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사장은 직원들에게 점점 잊혀지고 있었다.
하전무는 매일 구치소를 방문해서 경영에 필요한 결정사항을 사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일이 하루 일과였다.
모든 것은 하전무를 통해서 결정이 이루어졌고 직원들은 그런 결정이 사장의 의중이 반영이 된 건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하전무가 지시하고 결정하는 것에 순응할 뿐이었고 모두 하전무를 사장이라 생각하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특별히 변화된 것도 없었고 그냥 늘 하던 일의 반복이 계속될 뿐이었다.
“전 주임… 홍콩 출장 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네. 오늘 테리와 일정을 최종 조율하기로 했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보고드릴 예정입니다.”
“알겠네… 큰 오더가 아니어도 좋으니 일정을 빨리 잡아서 실적을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해 주게. 요즘 하전무의 관심은 온통 구치소 방문과 매출 관리 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네.”
“알겠습니다. 어수선한 상황일수록 매출에 신경을 써야죠. 하전무가 매일 구치소 가면서 챙겨가는 자료가 매출 현황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해외 매출이 계속 성장을 해주니 다행이지. 국내 매출은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요즘은 밥 맛도 없네…”
사장 구속 이후로 거래가 중단된 국내 거래선이 많았고 거래가 유지되더라도 주문량은 소량으로 진행되는 게 전부여서 매출과 이익이 모두 빠지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이 부장은 국내보다 해외 실적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고 주문이 예상되는 바이어가 있으면 언제든 출장을 가라고 독려를 하기도 하였다.
해외 영업은 이 부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매출과 이익이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졌고 국내 영업에서 빠지는 실적 일부를 해외 영업이 채워주면 간신히 올해 매출 목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이 부장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점점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지만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는 직원들이 점점 늘어나자 하전무는 고민이 많이 되었는지 직원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특별 승진 발표를 하였다.
갑작스레 발표된 인사 발령은 회사의 모든 직원들을 거의 충격에 빠뜨릴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물론 나도 승진 명단에 포함이 되어서 주임에서 계장으로 승진이 되었다.
보통 주임으로 승진하려면 입사 후 3년이고 계장은 6년이 걸린다는 것이 우리 도양상사의 기본 인사 방침이었는데 입사 2년 만에 계장으로 승진한 것은 도양상사 내에서도 유래가 없었던 것이어서 다들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었다.
“어머… 이젠 전 영문 계장님으로 불러야겠네요…호호호.”
“너무 쑥스러운데요… 하하하.”
미스고는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었지만 이번 인사 발령에 포함되지 못한 직원들 때문에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우리 입사 동기들도 다 주임으로 승진을 하여서 그나마 미안한 감정이 좀 덜했다.
이직을 하려고 했던 동기들 몇 명은 마음을 접고 다시 도양상사에서 뼈를 묻겠다고 다짐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승진과 월급 인상은 회사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기에 이번 인사 발령으로 하전무의 친정 체제는 더욱 공고히 되어가고 본격적으로 하전무의 경영이 시작된다는 신호탄으로 여기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장님… 아니… 이제는 이사님으로 불러야겠네요… 축하드립니다.”
이 부장도 이번 승진명단에 포함되어 이사로 승진을 하였고 이 부장을 끝까지 견제하던 4명의 까딱이 부장들을 할 말이 없게 만들었다.
운을 기대하며 하전무에게 끊임없이 줄을 대려던 4명의 까딱이 부장들은 실력이 바탕이 된 이 부장에게 완패를 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앞으로 결재 라인은 당연히 이 부장을 통해야 하기에 4명의 까딱이 부장들의 처신을 바라보는 것도 회사생활의 큰 재미가 될 것 같다는 얘기들이 직원들의 입을 통해서 빠르게 전해지고 있었다.
“해외 영업의 실적이 좋아져서 덕분에 내가 승진을 하게 된 것 같네… 전 계장의 덕분일세… 하하하.”
“별말씀을요…이 이사님의 탁월한 관리 능력과 실적이 승진 배경이 된 거죠. 제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헤헤헤.”
“자네도 도양상사의 승진에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냈으니 대단하지.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회사의 명령인 것 같아서 부담이 많이 되긴 합니다. 헤헤헤.”
내가 몸 담고 있는 부서에서 승진은 이 부장과 나 밖에 없었기에 우리 두 사람을 하사라인으로 인식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하사 라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승진과 월급 인상이 가져다주는 기쁨만 누리면 되는 것이니까…
이번 승진 결과로 부서별로 희비가 엇갈렸지만 하전무의 사람들로 회사의 조직이 구성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과거처럼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고 눈감아주는 그런 일들이 또 발생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직원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워드…. 아니… 전 계장님… 시간 나시면 저랑 커피 한잔 하시죠…”
“오… 이게 누구야… 삼식이 주임 아닌가…무슨 일로 저를 애타게 찾으시는지… 하하하.”
“인도 연수생 일정이 확정되어서 간단히 미팅을 좀 해야 하는데…”
“오케이… 인사팀 회의실로 내려갈게…”
회의실로 들어가니 삼식이의 표정이 거의 벌레 씹은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틀 후 연수생 들어온다고 연락 왔어. 인도 법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윤병팔 계장이 함께 들어올 예정이라고 하더구먼…”
“공장 쪽 준비는 다 되어있는데 표정이 왜 그러냐? 아무 문제 없이 잘 인솔만 해서 가면 되겠던데. 인도 주재원도 함께 온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구만… 하하하.”
“연수생 관련 준비는 다 해놨지…근데… 정 부장 등쌀에 못살겠다… 이번 승진에 누락된 게 내 탓이라며 뒷말을 엄청 하고 다니나 봐… 이 부장이 이사로 승진한 게 하워드가 잘해줘서 그런 거라는 얘기를 하면서 나보고 뭐 하는 놈이냐고…”
“정 부장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이 좀 너무 조잔해 보이네. 이 부장이 이사로 승진한 게 내가 잘해서 그런 거냐… 이 부장이 실력이 되니까 임원이 된 거지…
“암튼 요새 승진에 누락된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전무도 씹고 승진한 사람들의 지문이 있네 없네 하면서 뒷얘기를 무지 하나 봐…”
“야… 신경 쓰지 마. 원래 인사 발령 이후엔 공정하지 못하다는 평가가 늘 따라다니는 게 당연한 일이고 또 며칠 지나면 조용해지는 게 인사야. 하하하.”
이번 승진은 사장 구속 중에 일어난 특별 승진 개념이었기에 연말에는 정기 승진 인사가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상실감을 크게 느끼는 직원들이 많았고 그래서 더욱 뒷얘기들이 무성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삼식이와 나는 연수생 준비를 다 끝낸 후 공장의 함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일정 통보를 마쳤다.
함과장은 검찰로부터 합리적인 의심을 받았지만 회사를 위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 무혐의 처리를 받아서 아무런 제약 없이 업무 복귀를 했고 정년이 훨씬 지난 나이지만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준 회사에 늘 고마움을 갖고 있어서 이번 인도 연수생 업무도 아주 적극적으로 대해 주었다.
“전계장… 연수생 일정 잘 정리하고 동기들끼리 승진 주 한잔하자… 다들 기분이 좋은 지 그만둔다던 놈들도 다시 뼈를 묻겠다고 하더라… 하하하.”
“어이… 삼식이 주임… 계장 뒤에 "님" 자 붙이고… 하하하. 회사 생활 뭐 별거 있냐… 때맞춰서 승진하고 월급 올라가면 장땡이지… 안 그래? 하하하.”
“네… 하하하.”
서로 웃으며 이틀 후 김포공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사무실로 들어오니 테리로부터 팩스가 들어와 있었다.
홍콩 출장 일정을 정해서 보내왔는데 일주일 정도 시간을 빼 달라는 꽤 긴 일정이었다.
생산 기획과 디자인 팀과는 이미 샘플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여서 출장 결재만 받으면 되었기에 이 승진 이사에게 보고를 올렸더니 오더 많이 받아오라며 바로 결재를 하며 웃는다.
“해외 출장 결재는 원래 사장님이 하는 것이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이 하전무님에게 받아야 하니 바로 올라가서 결재를 받아요.”
임원으로 승진하기 이전에는 상종 못할 사람이라며 뒷얘기를 심하게 했지만 승진 이후에는 하전무를 대하는 호칭에 “님”자가 붙었다.
세상이 그런 것이고 회사가 그런 곳이다.
내 기분과 입맛에 맞춰서 언제든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네. 알겠습니다.”
결재를 받으러 올라가면서 신입 시절 사장에게 첫 해외출장 결재를 받던 그때의 기억이 떠 올랐다.
우리 도양상사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시장이 해외 시장이니 최선을 다하라며 금일봉과 함께 신입사원을 격려하며 환하게 웃던 사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지만 현재는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는 사장의 모습이 떠올라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 사장은 지킬과 하이드가 되었을까?
처음에 발생한 화재로 받은 보험금을 노후 공장의 시설에 재투자를 하였다면 지금은 업계 1위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것을 현 상황에 대입해 보면 다양한 해석과 재미있는 결론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글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늘 하고 있었다.
승패가 바뀌었다면…
승자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보험금을 노후 설비 보완에 재투자를 했다면….
사장에 대한 내 머릿속의 오래된 기억과 현재의 사장 모습이 겹치면서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하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영문 계장님… 승진 축하 드립니다. 회사의 역사에 남는 승진이라고 들었는데…대단하신 것 같아요. 호호호.”
“고맙습니다. 축하해 주시니 좀 쑥스럽네요…헤헤헤.”
늘 눈인사만 나누던 하전무의 비서가 오늘은 친근하게 말을 건네며 승진 축하를 해주었다.
“언제 시간 나시면 승진 턱 한번 내셔야죠…호호호.”
“그럼요… 언제든 편한 시간만 알려주세요. 승진 턱 한번 내도록 할게요… 하하하.”
“알겠습니다. 기대할게요. 호호호.”
사내에서 이번 승진의 결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많은 변화가 생긴 건 분명해 보였고 나는 그런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전 영문 계장님. 들어가세요.”
“네. 고맙습니다. 편한 시간 꼭 알려주세요. 헤헤헤.”
하전무의 방으로 들어가니 누군가와 방금 통화를 마친 듯 표정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요 전 계장. 앉게.”
“해외 출장 건으로 결재를 받으러 왔습니다.”
예상 주문량과 출장 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난 후 바로 결재를 하면서 몇 가지 주문 사항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전 계장. 일정을 보니 중간에 인터스토프 전시회가 있던데… 이번 기회에 생산기획 팀장과 디자이너와 함께 출장을 가면 어떻겠나? 다른 경쟁사들의 제품 조사도 하고…”
“네. 같이 가는 일정에는 문제는 없는데… 여권이 준비가 안 되어있으면 이번엔 어려울 듯합니다. 제가 확인해 보고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아…그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겠네. 사전에 해외에 나갈 준비가 되어있으면 모르지만 여권을 새로 만들고 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출장 출발 날짜가 1주일 밖에 남지 않아서 여권이 없으면 함께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해외로 나가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여권을 가지고 있는 직원이 많지가 않은 게 현실이었다.
하전무는 비서에게 생산 기획 팀장인 오 기호 차장과 디자이너 실장인 김 병숙 차장에게 여권 유무 확인하여 보고하라고 지시를 내린 후 자기 자리로 돌아가 뭔가를 꺼내 들고 다시 앉았다.
“이 자료는 과거 사장님이 일본에서 잠시 유학을 할 때 시장조사를 했던 자료일세. 일본의 섬유 30년 역사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서 지금 봐도 향후 다른 시장 조사할 때 참고 자료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아서 주는 거네… 틈날 때 읽어보고 업무에 참고를 해보게. 복사본이니까 전 계장이 보관하고 있어도 괜찮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귀한 자료네요.”
“어제 사장님 면회를 다녀오면서 해외 시장 얘기가 나왔어. 해외 영업의 실적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보고를 드렸더니 사장실 서재에 꽂혀 있는 이 자료를 찾아서 전계장에게 시장 개발 참고 자료로 사용하게 하라고 하시더라고. 나도 이런 자료가 있는지 처음 알았네. 나도 읽어 보았지만 정말 정리가 잘 된 보고서야.”
“사장님은 답답한 곳에 계시면서도 계속 회사 생각을 하고 계시네요. 잘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이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돼서 짜증도 많이 내고 안절부절못하고 했었지.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되셨는지 농담도 하고 그러더라고.. 하하하.”
“네? 농담을 하실 정도로 좋아지신 건가요? “
“그렇더라고. 독방에 있으니 책도 많이 읽으시는 거 같고 잠깐씩 있는 운동 시간에도 열심히 체력을 키우고 그러면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군. 앞으로 본인이 출소하면 회사의 모든 문은 자동문으로 만들거나 회전문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하더라고.. 하하하.”
“네? 자동문이나 회전문요?”
“구치소나 교도소는 누군가 밖에서 문을 열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일상적으로 안에서 문을 열고 닫고 하던 일을 못하니…그런 이유로 본인이 구속이 되어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하면서 웃으시더라고… 하하하.”
“아… 이해가 됩니다… 자유와 구속의 차이가 딱 그거네요. 안에서 문을 열고 닫을 수 없다는 것….”
구속된 사장에겐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에 더욱 불편할 수 있지만 본인이 안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바로 받아들인 듯 느껴졌다.
사장의 구치소 생활 얘기를 하는 동안 하전무의 비서가 확인한 내용을 보고하러 들어왔다.
“전무님. 두 사람 모두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 만든 여권이 단수 여권이어서…”
“아… 알았어요. 앞으로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미리 여권을 만들어 놓으라 해야겠구먼… 허허허.”
이기적 일지 몰라도 함께 가는 출장은 솔직히 피곤하기에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다른 표현을 쓰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를 함께 가면 좋을 듯했는데… 좀 아쉽네요. 10월에 다시 전시회가 열린다고 하니 그때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직원들도 언제든 해외 출장을 갈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아야 하는데… 꼭 무슨 상황이 되어야 만 시작을 하니…”
“이번 출장은 혼자 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내려가 보겠습니다.”
“그래. 출장 잘 다녀오고 오더 많이 받아오도록 하게… 하하하.”
사장의 부재로 인한 모든 결정은 하전무가 진행하고 있었지만 사장의 그림자는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었다.
우리에게 잊혀 가는 줄 알았던 사장은 안에서 훨씬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안에서 잘 살고 있소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