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목소리

by 전선훈

“… 여긴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 첨단 범죄 수사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김 ㅇㅇ 검사라고 합니다.”


검사를 사칭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단골멘트로 여러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점점 진화되면서 피해액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내 주변에 지인 한 명도 비슷한 사기를 당했는데 너무나 완벽한 내용으로 개인정보를 훤히 깨고 있어서 귀신에 홀린 듯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통장에 잔고가 많지 않아서 피해액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너무 어이없어서 한동안 우울증 증세도 앓았고 모르는 번호는 아예 받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고 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온라인 사기는 대체 누가 지휘를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 대학생의 죽음으로 인해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안타까운 죽음을 당한 대학생의 억울함도 풀고 가해자들이 빨리 처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기억해 보니 나도 온라인 범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뻔한 기억이 있었다.


20년간의 해외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들어올 때가 팬데믹의 시작이었다.


모든 나라들이 빗장을 걸었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해외영업의 경력을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력자를 모집하는 회사는 없었지만 언젠가 나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회사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헤드헌터 회사 및 글로벌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지만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서 안절부절못하던 시기에 캄보디아에 있는 한 외국계 봉제회사에서 메일을 받았다.


내용은 나의 이력서를 구직사이트에서 보았고 지금 채용 중인 자기네 회사에서 관심이 있으니 면접을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동남아 지역에는 워낙 많은 봉제회사들이 있어서 별다른 의심 없이 그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온라인 화상 면접 날짜까지 확정되어 다시 해외에서의 경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들뜬 마음이 되었다.


온라인 화상 면접 당일.


중국계로 보이는 젊은 CEO는 회사 소개를 시작했고 본사는 중국에 있지만 중국 대륙의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되어 봉제 공장을 캄보디아로 옮기게 되었으며 나의 경력을 검토해 보니 관리 적임자라 판단되어 면접을 보자고 한 것이었고 실제 얼굴을 보니 믿음이 간다며 웃어 보이기도 했다.


워낙 어려운 시기에 나의 경력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나타났으니 나는 진심을 다해 면접에 응했고 면접 결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회사에 궁금한 점 있습니까? “


”네. 오랜 시간 해외 경력은 있지만 봉제 회사 경력은 없다. 나를 뽑으려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캄보디아에 새롭게 진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당신의 업무 경력이면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고 생각되고 특히 당신의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에서의 업무 경험은 향후 사업 확장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판단도 하게 되었습니다. “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종 결과가 나오면 연락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


”최종 후보가 되셨으니 확정되면 급여 및 복지 조건에 대해 통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 캄보디아는 내가 처음으로 개척한 시장이었기에 낯설지 않았고 나름 인적 네트워크도 많고 문화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취업 확정만 된다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라 믿었다.


“여보, 오늘 캄보디아에 있는 중국계 회사랑 면접을 봤는데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최종 확정되면 급여랑 복지 관련해서 알려준다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일 년 넘게 백수생활도 지겨웠는데…헤헤헤.”


“오. 다행이네. 결과가 좋게 나왔으면 좋겠다. 호호호.”


면접 결과는 하루 지나서 왔는데 내용을 확인해 보니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내가 알던 봉제회사들의 처우와 완전히 상반된 급여와 복지 수준이었다.


우선 급여는 내가 마지막 다니던 회사의 2배 수준이었고 기본 옵션으로 아파트 및 전용 차량 제공하고 매년 2회 한국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봉제 공장의 법인장 처우를 뛰어넘는 조건이어서 놀랐지만 나의 경력을 인정해 주고 미래의 사업 확장까지 고려하여 제안을 한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여보. 오늘 지난번 면접 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조건이 너무 좋네. 흐흐흐.”


“오… 나쁘지 않은데?”


“나쁘지 않은 게 아니고 지금 내 나이에 이런 조건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은 거지. 하하하. “


”일 년 동안 마음고생 많았는데 축하해. 호호호. “


조건을 수락하는 메일을 보내기 전에 생소한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걱정에 캄보디아에서 봉제공장을 하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사장님. 오랜만에 연락하네요. 잘 지내시죠?”


“아이고 이게 누구야. 오랜 만이네. 코로나 시국에 목소리 들을 수 있으면 잘 지내는 거지. 안 그래? 하하하.”


”살아있으니 다행이죠. 헤헤헤. “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하셨어? “


”네. 사실은 제가 재취업에 성공을 했는데 회사가 캄보디아에 있는 봉제공장이에요. 조건을 수락하는 메일을 보내기 전에 사장님한테 먼저 전화를 한 겁니다. “


”오. 축하해. 요즘 재취업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워낙 경력이 출중하니 쉽게 되는구먼. 하하하. 그런데 회사 이름은 뭐야? 캄보디아에서 내가 모르는 봉제공장은 없으니까…”


“그래서 전화했어요. 헤헤헤. 혹시 ㅇㅇ복장 유한공사라고 아세요?”


“어… 난 처음 들어보는 회사인데?”


“최근에 중국에서 봉제공장을 이전한 거라던데요? “


”공장 위치가 어디야? “


”프놈펜 외곽에 있는 뚤꼭 지역입니다.”


“어… 뚤꼭이면 우리 공장 주변인데…이 근처에는 봉제공장이 우리 포함해서 3군데 밖에 없는데…그런 이름의 공장은 처음 들어보네.”


“아… 그래요? 최근에 공장 건축 끝나서 노동자들 모집 중이라고 하던데…”


“요즘 중국계 애들이 캄보디아에서 사기치고 그러는 게 많아. 잘 알아보고 들어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내가 좀 알아봐 줄 테니 메일은 보내지 말게.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봉제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의

정보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테니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메일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그사이 상대방 회사에서는 확정해 주기를 기다린다며 여러 번 메일을 보내왔지만 임사장의 정보를 듣기 전까지는 메일 답변을 하지 않았다.


”내가 주변에 물어 물어 확인해 보니…그런 이름의 봉제 공장은 없는 게 확실하네. 비슷한 이름의 다단계 회사가 있긴 하던데…그 회사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고…그리고 자네도 알겠지만 봉제공장 법인장 조건이 그리 좋은 게 아닌데 알려준 조건은 글로벌 회사보다 조건이 좋은 거네… 잘 판단하고 결정하는 게 좋겠어. “


”아… 그렇군요. 저도 혹시나 해서 임사장님한테 연락을 한 겁니다. 고맙습니다. 헤헤헤. “


봉제 관련 경험이 없는 나에게 업계 관행을 뛰어넘는 조건은 의심을 가질만한 사안이었기에 캄보디아 현지에 있는 지인의 조언을 듣기로 한 건 아주 잘한 결정이었고 최종 결론은 제안을 거절하는 것으로 메일을 보냈다.


그 이후 나에게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응대를 하지 않자 더 이상 전화나 메일은 오지 않았다.


그 당시의 상황과 지금 벌어지는 일을 비교해 보면 거의 비슷한 수법으로 취업사기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재취업의 기쁨에 현지로 갔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 목적으로 검사를 사칭하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서울 중앙 지검의 검사입니다…”


내가 바로 그놈 목소리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5년 전의 일이 떠올라 희생당한 대학생의 명복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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