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과 충성

by 전선훈

인도 연수생들이 들어오는 날…


삼식이와 나는 일찍부터 김포 공항에 나가서 수닐 씨의 의견을 토대로 연수생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세버스에 인도인들이 좋아하는 음악도 준비해 놓았고 차량 탑승 전에 피곤함을 덜어주기 위해 즐겨 마시는 짜이 티도 준비해 놓았다.


낯선 이국 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젊은 연수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판단하여 최대한의 배려를 해주라는 지시도 있었다.


“삼식아… 함께 오는 윤 병팔 계장은 참 힘든 곳에서 일하는 거네… 난 인도로 주재원 나가라고 하면 안 간다고 버틸 것 같은데… 하하하.”


“나가고 싶어서 나갔겠냐… 회사가 나가라고 하니 강제로 떠밀리다시피 나간 거겠지… 나도 인도 가서 근무하라 하면 안 갈 것 같아… 하하하.”


“그래도 대단하다. 어려운 환경이라고 얘기는 들었지만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건 체감 온도가 다를 것 같은데…”


“다른 대기업들 주재원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것은 사실이지. 먹고사는 게 뭔지 원…”


윤병팔 계장은 입사 초기에 해외 영업에 잠시 근무를 하다가 인도 합작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부서를 관리팀으로 옮긴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짧은 시간을 해외 영업에 있었기에 신 차장도 윤계장에 대한 얘기를 나에게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야… 삼식아… 도착하자마자 도주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막을 준비는 잘한 거냐?”


“사실 나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윤계장이 먼저 출국 심사를 마치고 앞에서 연수생들 여권을 다 회수할 예정이래. 그러면 나오자마자 튀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다 하더라고…”


“그나마 다행이네… 우리가 신경을 안 써도 되니… 난 다 도망가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 하하하.”


도주 사례가 언론에 많이 알려져 있어서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는 프로그램이라 하여 폐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3D 업종에 해당되는 섬유 공장에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자 정부에서도 어쩔 수 없이 해외 산업 연수생 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무도 왜 인도에 합작 공장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는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투자금과 생산 시설은 모두 도양상사가 부담하고 인도의 합작 회사는 토지를 제공하는 조건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인도와의 합작 사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중앙정부에서 합작 승인을 하여도 주정부와의 복잡한 세금 관계 등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아서 투자금만 날리고 몸만 빠져나오는 회사가 대부분이었다고 하였다.


아직까지는 문제없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생산 가동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가 사내에서 돌고 있었다.


“삼식아… 거의 도착 시간이 된 것 같네. 입국장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자.”


“그러자. 아무 사고 없이 공장으로 무사히 잘 인솔해서 갔으면 좋겠다. 하하하.”


김포공항 입국장엔 마중 나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해외라도 다녀올 때는 온 식구가 출동하여 그들의 귀국을 환영해 주는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환영객들로 복잡한 공항 입국장에 “환영객은 가족당 1명”이라는 안내판을 설치하여 혼잡을 덜려하였지만 해외에 다녀온다는 사실 자체가 은근히 자기 과시를 하는 상황이어서 줄어들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삼식이와 입국장에서 한참을 기다리니 문이 열리며 윤 병팔 계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인도 연수생들을 줄 세워서 나오고 있었다.


“야.. 삼식아. 저기 나오는 것 같다… 맞지?”


“어.. 그런 것 같네… 단체로 들어오는 걸 보니 연수생들이 맞는 것 같네.”


복잡한 입국장을 피해 조금 한가한 곳으로 연수생들을 안내하고 잠시 인원점검 및 필요한 사항을 점검하기로 했다.


“윤 병팔 계장님 맞으시죠? 저는 본사에서 나온 임삼식 주임이고 여기는 전 영문 계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렇게 마중 나오셔서 업무를 도와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간단한 인원 점검을 마치고 버스가 주차된 곳으로 이동하려는 찰나에 연수생 중 5명이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여 삼식이가 그들을 인솔해서 화장실로 가고 나머지 40명은 줄지어 주차 장소로 이동하였다.


짐칸에 가지고 온 짐을 넣어 놓고 버스 기사가 틀어준 인도 음악과 짜이 티 한잔씩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화장실로 간 삼식이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윤 계장님… 화장실에 함께 간 삼식이가 한참 걸리네요. 제가 잠시 찾으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시간이 꽤 걸려서 걱정이 되네요. 다녀오세요.”


삼식이가 인솔해 간 화장실로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사색이 되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아다니는 삼식이만 보이고 인도 연수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야… 삼식아… 어떻게 된 거냐? 연수생들은 어디 가고 너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아… 씨바…이 놈들이 다 튀어버렸어… 화장실 들어간 후 나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길래 들어가 봤더니 화장실 창문 틈으로 해서 다 도망가 버렸어… 어떡하냐?”


“뭐? 화장실 창문 틈으로 다 사라졌다고? “


“어… 아무리 찾아봐도 없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어…”


“황당하네. 여권을 윤계장이 가지고 있어서 도망갈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골 때리네… 일단 출입국 사무소에 빨리 연락하고 올 테니 너는 윤계장한테 가서 전후 사정 얘기하고 있어…”


“그래. 알았어. 전계장이 수고 좀 해줘…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삼식이와 얘기한 대로 나는 바로 출입국 사무소로 가서 전후 사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이라 좀 당황스러워 얘기를 했지만 담당자는 별일 아닌 듯 쳐다보며 얘기를 하였다.


“여권을 다 회수해도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일단 접수를 하겠습니다. 조만간 회사 연수생 실태 점검 나가게 될 겁니다. 위반 사항 확인되면 회사에 벌금이 내려질 겁니다.”


“도망간 지 얼마 안 됐으면 주변 수색이라도 좀 할 수 없을까요?”


“입국할 때 회사에서 책임을 지기로 각서를 하셨으니 회사에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보다시피 사무실에 잡으러 다닐 사람도 없고…”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수고하세요.”


살펴보니 출입국 사무소의 인력도 도망친 사람을 잡으러 다니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듯 보였기에 더 이상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주차된 버스로 이동을 하니 윤계장과 삼식이는 거의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전후사정을 얘기하니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바로 오산 공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출발하기 전 삼식이는 정 부장에게 문제 상황을 보고하였지만 일 처리 하나 제대로 못하냐며 핀잔만 듣고 남아있는 인원이라도 빨리 공장으로 인솔하고 나중에 다시 보고하라는 얘기만 들었다.


이동하는 차 안에는 정적만 흘렀다.


연수생들도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한 상태였기에 바로 골아떨어졌고 한국인 3명은 아무런 말없이 창밖만 쳐다보며 공장으로 가고 있었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예상하며 편안하게 연수생들을 인솔할 생각을 했던 삼식이와 윤병팔 계장은 본사 복귀 후 쏟아질 질책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업무 지원으로 나오긴 했지만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온 친구들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함께 가고 있는 연수생들의 도주를 막을 방법을 공장과 협의하여 감시와 감독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공장에 도착한 연수생 일행은 함과장의 지휘아래 기숙사 배정을 마치고 카레라이스로 저녁을 먹였다.


연수생들이 저녁을 먹은 후 각자 기숙사로 이동하는 것까지 확인한 후 함과장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인솔자인 우리들에게 간단히 소주 한잔을 하자며 공장 근처 단골집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특히 윤계장이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사람이 작정하고 뭘 하려 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어. 그냥 재수 옴 붙었다 생각하고 잊어버려… 하하하.”


함과장은 윤계장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소주 한잔을 건 냈다.


“저도 좀 당황스러웠죠. 여권도 제가 가지고 있었고… 설마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갈 거라는 생각은 상상도 하지 않았었거든요… 도망간 친구들은 처음부터 일을 배울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다 잊어버리게… 나머지 인원은 우리 공장에서 잘 관리하도록 할 테니…”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잔과 함과장의 진심이 섞인 위로에 오늘 하루의 피로를 날려 버리기에는 충분한 느낌이 들었다.


함과장과의 저녁을 마치고 오산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주변에 서남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남아있는 나머지 연수생들의 관리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숙사를 교도소처럼 운영할 수 없기에 주말마다 외출이나 외박이 허용되면 역 주변의 동료들에게 월급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언제든 배신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이 조성이 될 것 같았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여러 명의 배신자들이 등장한다.


맹달. 여포. 가후…


맹달은 개인의 욕심보다는 상황에 의한 배신이었지만 존경받던 관우의 죽음과 연관된 배신이어서 이도 저도 아닌 우유부단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여포는 주군을 세 번이나 배신한 패륜아로 완전히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이 앞선 배신의 대명사가 되어버렸고…


가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배신을 했지만 도덕성 따위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듯 “삼공”이라는 지위에 올라 80 살까지 살아남으며 “인생은 가후처럼”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처세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Betrayal and Loyalty (배신과 충성)…


사실 이 두 단어의 선택은 자신의 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뿐이다.


나는 충성이라 생각하지만 남은 그걸 배신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가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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