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오래전 제약회사의 광고 자막이나 약품의 설명서에 등장했던 이 표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1990년대 말까지 보았지만 2000년 의약 분업이 실시된 이후부터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문구가 되었고 전문 분야의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사에게 약을 구매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병원의 의사가 아닌 약사에게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구매하던 시절도 있었고 부러지거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가끔 병원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 주재원으로 생활을 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병원보다는 약국을 많이 다녔고 한국에서 필요한 상비약을 잔뜩 구매해서 집에 쟁여두고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에게는 현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다 보니 병원을 갈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비쌌다.
의사 면담 한 번에 100불은 기본이고 입원이라도 해야 하면 하룻밤에 1,000 불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응급처치를 한 후 한국으로 들어가 치료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재하던 곳의 의료환경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현지 치료보다는 한국을 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특별히 크게 아프지 않고 주재원 생활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병원을 찾게 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자영업을 시작하고 난 이후부터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을 구매하고 복용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없어서는 아니고 그저 병원을 가는 게 귀찮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슷한 증상이라 생각되면 약국을 먼저 찾는 경우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코가 밍밍하고 목도 좀 아픈데 마시는 감기약 하나 먹어야겠네.”
“여보. 그런 거 먹지 말고 병원을 가보는 게 낫지 않아?”
“심하게 아픈 것 같지는 않으니 약 먹으면 금방 나아질 것 같아.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겠어. 하하하.”
“고집 피우지 말고 병원을 가는 게 좋을 텐데…”
“내 몸은 내가 아니까…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셔. “
근처의 약국에 들러 비슷한 증상으로 광고하는 약을 구매하여 먹고 낫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신체 곳곳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친구들을 만나면 약과 관련된 대화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요즘에 오줌빨이 영 시원치 않아서 가수가 광고하는 전립선 약을 먹었더니 엄청 좋아졌어. 한번 먹어봐. 강력 추천. 하하하.”
“오. 그래? 나도 요즘 그런데… 조만간 사서 먹어봐야겠구먼. 하하하.”
관절이 안 좋으면 이거 먹고 눈이 침침하면 저거 먹고… 친구들 모두 몸에 좋다는 약을 줄줄 꿰고 있지만 끝까지 다 먹는 경우보다는 사놓고 안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매출이 줄면 이런저런 걱정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고 면역력도 점점 떨어져 자주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사장. 잘 지내지?”
“아이고… 박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요즘 잘 지내는 자영업자가 어딨 나? 그저 버티고 있는 거지.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데?”
“코감기 같은데 약을 먹어도 잘 안 낫네요. 헤헤헤.”
“전사장도 병원 안 가고 약만 먹는 타입이구만. 나랑 똑같네. 하하하.”
“그러게요. 약 먹은 지 일주일 돼 가는데… 나아지지 않네요. 헤헤헤.”
“나도 예전에 약만 먹고 그랬는데… 요즘엔 어디 이상 있으면 바로 병원 가서 진료받고 주사 맞고… 그게 제일 빨리 나아. 자영업자에겐 몸이 재산이야. 하하하.”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먹지도 않고 몸에 좋다는 약만 잔뜩 쌓이고 있어요. 헤헤헤. “
”전 사장. 증상만 얘기해. 필요하면 내가 가져다줄게. 쟁여둔 약만 따지면 거의 대형 약국 수준이니까. 하하하. “
”알겠습니다. 필요하면 얘기할게요. 헤헤헤. “
”질질 끌지 말고 빨리 병원 가서 진료받고 주사 한 대 맞아. 우린 몸이 재산이니까… 하하하. “
”네. 지금 바로 가야겠네요. 헤헤헤. “
며칠간 약만 먹다가 의사에게 진료를 받은 후 주사와 약 처방을 받고 나니 3일 후 증상이 완치가 되었고 이상신호를 보낼 때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병원을 찾아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거봐. 여보. 주사 맞고 약 먹고 그러니 금방 낫잖아. 앞으로는 어디 아프면 바로 병원 가. 알겠지?”
“알았어. 광고 나오는 약이 별로 좋은 건 아닌가 봐. 헤헤헤.”
“약이 다 그렇지는 않지. 당신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거지. 면역력 떨어지고 여기저기서 이상신호 보내고 그럴 나이니까.”
“오늘은 손님도 없고 하니까 일찍 들어가서 약 먹고 쉬어야겠다. 그래야 내일을 준비하지.”
“하여튼 핑계는… 장사 신경 쓸 생각은 안 하고…여차하면 일찍 들어갈 생각만…호호호.”
“내 몸이 재산이니까 관리해야지. 안 그래? 하하하.”
“맞네요. 당신이 아프면 안 되니까 오늘은 일찍 들어가요. 호호호.”
핑계를 대고 일찍 들어갔지만 나를 위해서도 그렇고 내일의 손님을 위해서라도 내 자신부터 건강해져야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른 시간이지만 약부터 챙겨 먹고 쉬는 게 상책이다.
직업으로 따지면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 굳이 내가 그 영역을 넘어서 판단하고 결정할 필요는 없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