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부대

by 전선훈

아침부터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출근길 게시판에 붙어있던 인사 발령 때문이었다.


터줏대감으로 살아가던 일부 책임자들의 퇴사로 인해 업무 공백이 발생하자 하 전무는 새로운 사람들로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하였다.


내부 승진이 아니라 외부에서 영입하는 사람들로 대부분의 부서 책임자를 바꿔 버렸다.


해외 영업팀도 예외가 없었다.


신 차장 체제로 잘 굴러가고 있었지만 신 차장 위로 새로운 부장이 온다고 되어있었다.


우리 팀은 일을 나눠서 할 수 있는 담당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어찌 된 연유인지 신 차장 위로 새로운 책임자가 온 다는 것이 좀 의아했다.


“신 차장님. 새로 부장이 온다고 되어있던데... 보셨어요?”


신 차장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오십이 넘은 나이인데 자기 위로 새로운 상사가 온다는 상황이 못마땅한 듯하였다.


새로 오는 부장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아마도 신 차장보다는 젊은 나이일 텐데….


어쩌면 자연스레 신 차장에 대한 퇴사 압박으로 이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회사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 같네.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은 채용을 안 하고 갑자기 책임자를 채용하는 이유가 뭔 지 모르겠네. 낙하산이 줄줄 내려오겠네. 하하하”


“그러게요. 다른 부서도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에 다들 놀라는 분위기 이던데요?”


“놀라는 정도가 아니라 폭탄 맞은 느낌이겠지. 한동안 직원들 술안주거리로 수군거리기 딱 좋지 뭐. 하하하.”


신 차장과 비슷한 연배의 직원들은 새로 올 책임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저기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었지만 신 차장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본인에게 불편한 일이지만 여유롭게 웃어넘기는 신 차장을 보면서 대단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느낌을 또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에 대한 한탄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위치가 본인의 마지막 위치라고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하워드는 신경 쓰지 말고 업무에 집중하시오. 괜한 걱정으로 고민하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제가 걱정한다고 바뀔 게 없는걸요 뭘.. 하하하. 기분도 그런데 저녁에 소주 한잔하시죠 뭐.”


멋쩍게 웃었지만 기분이 좀 묘했다.


나이가 뭔 죄길래…


회사 내에서 본인의 위치가 예측이 되는 현실이 슬펐다.


“그러자고. 오랜만에 소주 생각이 간절해지는 날이네 그려.”


신 차장은 평소에 술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그냥 보내기가 좀 그런 듯 흔쾌히 소주 한잔하자고 하였다.


직장인들에게 기분 나쁜 일들을 날려버리는 것에 소주 만한 게 없으니…


따르릉.


“하워드.. 수닐 씨한테 전화 왔어요.”


미스고는 회사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작은 목소리로 나를 찾았다.


“하이 보스.. 싱가포르 납품 건 주문 예상 금액이 결정되었어요. 팩스로 보낼까요?”


수닐의 흥분된 목소리였다.


“하이 수닐. 오.. 좋은 소식이네요. 팩스로 보내지는 말고 내가 사무실로 갈게요. 사무실에서 얘기해요.”


“오케이 보스.”


수닐은 나에 대한 호칭을 매번 보스라고 불렀다.


자기 사업의 목줄을 내가 쥐고 있다고 판단하였는지 매번 그렇게 불렀다.


인도인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참 어려운 일이건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을 보면 대단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 차장님. 수닐 사무실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네.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거래선과의 오더 진행이 될 것 같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녀와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잘 다녀오쇼.”


신 차장은 외근 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를 않았다.


입사 동기들은 그런 상사와 함께 일하는 나를 제일 부러워하였다.


내가 잘 알아서 하는 것도 있었지만 성격 자체가 세세하게 묻고 그러는 편이 아니었다.


편한 상사와 함께 일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입사 동기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동기들은 외근 나가는 사유서를 작성하여 상사에게 보고하고 나가야 하기에 그냥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명동으로 향하는 길..


광화문 거리에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쌓이기 시작하여 대로변 차들은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경적소리만 크게 들렸다.


오랜만에 내리는 함박눈이었다.


서울에서 제대로 눈 구경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터라 오늘 내리는 눈은 고향에서 보았던 그때 그 느낌이 들었다.


명동 주변은 행인들로 뒤엉켜 복작거렸고 여러 무리의 동남아 관광객들은 뜻하지 않은 함박눈에 여기저기서 환호성을 지르며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의 인사 발령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누군가와 절망을 느끼는 누군가도 있을 것이다.


탐스럽게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희비가 교차되는 명동 길거리의 사람들처럼 …


“하이 수닐.. 싱가포르에서 들어온 내용이 뭐예요?”


“예상 금액이 3백만 불이고 2 개월안에 선적을 마무리하는 조건입니다. 제품 단가는 지난번 진행한 홍콩 가격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납기가 좀 걱정이 되는군요. 2 개월안에 선적을 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공장에 확인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인도 친구들과 일하면서 얻은 경험 중에 하나는 시간을 좀 끌어서 결정을 해주는 것이 늘 계약에 도움이 되었다.


입사 초 신 차장이 늘 인도인과 비즈니스 하면서 항상 시간을 끄는 이유가 궁금했었다.


습관적으로 늘 급한 오더라고 얘기하는 게 다반사여서 실적이 급한 영업 입장에서는 바로 결정을 해주었다가 가격 문제와 납기 문제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였다.


급한 오더라 하여 공장에 슬쩍 새치기를 하여 생산을 진행했지만 실제보다 선적일이 뒤로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공장과 내수 영업팀으로부터 늘 양치기 소년으로 취급을 받았다고 하였다.


정작 급한 오더가 왔을 때 공장이 생산을 미루는 경우도 가끔 발생하여 인도인의 주문은 늘 플러스 2개월을 더 생각하고 진행하는 게 정설이 되어 버렸다.


“정부 납품이면 필요로 하는 서류 항목도 나와 있어요?”


“네. 홍콩보다는 서류가 많이 간단하다고 합니다. 지난번 도양상사에서 진행한 건에 대한 서류 내역을 거래선이 다 알고 있더라고요.”


“서류가 간단하다니 다행이네요. 지난번에는 제출하라는 서류가 너무 많아서 하마터면 진행이 안될 뻔했어요. 다행히 미스고가 서류 진행 경험이 있으니 준비하는 일이 그리 문제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좋아요. 보스. 하하하.”


“아직 최종 결정을 하지 않았으니 너무 좋아하지는 마세요. 납기와 관련해서는 공장과 협의도 해야 하고 재무팀과는 수수료 관련 얘기도 해야 하니까.”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자 수닐은 더 애가 타 보이는 듯했다.


“싱가포르 공무원에게 줘야 하는 수수료 금액은 얼마라고 하던 가요?”


민감한 얘기가 시작되었다.


솔직히 내가 직접 상대하지 않은 상대방의 말만 믿고 수수료를 결정해 줄 수는 없었다.


“전체 발주 금액의 1%를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홍콩 거래선과 내 수수료를 포함하면 조금 더 돼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수닐은 아주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였다.


자기도 남의 말을 전하는 입장이라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일단 회사로 들어가서 미팅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워낙 중요한 내용이라 시간이 좀 필요할 듯합니다. 결정이 나면 내가 다시 연락을 할게요.”


“Thank You Boss. I will do my best for you always.”


수닐의 뜬금없는 아부성 표현이 시작되는 걸 보니 꽤 급하긴 급한 모양이었다.


적은 금액이라도 본인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이 오더를 진행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보였다.


수닐의 사무실을 나오니 눈이 그쳐 있었다. 관광객들과 행인이 뒤섞인 명동의 거리는 여전히 번잡하였다.


애먼 폭설 때문에 노점상들이 다 철수하였지만 그 자리를 사이비로 보이는 종교인들이 다 자리 잡아 연신 천국과 지옥을 외치고 있었고 자기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함을 알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확성기로 크게 소리치고 있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눈 내리고 비 내리는 날은 좀 쉴 법도 한데…


“다녀왔습니다.”


“하워드, 잘 다녀왔어요? 신 차장은 오늘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먼저 들어갔어요.”


“아. 그래요? 안 좋은 일이 있는 건 아니죠?”


“저도 몰라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간다 하더라고요. 하워드 오면 소주는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미스고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얘기하였지만 저녁 회식이 없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듯했다.


“특별한 약속 없으면 저랑 소주 한잔할까요?”


“아니요. 눈도 내리고 해서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게 좋을 듯해요. 저녁은 다음에 하는 걸로. 호호호.”


눈이 많이 내린 걸 생각 못했다.


나야 어차피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툭 던진 말이었지만 저녁을 먹은 후 늦은 시간에 발생하는 여러 불편함을 생각 못했다.


얼어붙은 길거리를 다치지 않게 걸어야 하는 불편함과 늦은 시간의 택시 잡기는 정말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고…


이런 날은 일찍 들어가는 게 최선의 결정이었다.


신 차장이 없으니 업무 보고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고 일찍 퇴근이나 하는 게 좋을 듯하여 주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입사 동기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는 임 삼식이라는 친구인데 성격이 활달하여 사내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 삼식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친구였다.


삼식이와 나는 입사 동기이자 지하철 4호선 동기 이기도 했다.


“야. 하워드. 뭐 하냐?”


“직급은 어디 엿 바꿔 먹었냐? 하워드가 뭐냐? 전 주임님 이렇게 불러야지… 하하”


“아이고. 전 주임님.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오늘 약속 있냐? 없으면 나랑 소주 한잔하자. 아주 따끈따끈한 소식이 있어서 알려주려고. 하하하.”


“그럴까.. 어차피 총각들이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할 일도 없는데.. 하하하. 골목 안 백반 집에서 보자고. 지금 나갈 테니 바로 나와.”


“오케이. 현관 앞에서 봐.”


동기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나는 도양상사.


입사동기, 군대동기, 입학동기, 졸업동기, 학원동기…..


도양상사 내에는 정말 많은 동기 모임이 있었다.


별로 특별할 것 같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만드는 모임도 있었다.


지하철 노선 동기 모임이 그랬다. 타고 다니는 지하철 노선을 빗대어 만든 모임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도양상사는 동기들로 이루어진 끈끈한 의리와 정이 넘치는 회사 같았다.


이런 동기 모임이 피곤한 직장생활의 활력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적인 정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밀어주고 챙겨주는 부정의 시작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회사 내에 자리 잡은 관대함이 대부분 이런 동기모임으로 파생된 불편한 진실이기도 했다.



골목 안 백반집에 자리 잡은 나와 삼식이는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그래도 제일 편하게 술 한잔할 수 있는 게 입사 동기였다.


“따끈따끈한 소식이 뭐 길래 나를 애타게 찾고 그러냐?”


술이 몇 잔 돌고 나서 삼식이는 얘기를 시작했다.


“이번에 인사 발령 난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내가 입수했거든. 하하하.”


“그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그러냐. 어차피 회사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텐데..”


“야… 이번 인사가 어떤 상황에서 벌어진 지 모르고 그러냐? 하 전무가 경험 많은 직원들을 쳐낼 때 이미 낙하산을 엄청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무서운 사람이더라...”


삼식이는 연거푸 술을 마시더니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번에 발령이 나서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예전에 하전무가 다니던 사판 그룹 사람들이라고 하더라. 지금 사판 그룹 내에서 하전무에게 줄을 대려고 난리 났다고 하더라.”


“그래? 와… 놀라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네. 어쩌다 한 두 명이야 자기가 데리고 있던 사람을 쓸 수는 있겠지만 회사 전체 부서에 채용을 한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우리 전 주임이 아주 순진하구먼. 사장 다음으로 막강한 권력을 한 번에 틀어쥐었는데 못할 게 뭐가 있겠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해서 처리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던 하전무여서 더 의아했다.


“너희 팀에 들어오는 부장도 사판 그룹 출신인데… 웃긴 게… 해외 영업은 경험도 없고 특히 영어 한마디 못한다고 하더라.. 하하하.”


“뭐? 그게 말이 되냐? 경험이 없는 건 그렇다 쳐도 최소한 영어는 좀 해야지.. 무슨 그런 인사가 다 있냐…”


갑자기 술이 확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이런 인사가 있나 하는 생각에 하전무에 대한 배신감도 들었다.


“야. 천천히 마셔…그리고 웃긴 건 사판그룹 내에서 도양상사가 곧 사도 상사가 될 거라는 우스개 소리도 하고 그런데. 사판그룹 출신이 도양상사를 경영한다.. 그 줄임말로 사도 상사라고 한데… 어쩌다 우리 도양상사가 이모양이 됐는지 모르겠다.”


삼식이도 연거푸 소주잔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도양상사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입사한 회사였는데 이런 우스개 소리로 전락한 현재의 모습에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야. 너도 천천히 마셔. 급하게 마시다 지난번처럼 먹은 거 확인하고 그러지 말고.”


삼식이는 가끔 폭음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자기가 먹은 거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장면을 몇 번 목격했기에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었다.


“오늘 신 차장 일찍 퇴근했지? 왜 나갔는지 아냐?’


사실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겼다는 말만 하고 사라졌으니…


“이번에 새로 오는 너희 팀 부장이 신 차장의 대학교 후배라고 하더라. 신 차장과 같은 입사 동기인 인사팀 염 병환 차장이 얘기를 해준 거 같아. 아무리 부처님 같은 신차장이라 해도 그 소식을 듣고 기분 좋지는 않겠지. 후배 밑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을 거야.”


어느덧 나도 삼식이와의 대화에 흠뻑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미리 알아 둬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으로 얘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울분을 토하는 자리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자리에 벌써 꽤 많은 빈 소주병이 뒹굴었고 부족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몇 병을 더 시켜 연신 들이부었다.


삼식이는 혀 꼬이는 소리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신 차장은 곧 그만둘 거야. 오늘 나한테 경력 증명서 발급해 달라 해서 나갔거든. 아마도 급한 일이라는 게 면접을 보러 가는 거 같더라고. 나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하면서 그랬거든. 잘 됐으면 좋겠다. 휴…”


이해가 갔다.


후배를 상사로 모셔야 하는 심정이 어떨지 이해가 갔다.


그나마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 여겨졌다.


삼식이는 그 이후에도 이번 인사와 관련된 정보를 끊임없이 얘기해 주었다.


하지만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저 우리 팀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관심만 있을 뿐이었다.


하전무에 대해 존경하고자 하는 마음이 막 들기 시작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사장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사장은 이런 상황을 알고 다 승인을 해준 건지 아니면 또 뒤에 숨어서 지켜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러다 정말 사도상사로 바뀌고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운명처럼 되어 가는 건 아닌지 좀 찜찜했다.


조만간 사판 그룹 출신의 낙하산 부대가 우리 도양상사에 떨어진다.


낙하산 부대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깔때기처럼 회사의 모든 권력을 한 번에 빨아들인 하 전무의 손에 달려있었다.


하전무의 특명을 받은 낙하산 부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일할 자신이 없어졌다.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입사한 도양상사였는데 이제는 조금씩 회의가 들기 시작하였다.



입사 동기이자 지하철 4호선 동기인 삼식이와의 술자리를 마치고 빙판이 되어버린 광화문 거리를 우리는 위태롭게 걸어갔다.


아직 치워지지 못한 눈이 밤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그렇게 울분을 토하며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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