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Man Left Behind … Part 2

by 전선훈

신 차장은 목이 탄 듯 연신 막걸리를 들이켜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마지막 화재 사건이 벌어 진지 벌써 3년이 흘렀지만 회사에서는 이미 보험금을 받고 종료한 건이라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지. 하지만 사장이 지금 권력자의 후원회장 하던 사람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다시 재조사가 이루어지게 된 거네…”


“보험 사건 관련된 건 일사부재리의 원칙 적용이 안되나 보죠?”


“그런 원칙이야 법에서나 적용이 되는 거지. 일반 회사와 연관된 보험 사건은 언제든 재수사가 가능한 것 같더라고…”


“제가 듣기로는 세 분이 연루되어있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고 얘기들 하던데…”


“그래서 이번 조사받을 때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를 다하고 온 거야. 안 그러면 곽상무와 함과장…그리고 나… 이 세 사람이 다 뒤집어쓸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 물론 잘못된 일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져야지…”


“걱정을 많이 하셨겠네요… 우리는 검찰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떨리는데…”


“그렇지… 지금부터 우리 회사가 어떤 식으로 직원들을 대하는지 알려주고 싶네…”


신 차장은 얘기를 하면서도 화가 덜 풀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8년 전….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도양 그룹 총괄 사장과 도양상사 사장 사이에 후계자 구도를 둘러싼 암투가 벌어졌다고 하였다.


금융권과 정치권에 서로 줄을 대어 알짜 회사를 차지하기 위한 로비도 치열하였고 결국엔 지금의 도양 그룹 총괄 사장이 50 여개의 계열사 중 45개를 차지하게 되었고 지금의 도양상사 사장은 섬유와 물류를 포함한 5개 회사를 맡는 걸로 결론이 났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던 도양상사 사장은 도양그룹 보다 더 많은 자산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고 그 중심에 도양상사의 섬유 회사가 있었다.


몇 년간 꾸준히 매출을 확대하며 시장 점유율을 올려서 국내 시장에서 1위가 되었지만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생산 제품의 역습으로 인해 점유율과 매출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고 손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만들었으나 이미 사양산업으로 인식되는 섬유 사업을 일으키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도양상사는 큰 부지의 공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부동산 가격으로만 회사 가치를 환산해도 꽤 매력적인 회사였다.


경기도 주변에 있는 공장의 부지는 터미널 부근 아니면 지하철 역 주변에 위치하여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던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용도 변경이 우선적으로 진행되어야 가능했기에 도양상사 사장은 정치권에 줄을 대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용도 변경을 위한 로비를 꾸준히 하였지만 정치권의 약속을 받아 내기가 쉽지 않자 자신의 최측근으로 일하고 있는 곽상무와 신 차장을 불러서 자기의 계획을 실현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며 지시를 하였다.


그때부터 신 차장과 곽상무는 역할을 나누어 전방위 로비를 하였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사장실에 자주 불려 가 질책을 받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용도 변경 작업을 중지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공장의 설비가 워낙 낡아서 시설에 대한 재투자를 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게 되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 파주에 위치한 방적 공장에서 첫 번째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늦은 저녁 시간에 일어난 화재로 일본과 유럽으로 출고 대기 중이던 제품들이 모두 불에 타버렸고 불길이 일찍 잡히지 않아 공장 전체로 번지면서 전소되어 버렸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고 소방서의 조사 결과 누전에 의한 화재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 화재 사건의 주 보험사 사장이 현재의 권력자 후원회장을 오래 했던 사람이었고 그때부터 도양상사와의 악연이 시작된 계기였다.


몇 번에 걸쳐 보험회사 검사관들이 조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이상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당연히 도양상사는 보험금 지급 요청을 하였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보험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며 감정싸움을 계속하게 되었다.


시간이 좀 흘렀지만 공장 전체가 전소된 것과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제품 가격까지 산정을 해보니 도양상사의 1년 순이익에 맞먹는 보험금이 산출되었고 보험회사에서 지급된 그 금액은 기울어져가는 도양상사에겐 아주 튼튼한 총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보험금으로 받은 실탄으로 몇 개의 회사를 더 인수할 수 있었고 인수한 회사들의 매출이 계속 늘어나며 자산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 재계에서는 “기적경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독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고 그저 운 좋게 회사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만 했었다.


화재가 난 공장으로 인해 경영 실적이 좋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그때부터 사장은 낡고 오래된 다른 공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곽상무와 신 차장은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장은 노골적으로 낡고 오래된 공장의 순서를 매기며 안전하게 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라 지시하였고 그 지시를 곽상무와 신 차장이 행동으로 옮기면서 두 사람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화재 사건 이후 경기도에서는 도양상사가 보유한 공장의 정기 소방점검을 실시하였지만 매번 특이사항 없음으로 결론이 났고 그 중심에 곽상무와 신 차장의 로비도 한몫을 하였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두 사람은 회사에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었고 입사 동기들보다 빠른 승진과 특별 상여금을 지급받는 등 모든 직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장은 경영 실적에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자연스레 우선순위가 매겨진 공장에 화재가 나도록 유도하여 거액의 보험금을 1년 단위로 챙기게 되었다.


그 준비 과정의 마지막은 항상 제품 창고에서 화재가 시작되게끔 설계되었다.


섬유 제품의 특성상 떠다니는 먼지가 많이 발생하게 되고 구석에 뭉쳐진 그런 섬유 먼지들은 오래된 전기 시설에서 발생하는 누전에 아주 좋은 불쏘시개 역할을 하였던 것이었다.


4개의 공장이 1년 주기로 화재가 발생하니 주 보험회사는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워낙 낡은 공장에서 발생한 일이다 보니 검사관들도 매번 고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어 보험금 지급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 하였다.


이미 보험회사에서는 내부의 정보를 꾸준하게 입수하며 한방을 먹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허나 워낙 은밀하게 진행된 작업이어서 보험회사도 그 내막을 밝혀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보험을 계속 받아주었고 남아있는 4개의 공장 중에 다음 화재가 발생할 공장을 예상하는 작업을 하며 시간을 벌기로 하였다.


최근의 재계에서는 “세계 경영”이 화두였지만 도양상사의 “기적경영”또한 한동안 화두가 되곤 하였다.


화재로 공장이 없어져 버렸는데 막대한 보험금과 자연스레 용도가 변경되어 거액의 부지 매각 대금이 회사에 들어오니 가히 “기적경영”이라 불릴 만했다.


늘어난 현금 자산과 인수한 회사의 매출로 인해 도양 그룹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게 된 사장은 그룹 전체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고 그 작업의 마침표를 찍기 위하여 공장 하나를 더 전소시켜 실탄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두 사람은 사장에게 건의하여 이제 더 이상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여러 차례 보고를 하였지만 그때마다 사장에게 질책을 받았고 보고서 만들 시간에 다른 공장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게 어떠냐는 핀잔을 듣기만 하였다.


두 사람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평택에 있는 공장을 작업하기로 하였고 이번에는 아주 완벽하게 끝내고 더 이상 화재사건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보험회사도 이미 평택 공장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물증을 잡아서 그동안의 화재가 다 사기임을 밝히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두 사람은 이번에는 다른 형태의 화재를 계획하게 되었고 그 작업을 위해 여러 번의 모의 훈련도 진행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는 낡고 오래된 제품창고의 섬유 먼지에 의한 누전 화재로 보이게 했다면 이번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평택 공장은 섬유 생산에 필요한 모든 공정이 다 들어가 있었지만 설비가 워낙 오래되어 자주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 두 사람이 눈독을 들인 건 바로 염색 공정 설비였다.


다른 공정은 생산이 없으면 멈추게 되어있지만 염색 공정은 24시간 보일러가 가동이 되어야 하고 특히 보일러의 압력 문제가 발생하면 폭발할 수도 있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번에는 보일러의 폭발사고로 위장하기로 계획하였고 평택 공장의 생산 계획을 백포 제직만 진행하여 쌓아 뒀다가 후염을 하기 위한 염색 공정에 투입하기로 한 날짜를 D-Day로 삼기로 하였다.


드디어 D-Day….


폭발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조력이 필요한 상황이었기에 전공 보일러 기사를 날짜에 맞춰 다른 공장으로 출장을 보내고 경험이 부족한 보조 기사에게 업무 지시를 하게끔 하였다.


이것도 아주 잘 설계된 심리 전략 중 하나였는데 대부분의 기술자들이 보조 기사들에게는 기술 전수를 잘 안 한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공 보일러 기사는 보조 기사에게 대략적인 보일러의 압력 기준만 알려주고는 그냥 출장을 가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보조 기사는 전공 기사가 지시한 대로 보일러의 압력을 맞추고 작업을 시작하였고 큰 무리 없이 공정이 진행되자 야근자들과 함께 야식을 먹으러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보일러 내부의 압력이 갑자기 상승하기 시작했고 설비 주변에는 통제를 할 수 있는 작업자들이 아무도 없었다.


쾅… 쾅… 쾅…


보일러의 연쇄 폭발로 인해 공장은 순식간에 화마에 휩싸이게 되었고 다른 건물로 빠르게 옮겨 붙었다.


그때 함께 야식을 먹던 함과장은 갑자기 제품 창고로 뛰어들어가 쌓여 있는 제품을 조금이라도 꺼내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불이 제품 창고까지 옮겨 붙어서 다들 만류하였지만 함과장 혼자서 끝까지 진행하였고 그러는 와중에 천장에서 떨어진 목재 기둥에 의해 한쪽 다리를 끼이며 정신을 잃었고 소방관에 의해 구출되어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한쪽 다리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함과장의 그런 무모한 행동을 회사 경영진이 좋게 평가하여 정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오산 공장에서 계속 근무를 하게 된 배경이었던 것이었다.


평택 공장의 화재 소식은 삽시간에 주요 뉴스의 속보로 알려지게 되었고 공장이 전소되어 큰 재산 피해가 예상되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지 않다는 얘기만 뉴스로 전해졌다.


노심초사하며 결과를 기다리던 곽상무와 신 차장은 뉴스 속보를 듣자마자 바로 평택 공장으로 향했고 함과장 외에는 인명피해가 없다는 보고를 받고 안도의 숨을 쉬며 결과 보고를 하기 위해 사장의 집으로 향하였다.


“함과장 외에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마치 아무것도 몰랐던 듯 자연스러운 사장의 모습과 “수고했어요” 하며 어깨를 두드리며 두 사람을 격려하는 사장의 모습이 그리 인간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장과 함께 한배를 탔으니 문제가 발생해도 사장이 두 사람을 보호해 줄 거라는 강한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보고를 마친 두 사람은 계획대로 잘 진행이 되었고 인명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시를 받아서 진행한 일이었지만 정당한 일은 아니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은 가시질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보험회사도 발 빠르게 움직였고 여러 차례 공장에 검사관을 파견하여 예전보다 더 많은 조사를 했지만 보일러 폭발 외에는 다른 혐의를 찾을 수 없었고 소방서에서도 폭발 사고로 단정 짓는 결론을 내렸다.


주 보험회사는 또 한 번 거액의 보험금을 물어줘야 했고 보험회사 사장은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오랜 시간을 버티며 정치적인 힘을 빌어 재조사를 진행하게 된 것이었다.


도양 그룹 전체를 삼키기 위해 벌인 공장의 화재 사건은 별다른 혐의점 없이 넘어가게 되었고 한동안 곽상무와 신 차장은 동기들보다 빠르게 승진을 하며 직원 모두가 인정하는 사장의 최측근으로 불리게 되었다.


1년에 한 번씩 벌어졌던 화재 사건 이후 회사는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듯했지만 보험금으로 인수한 몇 개의 회사 중 금융 관련 회사에서 대규모 회사채 발행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여 거의 파산에 이를 뻔하였고 다행히도 나머지 회사를 다 정리하고 지금의 도양상사만 남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 재계에서는 도양상사의 “기적경영” 은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고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치부되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꿨지만 다시 과거의 조그만 회사를 경영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사장은 외부 인사를 영입하여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 중심에 하인걸 전무가 있었고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서는 과거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 들과 단절을 해야 했기에 행동대장 역할을 했던 곽상무는 감사를 통한 개인 비리 혐의를 받고 회사를 그만두게 하였고 신 차장도 나이를 핑계 삼아 회사를 떠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두 사람은 사장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지만 모두 받아들이기로 하였고 그저 평범한 자연인으로 살아가기를 꿈꾸며 은퇴를 결심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이 다시 불거지면서 두 사람에 대한 회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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