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녔던 부장들 이야기

by 전선훈

우리 가게는 아파트 단지 내 유일한 호프집이어서 동네 사랑방 역할도 하지만 가끔 은퇴한 전 직장의 OB들이 들러서 옛날 얘기도 하며 술 한잔 하는 모임 장소 이기도 하다.


경기가 어려울 때면 일부러 모임을 우리 가게로 잡아 매출을 올려주기도 하고 다른 지인들에게 우리 가게를 소개해주면서 매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기도 한다.


단골손님 중에도 형님 동생 하면서 술을 마시고 은퇴한 직장의 뒷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를 맺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얘기를 듣다 보면 좋은 기억으로 은퇴를 한 경우도 있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퇴직을 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아 회사 얘기를 하면서 고성이 오가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회사의 오너나 친인척인 경우를 제외하면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으니 살아남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기에 직장생활을 정글이라고 표현하는가 싶다.


약육강식의 세계이고 강한 자의 편에 서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기에 끊임없이 줄타기를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최근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고 중년의 이야기를 담았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었다.


티브이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볼만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길래 쉬는 날을 이용해 몰아보기를 했었는데 내용이 내가 경험했던 내용과 비슷하게 몰입되어 눈물을 훔치기도 했었던 기억이 났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일찍 들어가려고 마음먹고 정리를 하던 중에 단골 두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네. 좀 뜸했죠… 경기가 어려우니까 모임을 하기가 애매해서…”


“그래도 이렇게 찾아주시니 감사하죠. 편한 자리로 앉으세요.”


“저희도 몇 달 만에 모이는 거예요. 빨리 경기가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다른 곳도 한산해요.”


우리 가게만 매출이 줄어든 것이라 생각되어 ‘무슨 문제가 있나’ 고민을 했었는데 전체적인 경기가 안 좋으니 대부분 지출을 줄이는 것이 현실이어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 부장… 요즘 자네가 주인공인 드라마 봤어? 시청률이 꽤 높던데… 하하하.”


“봤어요. 딱 내 얘기던데요. 은퇴하기 전 직급도 그렇고 성도 그렇고…헤헤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그때는 아주 절박했었지. 임원 달려고 별 짓을 다했으니까…그런데 임원은 다른 회사에서 온 놈이 승진을 하더라니까… 얼마나 헛탈했는지…”


“그러게요. 드라마 속의 김 부장이 꼭 내 얘기 같아서 눈물도 나더라고요.”


“난 회사에서 퇴직 통보를 받고 집사람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아침에 계속 출근하는 척하느라 힘들었지.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 “


”저도 비슷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죠. 처음엔 그래도 이제껏 먹고살게 해 준 회사여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중에는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이별의 방식이 조금 더 세련됐으면 좋았을 걸 하는 어쉬움도 있었고…“


”회사와의 이별방식은 변함이 없지. 세련보다는 과감하게 진행해야 뒤탈이 안 남는다 생각하는 거지. 따지고 보면 이별을 기획하고 통보하던 놈들도 자기들의 종착역임을 뻔히 알면서도 실행을 해야 하니 가혹한 부서이기는 하지…“


드라마 얘기를 하면서 두 사람은 꽤 많은 양의 맥주와 소주를 마셨고 화제를 바꿔 영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를 봤는데 박찬욱 감독이 주제를 잘 못 고른 것 같던데… 혹시 봤어? “


”아니요. 다 보지는 못하고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줄거리만 대략…헤헤헤. 재미없던가요? “


“재미도 재미지만… 일단은 공감이 안 가더라고. 드라마 김 부장은 내 얘기 같아서 몰입이 되던데. 영화는 남 얘기 하는 것 같아서 몰입이 안되더라고. “


”줄거리로는 해고된 주인공이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내용이라 하던데요? “


“그러니까 몰입이 안되지. 재취업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내용보다는 나를 해고하기 위해 기획하고 준비한 놈들에게 차례대로 복수하는 내용이면 더 실감 났을 것 같아서… 하하하. “


”그렇긴 하네요. 나를 비참하게 만든 놈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 더 몰입될 것 같네요. 헤헤헤. “


”그렇지. 최초 인력 감축을 지시한 놈이 누구고 그 지시를 성실히 기획하고 준비한 놈은 또 누구고…그리고 그 기획안을 최종 결재해서 실행하게 만든 놈을 찾아서 하나씩 복수하는 내용이었다면 흥행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하하하. “


“그러게요. 하하하.”


두 사람은 드라마와 영화 얘기를 신나게 하면서 자신들이 과거에 당했던 일들이 떠올랐는지 복수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얘기하며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도 우리 얘기 들으셨죠? “


”네.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얘기한 대로 실행에 옮기시면 안 되고… 하하하. “


”제가 보기에 사장님도 저희와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 같아서 해 본 소리입니다. 오해는 마시고… 하하하. “


”그럼요. 저도 같은 경험을 했었죠. 썩은 동아줄인지도 모르고 끝까지 잡고 있다가… 하하하. “


”그때는 우리도 그 줄이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줄이라 믿었죠. 나와 가족을 지켜 줄 든든하고 믿음직한 동아줄이라고… 하하하. “


“다른 영화감독이 스토리 제안이 들어오면 아주 실감 나게 얘기해 줄 수 있는데…모든 직장인들이 공감이 되는 내용으로… 하하하.”


“그럼요. 아주 실감 나게 만들 수 있죠. 웃음과 울음 그리고 통쾌함까지 더해서… 하하하.”


오랜만에 부장이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준 고마운 단골손님들과의 시간이었다.












이전 11화Behind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