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an Left Behind … Part 1

by 전선훈

뇌가 껌처럼 들러붙던 느낌도… 타는 갈증도… 모든 것이 전날 이 부장과 마셨던 소주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물에 젖은 이부자리를 밖에다 널어놓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사무실로 가는 동안에도 간밤의 꿈이 잊히지를 않았다.


고립된 상황에서 나에겐 호두가 다가와주었지만 지금의 신 차장에게는 누가 손을 뻗칠지 궁금해졌다.


사무실에 도착할 무렵 호출기에 메시지 수신 음이 울렸다.


확인을 해보니 신문에 난 회사일로 걱정이 되어서 “괜찮냐” 고 묻는 메시지들이 대부분이었고 마지막 메시지에 이 부장의 음성이 남겨져 있었다.


“전 주임…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컨디션이 별로네… 오늘 하루 휴가를 쓰려고 하니 어제 얘기한 공장 출장은 알아서 다녀오시게…”


폭음을 했던 이 부장은 결국 하루 쉬기로 하였고 저녁에 신 차장과의 약속도 있고 해서 삼식이와 공장을 일찍 다녀오기로 하였다.


도양상사의 공식 출장 차량인 다마스를 타고 오산 공장에 도착하니 함과장은 나만 잠깐 보자며 손을 이끌고 총무과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전 주임… 사실은 오늘 오후에 내가 검찰에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야 해. 혹시 신 차장에게 무슨 얘기를 들은 게 없나 해서…”


“얘기 들은 건 없어요… 신 차장은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전화를 한 번 해보지 그러셨어요?”


“했었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더라고… 검찰 조사받으면서 어떤 얘기를 묻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함 과장님은 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는 거죠?”


“화재가 났던 공장에 내가 근무를 했었고… 불편한 이 다리도 그때 다친 거니까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했겠지…”


“아…그런 일이 있었군요.”


함과장도 검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하라는 말에 조금 긴장을 한 듯 보였다.


죄를 짓지는 않았다 해도 일반 시민들에게 검찰로 출두하라는 얘기를 들으면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일반 상식이었다.


공장에서는 인도인 연수생이 오는 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도 공장 기숙사에 있는 한국인 직원들 관리도 벅찬데 인도인들까지 관리를 해야 하니 귀찮은 일만 더 늘어나는 거라 판단한 듯 별로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산업 연수생은 계약에 의해 진행이 되는 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닐이 얘기한 내용을 참고하여 삼식이가 공장 관계자들에게 준비해야 될 내용을 설명하자 한참을 듣고 있던 공장장 김기명 차장이 한마디 하였다.


“식당 구조를 바꾸는 일이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가는 거라서 … 그냥 지금 구조대로 함께 식사를 하는 형태로 하면 안 될까?”


“한국 직원들도 불편하고 연수생도 불편하고 그럴 것 같은데요?”


“밥이야… 잠깐 먹는 것이고 나머지 시간은 다 일 시키는 건데… 굳이 구조를 바꾸고 그럴 필요가 있나 해서 물어 본거지…”


“인도 연수생 관련된 사항은 합작회사와의 계약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라 먹는 것과 쉬는 것 모두 인도인들 관습에 맞게 준비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아…그런 거야? 난 본사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길래 공장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줄 알았지…”


삼식이는 하전무와 정 부장이 지시한 내용이라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꺼내자 공장장은 아무런 말없이 바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요즘 같은 회사분위기에 본사에서 내려온 지시를 거부해 봐야 본인한테 이로울 일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바로 함과장에게 업무 지원을 해주라고 얘기하고는 생산 현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공장장이 요즘 쓸데없는 얘기를 하도 많이 해서 어떤 지시를 해도 말발이 잘 먹히지 않아… 가만히 있으면 이등이라도 할 텐데…껄껄 걸…”


함과장은 공장장의 요즘 처신에 대해서 살짝 험담을 하며 웃었다.


공장장이 빠지고 나니 모든 일이 삼식이가 준비한 내용대로 공장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고 함과장은 빠른 시일 안에 완료하여 연락하겠다며 회의를 마치자 하였다.


함과장도 검찰에 가야 하기에 삼식이와 나는 서둘러 공장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다.


“야… 삼식아… 아까 위에서 지시한 내용이라고 한 거 확실한 거냐? 난 정 부장한테 아무런 얘기를 들은 게 없어서…”


“아… 지시한 내용이 있었지… 공장하고 잘 협의해서 진행하라는 말만… 하하하.”


“그럼 네가 준비한 내용은 어떻게 된 거냐? 결재받고 온 게 아니었어?”


“결재는 무슨… 공장장이 워낙 본사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고 다 소문이 나 있어서… 그런 사람들은 위에서 지시한 내용이라고 하면 꼼짝 못 하지… 하하하…”


“오… 우리 삼식이가 이제 회사 돌아가는 걸 좀 아는구나… 하하하.”


이젠 삼식이도 강자와 약자를 대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린 서로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런데… 함과장은 오늘 검찰 참고인 조사받는다 하던데… 인사팀에서 뭐 도는 얘기는 없냐?”


“모르겠어… 정 부장도 이번 회사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더라고… 직원이 회사일로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가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응하라고 지시도 하고 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니까… 나도 그게 궁금해서 하는 얘기야. 분명 회사일로 연관이 되어서 가는 건데 정작 회사에서는 아무런 대응을 안 하고 있으니 이상한 거지.”


“이번 일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소문과 연루된 직원들만 피해를 볼 거라는 소문이 돌아.”


“그럼 곽상무. 신 차장. 함과장…이 세 사람이 다 뒤집어쓰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모르지… 회사에서 아무런 대응을 안 하고 있으니 그분들도 불안할 거야…”


“회사가 골 때리게 돌아가는 구만… 오늘 저녁 신 차장 만나기로 했거든…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얘기를 좀 들어보려고…”


“어쨌든 회사는 이번일에 연루된 세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 정 부장도 묵언수행 하 듯이 침묵하고 있고…”


“걱정이 조금 되기는 하는데…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어… 회사가 너무 뒤숭숭해서 일도 손에 잘 안 잡혀…”


“삼식이는 헤드헌터에서 이직 제안받은 거 없어? 요즘 경쟁사들이 우리 회사 직원들 스카우트하려고 난리라고 하던데…”


“연락받았지. 요즘 고민 중이야… 조건도 좋고 그래서…헤헤헤. 그런 너는?”


“나도 연락을 많이 받았지만 당분간은 도양에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얘기했지… 옮겨봐야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지금 하는 일이 재밌기도 하고…”


“하긴… 너야 직접 결정을 하면서 하는 일이 많으니 재미있겠지… 나는 시키는 일만 해야 하니까 별로 재미없어…”


모두 미래를 위해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지금의 도양에서는 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직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하였다.


인사팀의 정 부장도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지만 하전무나 사장에게 제대로 보고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보고해 봐야 인사팀의 업무만 늘어나기에 지금 하는 일만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게 현재의 회사 분위기였다.



직원들 대부분은 하전무가 새로 온 이후에 회사가 좀 더 변화되고 발전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회사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버리는 것 같아 실망하는 직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삼식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회사 근처에 도착하였다.


“삼식아… 이 부장도 출근 안 했으니 난 여기서 내려줘라… 그냥 퇴근하고 저녁에 신 차장이나 만나야겠어…헤헤헤.”


“야.. 그럼 나는? 너만 퇴근하고 나는 들어가서 일하냐? 나쁜 시키…”


“바보 같은 시키야… 너도 다마스에 LPG 채우려면 공항동에 갔다 와야 하니까 거기서 대충 시간 때우다 퇴근 시간 맞춰서 들어가면 되지… 하하하.”


“아…그런 방법이 있었네… 전주임이 참 똑똑하셔… 하하하.”


“가스 잘 채우고 내일 보자… 난 세종문화회관 앞에 내려줘…”


“그래… 신 차장 잘 만나서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들어봐… 나도 궁금하다…”


삼식이와 헤어진 나는 미스고에게 약속장소인 종로에서 만나자고 메시지를 남기고 명동으로 향했다.


전날 남겨진 음성 메시지에는 회사일을 걱정하는 혜령 씨의 메시지도 남아 있었다.


명동에서 잠깐 만나서 커피 한잔하고 싶다고 메시지를 넣었더니 시간이 된다며 잠깐 만나기로 하였다.


“혜령 씨… 잘 지냈어요?”


“저야 잘 지내고 있죠…그런데 회사일이 신문에 크게 났던데… 영문 씨한테는 아무 일 없는 거죠?”


“그럼요… 회사일이지만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니 아무런 걱정이 없어요… 하하하.”


“다행이네요… 신문기사를 봤더니 정치적인 사안도 얽혀 있다고 하고 그래서… 우리 삼촌이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최고 권력자에 의해서 공중분해 된 적이 있었거든요…”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날지는 아무도 모르죠… 회사에서도 아무런 설명도 없고… 사장은 병을 핑계로 입원하였고… 임원들도 숨죽이고 있는 것 같고… 암튼 회사가 요새 좀 어수선해요…”


“빨리 잘 해결되어서 정상이 됐으면 좋겠네요.”


혜령 씨는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고 있었다.


혜령 씨의 삼촌이 다니던 회사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회사였는데 정치적 하이에나 무리들이 덤벼들어 회사를 갈기갈기 찢어서 없애 버렸고 직원들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가장의 무게를 짊어졌던 일부 직원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채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였다.


그녀와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고 나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그녀가 더 예뻐 보였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미스고를 중간에 만나서 저녁 약속 장소인 종로구청 뒤에 있는 홍어 삼합 집으로 향했다.


신 차장이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속 깊은 얘기를 듣기엔 오래 삭힌 홍어집이 적절한 듯 보여 그곳으로 약속을 정했던 것이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신 차장이 벌써 와 있었다.


“신차장님. 일찍 오셨네요. 호호호… 어찌 지내셨어요?”


“할 일이 없으니… 내가 너무 일찍 와버렸네… 자네들이 늦은 건 아니고… 하하하.”


신 차장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해서인지 핼쑥해 보였고 많이 야윈 느낌이 들었다.


“신차장님 좋아하는 메뉴로 정했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좋지… 막걸리에 삼합이 최고 궁합 아니겠어… 하하하.”


막걸리 몇 잔을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신 차장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워드… 내가 한동안 도피하다시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절에서 내려왔지.”


“연락이 너무 안 돼서 미스고와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게…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민폐를 많이 끼친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하지.”


“그래도 이젠 도피하실 필요가 없다고 하셨으니 다행인 거죠 뭐…”


곰삭은 홍어향이 코를 찌르는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신 차장이 숨겨온 사건의 실체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였다.


“난 그동안 도양상사에서 평생을 바치다시피 일을 했었네. 아버지와 선대회장의 인연으로 시작되어 도양상사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위치까지 갔었고 난 그게 숙명이라 생각하고 내 가족보다 더 그들에게 충성을 다해왔었지.”


신 차장은 얘기를 하면서 연거푸 막걸리 잔을 비우며 가끔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최근에 내 심경에 변화가 좀 생겼지. 회사를 위해 평생을 바쳤던 나에게 회사는 아무런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았고 모든 책임을 나와 곽상무에게 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 그래서 이번 검찰 조사에서도 모든 걸 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온 걸세.”


신 차장의 표정에는 분하고 억울해하는 모습이 보였고 눈가엔 눈물도 조금씩 고이는 게 보였다.


신 차장은 회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큰 도움을 줄 거라 생각하였었기에 한동안 도피생활을 이어갔다고 하였다.


그러나 잘못하면 모든 죄를 자기가 쓰게 생겼다고 느끼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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