 그런 행위가 경쟁 부서에는 가끔 치명타가 되기도 하는 게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반적인 상황이니 곽상무 또한 어쩔 수 없이 잘 포장된 말로 타 부서에게 말을 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직은 늘 그러한 것이다. 남을 철저하게 밟아야 내가.. 아니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호텔 앞 간이음식점에서 돼지 간으로 만들어진 죽을 아침으로 먹고 빅토리아 만(Victoria Bay) YMCA 호텔 옆으로 나 있는 산책길을 걸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여기저기 나이 든 분들이 단체로 태극권 체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모습이었지만 나름 운치가 있어 보였다.


안개가 살짝 드리운 빅토리아 만의 아침 모습은 야경과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벤치에 앉아 홍콩 섬의 모습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혹시 영어 할 줄 아세요? “


“네. 조금 합니다. 무얼 도와 드릴까요?”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으세요?”


“네. 카메라 주세요. 잘 찍어 드릴 게요.”


안개가 살짝 드리운 Bank of China 빌딩을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주고 돌아서는데 한국말이 들렸다.


“고맙습니다.”


“어. 한국 분이셨어요? 저도 지금 출장으로 와있습니다. 오늘이 여기 노는 날이어서 아무 일정이 없이 이곳에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어머 그러셨군요. 호호호. 저는 홍콩 분인지 알았어요. 호호호’’


“제가 그런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하하하.. 혼자 여행 다니시나 보네요?”


“네. 오늘이 마지막 날이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피곤해도 홍콩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에요. 너무 좋더라고요. 호호호.”


“일도 그렇고 잠깐 시간을 내서 돌아보는 홍콩은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잘 발달된 도시 국가 인 듯해도 골목 곳곳에 대륙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의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고 식민 시절의 숨기고 싶은 잔재들 또한 후세를 위해 잘 보존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네요. 이 멋진 곳이 몇 년 후면 중국으로 반환된다 하는 게 아쉽기는 합니다.’


“어머.. 홍콩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네요. 저도 그게 제일 아쉽게 생각됩니다. 중경삼림(重慶森林)이라는 영화 보셨죠? 그 영화 보면서 처음에 좀 이해가 안 됐지만 중국으로 반환되는 것에 대한 홍콩인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영화라 느꼈어요. 그래서 내 마음속 홍콩을 중국으로 보내는 반환식에 다시 와서 작별의 인사라도 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호호호호.’


이 여자 참 멋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느낌이 좋은 여자였지만 잘 정리된 본인 생각을 얘기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멋진 생각입니다. 저도 꼭 참석하려고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있습니다. 하하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안개가 걷혔고 주변 풍경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 중이었다.


건너편 홍콩섬의 빌딩들 사이로 반사된 햇빛은 빅토리아 만의 바닷물 속으로 투영되어 장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치 내 사랑의 시작을 환영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하워드… 아니 전 영문이라고 합니다.” 명함을 건네며 조심스레 소개를 했다.


“이름이 기억하기 편하네요. 호호호호. 저는 채 혜령이라고 해요. 어쩌죠 저는 명함이 없는데.. 죄송해요.”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점심때가 되었는데 식사 같이 하시는 거 어떠세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오늘 들어가는 날이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게 많네요. 아쉽네요.”


“아. 그러네요. 그 생각을 제가 못했네요.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연락 주세요. 오늘 함께 하지 못한 식사를 꼭 하고 싶네요. 하하하.”

“네. 연락드릴게요. 오늘 함께 시간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일 잘 보시고 들어가세요.”


우린 어색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쳐다보았다.


사진이라도 함께 찍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지금껏 이렇게 아쉬워하며 사람을 보냈던 적이 없었는데…. 그녀를 다시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쉬움을 삼킨다.


“부탁해도 되니 너에게 기억이 부르는 날에

널 사랑하던 그 얘기를 다시 한번 들려줄 수 있게

잠들어 있는 날 보던 너와 내 꿈에 있던 너의 모습이

늘 지워지지 않게 내 안에 간직해 가야 할 기억이기에

멀어지는 너의 뒷모습에서 감출 수가 없이 눈물이 흐르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할 수가 없었던 그리운 시간 속에 그대여 “


헤어지던 그날의 모습을 배경으로 어울릴 음악이 있다면 아마도 부활의 “아름다운 사실”이라는 노래일 거라 생각되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혼자 먹는 점심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호텔로 들어갔다.


로비에 들어서니 리셉션에서 메모지를 건넨다. 들어오는 대로 전화를 해달라는 테리가 남긴 메시지였다.


급한 일인가 싶어서 바로 전화를 했더니 호텔 주변에 있으니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잘 되었다 싶었다. 혼자 먹는 기분이 좀 그랬는데 테리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십여분 기다리니 테리는 나를 데리고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완탕면 식당으로 갔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은 오리알을 넣은 반죽을 대나무를 타고 엉덩이로 치대는 아주 오래된 식당이라 하였다.


반죽을 하는 모습이 마치 시소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색다른 볼거리를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듯하였다.


“하워드.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무역과 유통을 함께하는 내 오랜 친구인데 알고 지내면 나쁘지 않을 겁니다.”


“테리 친구면 내게도 친구가 될 수 있으니 고맙지요. 하하하하.”


자리를 안내받고 소개받을 친구의 음식까지 함께 주문을 하였다.


완탕면과 만두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 짱 (Tsang). 여기로 오세요.”


테리가 반갑게 인사하며 내 옆으로 미스터 짱을 앉게 하였다.


“하이 미스터 짱. 반가워요. 하워드입니다.”


“하이 하워드. 테리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반갑게 얘기한다. 인상이 너무 좋아 보였다.


둥근 얼굴에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차려진 음식을 서로 맛나게 먹은 후 근처 길거리 카페에 앉아 비즈니스 관련 얘기가 시작되었다.


형식이나 격식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였다.


“하워드. 짱이라는 친구는 무역과 유통을 함께 하는데 이번에 홍콩 정부와 진행하는 큰 오더 건이 있어요. 이번일을 하워드가 도와주면 앞으로 많은 도움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이면 얼마든지 도와드려 야지요. 하하하.”


미스터 짱은 가지고 온 봉투를 조심스레 열어서 조그마한 샘플 하나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디자인으로 봐서는 군복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워드. 이 샘플과 동일한 제품을 공급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공급이 가능하다면 홍콩과 마카오 정부의 군대에 납품될 예정입니다.”


군대 납품이라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기본적으로 군납은 양이 많다는 장점과 가격이 굉장히 싸다는 단점이 잘 조합이 되어야 가능한 비즈니스라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면 앞으로도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언제까지 확정을 해드려야 하는 건가요?”


“10일 안에 생산 가능 여부와 가격을 제시하여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이틀 후면 출장이 끝나고 돌아갈 예정이니 원하는 기간 안에 결론을 낼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습니다.”


“하워드. 이번 기회를 잘 만들어서 좋은 비즈니스를 해보도록 합시다.”


우리 셋은 길거리 카페에서 잔에 남은 커피로 건배를 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샘플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우리가 잘 아는 평범한 군복 디자인이었는데 생산이 뭐가 어려워 나에게 부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생산 기술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였다.


저녁 무렵 짱에게 전화가 왔다.


예상되는 주문 금액이 최소 250만 불 규모가 될 거라 하였다.


혹시 몰라서 알려주는 거라며 참고용으로만 알고 있으라 했다.


생산에서도 대략적인 금액을 알면 더 빨리 움직인다는 것을 짱이 제대로 알고 있는 듯했다.


오랜 시간 무역과 유통을 하면서 터득한 협상 노하우일 거라 생각했다.


특히 한국 회사들의 업무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 노련미가 그 친구들의 내공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긴장되었다.


정글 속은 힘깨나 쓴다는 모두가 다 포식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기에 약점을 보이면 그들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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