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아침은 활기차 보였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포장해 주는 작은 식당들이 문을 열었고 그 식당들 앞으로 출근을 시작한 회사원들이 길게 늘어섰다.
난 아침 식사를 위해 맥도널드를 찾았다.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지도 궁금했고 아침 메뉴에 뭐를 파는지도 궁금했었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크게 했던 탓인지 그저 그런 메뉴에 실망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빨리 먹고 가라는 듯 메뉴는 한정되어 있었고 맛도 특별할 게 없었다.
아침부터 헛돈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9시쯤 테리가 보내준 차를 타고 사무실로 향했다.
홍콩의 아침 교통 체증은 엄청났다.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20분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은 1시간 이상 걸려 도착하였다.
왜 홍콩의 지하철이 하루 종일 붐빈다고 하는지 이해가 갔다.
홍콩 섬 센트럴 상업지구에 위치한 테리의 회사 이름은 “Sun Beams Trading”이었고 고층에 위치하여 창문으로 빅토리아 만(Victoria Bay)의 풍경이 멋지게 보이는 사무실이었다.
테리 회사의 봄 신상품을 위해 준비해 간 여러 샘플을 올려놓고 상담을 시작했다.
짧은 경력이었지만 제품의 장점에 대한 홍보에 열을 올렸고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사보다 더 나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 점과 품질 문제 발생 시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영업의 무기로 활용을 했다.
테리는 이것저것 확인해 보며 주문 수량을 확정해 주었고 예상보다 많은 주문량에 놀랐다.
주문 금액만 백만 불이 넘는 수준이었고 첫 출장의 실적으로는 정말 대단한 금액이었다.
너무 기뻐서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고 연신 “Thanks you.” 만 외쳤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상담을 마치고 서로가 만족한 결과에 흡족함을 느꼈고 테리에게 이번 출장을 갑자기 오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테리는 우리 회사와 아주 오랜 기간 거래를 하고 있어서 회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이익만 챙기려 하는 다른 거래선과는 달랐다.
신 과장의 부탁으로 가끔 실적이 부족할 때 테리는 도움을 주곤 했었다.
“테리 씨. 이번 출장은 여러 목적이 있습니다.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들에게는 회사의 노력으로 절감한 비용을 경쟁사 제품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것이 가장 큰 첫 번째 목적입니다. 그리고 거래선 별로 맞춤 형식의 디자인을 제공하여 더 많은 거래선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그 두 번째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문 거래선의 디자인만 생산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자체 제작 디자인으로 거래선의 주문을 다양하게 받아 매출 확대를 하려고 합니다. 이해하시겠죠?”
테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시작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디자인을 드리는 건 대부분 다른 업체에서 잘 나가는 제품의 조각을 잘라서 주문을 하는 복제 수준이었기에 한발 늦게 출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판매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 도양에서는 자체 디자인을 제작하지 않는지 늘 궁금하였었죠.”
“네. 이제는 거래선별로 맞춤 디자인을 제공하여 주문을 받을 예정이고 납품 날짜도 예전보다 훨씬 빨라질 겁니다.”
“하워드가 오고 나서 많이 달라지니 기분이 좋습니다. 하하하.”
테리는 예전과 다른 주문 활동이 나로 인해서 바뀐 것으로 이해를 하는 듯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거래선과도 미팅을 잡아 놓았습니다. 테리 씨 회사에 제공한 디자인은 다른 거래선에게 보여주지 않을 겁니다. 준비한 몇 가지 디자인 샘플은 도매상에게만 보여주고 주문을 받아보려고 하니 너무 걱정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케이. 노 프라블럼.”
테리는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 말라며 혹시 도매상과 얘기가 잘 안 되면 자기가 아는 도매상도 소개할 용의가 있으니 출장 기간 동안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였다.
처음 만나는 거래선이었지만 믿음도 가고 앞으로도 잘 지내면 좋을 것 같았다.
테리와 나는 점심을 먹으러 센트럴 주변에 있는 100년이 넘은 딤섬 식당으로 향했다.
건물의 외관부터 노포 분위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마치 옛날 우리 시골집 근처에 있었던 향교 분위기가 느껴졌고 손님들로 늘어선 긴 줄이 이 식당의 맛과 전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구석 자리로 안내가 되었고 테리는 나에게 무얼 먹을지 물어봤지만 꺼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으니 알아서 주문을 해달라고 했다.
메뉴판에 그림이라도 있으면 주문을 해볼까 했지만 한문만 잔뜩 있어서 포기해 버렸다.
딤섬 전문 식당이라 그런지 주문 후 음식이 바로 나왔다.
쇼마이, 샤오롱바오, 청펀, 초이삼, 샤창, 닭발….
이름도 다 기억 못 할 정도로 잔뜩 음식이 나왔고 차와 함께 먹는 딤섬은 정말 맛이 있었다.
테리는 좀 부족한 듯 이동형 수레에 싣고 다니는 딤섬 두서너 가지를 더 주문하여 먹고 나서야 만족한 듯했다.
참고로 테리는 그 당시 유명한 홍콩 영화배우 홍금보와 얼굴도 몸매도 비슷하게 닮아서 친근한 인상의아저씨 느낌이랑 비슷했다.
테리는 나의 첫인상에 대해서 대만계 갑부 느낌이 나는 듯하다 했고 중국 화교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며 껄껄 웃었다.
점심을 마친 후 테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교통 체증을 생각하니 미안하여 사양하였지만 페리를 타면 전혀 문제없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다.
침사추이와 홍콩섬을 연결하는 스타페리가 주기적으로 운항을 하고 있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짧은 시간에 침사추이에 도착하였고 사진으로만 보던 홍콩 야경의 배경이 되는 곳을 지나왔다.
저녁에 다시 한번 방문하여 야경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 해 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혹시 아는가...
그러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 수 있을지…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남은 일정을 위해 호텔에서 잠시 쉴까 했지만 시간이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샘플 가방을 챙겨서 일찍 약속 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남아서 근처 쇼핑몰에 잠깐 들렀다.
의류 매장을 돌아보다가 우리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획 디자인과 비슷한 제품을 파는 매장을 발견하고는 종업원에게 본사 연락처를 물어 알아 두고 약속 장소인 빅토리아 만 근처의 YMCA 호텔로 향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Mr Peter였다.
회사 이름은 On Chung Trading…
워싱턴 주립대 MBA 출신의 해외 유학파 원단 수입상이다.
침사추이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원단 포목점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서 도매 영업을 꽤 크게 하면서 내수 시장 외에도 미국 내 화교 도매 시장에도 수출을 하는 젊은 청년 사업가였다.
“반갑습니다. 피터 씨. 저는 하워드입니다.”
파란색 줄무늬 디자인의 세련된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멋지게 하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하워드.”
로비 커피숍에서 준비해 간 샘플을 펼쳐 놓고 상담 진행을 하려고 하는데 과거에 거래를 하다가 끊어진 이유를 피터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요 원인은 클레임 발생 시 해결 방법에 대한 불만이었다.
매번 다음 주문량에서 일정 금액을 차감하는 방법만 사용하다 보니 자금 회전의 문제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거래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피터 씨. 저희도 왜 거래가 중단되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출장 기간에 회사의 새로운 운영방법에 대한 설명과 자체 제작한 디자인을 가지고 다시 거래를 재개하고자 오게 된 것입니다. 낮춘 생산 원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하여 경쟁회사보다 좋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자체 디자인 팀이 생겨서 언제든 필요한 디자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 발생 시 해결 방법은 문제의 원인이 회사에 의한 것일 경우 전액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법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그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믿기지 않는군요.”
피터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네. 맞습니다. 이번에는 다르게 진행하기로 회사와 합의가 다 된 내용이고 거래만 된다면 예전보다 훨씬 좋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저희와 다시 거래를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하신다면 계약서에 내용을 포함하시어도 됩니다.”
“좋습니다. 하워드의 말에 신뢰가 갑니다. 그럼 이번에 새로 거래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가져온 샘플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피터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 몇 개를 선정하여 주문을 하였고 금액은 오십만 불이 넘었다.
두 번째 미팅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맙습니다. 피터 씨. 신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워드 씨. 한번 맺어진 인연이 끝까지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해봅시다.”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저녁이라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였으나 선약이 있다 하여 저녁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두 번의 미팅으로 계약 금액이 백오십만 불이 넘었다.
호텔로 들어와 계약 내용을 정리하여 회사로 팩스를 보냈고 공장에 생산 진행을 할 수 있도록 신 과장에게 별도의 내용도 첨부해서 보냈다.
내일 출근하면 아마도 해외 영업팀 역사상 없던 계약 금액에 놀라고 동시에 공장에 생산 지시를 하느라 분주하고 떠들썩한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흐뭇해졌다.
수고한 나를 위해 오늘은 호텔에서 와인을 곁들인 저녁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피곤이 밀려오기도 하였고 외부로 나가 시간을 보내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상대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건 오직 진정성뿐이었다.
뭐든 진심을 다하면 성과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결과물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내 마음속 내공을 한껏 올릴 수 있었던 멋진 시간이었다.
수고한 나를 위해 치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