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을 위한 준비

by 전선훈

사장의 실형 선고 이후 회사는 한마디로 뒤죽박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너가 없으니 회사는 당연히 하전무 중심으로 돌아갈 것으로 믿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장은 이번 재판의 결과에 엄청난 실망을 하고 있었다.


부실한 재판 전략으로 인해 실형이 나온 것이라 믿고 있기에 누군가에게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 중심에 있던 하전무에게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다.


그 경고성 메시지는 다름 아닌 자기 부인인 민 애리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경영에 참여를 하게 하는 것이었다.


사장은 안에 있으면서도 아무도 믿지를 않았고 역시 믿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힌 것 같았다.


회사 내에서는 이번 인사가 하전무의 전횡을 견제함과 동시에 도양상사는 자기 회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누구든 자기에게 거슬리는 사람은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거라는 얘기들이 돌았다.


경영에 거의 참여를 하지 않았던 민 애리 부사장이 경영 참여를 선언하며 하전무에게 줄을 대고 있던 하사라인은 혼돈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민 애리 부사장이 경영 참여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한 일이 회사의 조직 개편이었고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민 씨 일가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이번 인사도 옥중에서 사장과 민애리 부사장이 직접 결정을 한 내용이었고 하전무도 몰랐을 정도로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하전무도 뒷짐을 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 같은 말단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차장급 이상의 선임 직원들은 민 애리 부사장에게 줄을 서야 할지 아니면 하전무에게 계속 줄을 대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한 판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민 진국 이사님. 본사 복귀와 이사 승진을 축하합니다.”


그동안 하사라인에 끼지 못해서 안달을 하던 인사팀의 정조준 부장은 새로운 조직 개편의 중심이 되어버린 민 씨 일가 쪽으로 바로 줄을 대며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네… 인사팀의 정조준 부장이시네요.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안면이 있던 것처럼 반갑게 악수를 나눴지만 본사를 벗어나 근무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정 부장의 행보였다.


그런 상황에 민 씨 일가 중 한 사람인 민 진국 부장이 이사로 승진하여 자기 부서로 왔으니 정조준 부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이 전략적 제휴를 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각 부서장들에게 연락해서 현재 진행 중인 업무 상황에 대한 보고 일정을 잡으라고 통보하세요. 그리고 조직의 안정화가 아주 필요한 상황이던데 인사팀 누구도 전략을 짜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그러잖아도 조직 안정화에 대해서는 민 애리 부사장님 지시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업무 상황 보고 일정만 잡으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역시 듣던 대로 업무 조율 능력이 참 빠르네요… 함께 일하니 나에게 큰 힘이 되겠네요.”


“별말씀을요… 앞으로 민 이사님 필요한 거 말씀만 하시면 바로 정리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부장은 역시 빨랐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듣고 있던 인사팀 직원들은 정 부장의 한발 빠른 변신에 혀를 내둘렀다.


그게 조직이고 그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직원들에게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사장의 경고성 메시지를 확인한 하전무는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 민 애리 부사장의 모든 결정에 대해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 이사님… 이번 생산 전략회의를 진행해 보니 생각한 대로 공장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특히 품질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과거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는 게 보였습니다. 모든 오더가 선적 예정일을 훨씬 지나야 할 것 같은데… 거래선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나도 대략 현장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네. 노후한 기계들도 품질 문제에 한몫을 하는 것 같고… 늦은 얘기지만 화재 보험금으로 새로운 기계로 바꾸었으면 업계 1위는 식은 죽 먹기였는데…”


“일단은 하전무님에게 보고를 드리고 결정을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요새 하전무님 표정도 그렇고 영 불편해 보이던데… 특별한 의견은 없고 말없이 사인만 하고 최종 결정은 민 애리 부사장님한테 하게 하던데…”


“지난번 실적 보고 건도 아무런 말도 없고 그냥 사인만 하고 말더라고요… 예전엔 의견도 주시고 했는데…”


“예전처럼 모든 전권을 행사하기 힘드니 그냥 부사장님한테 넘기는 것 같아… 회사가 앞으로 어찌 돌아갈지 걱정이네… 휴…”


“그렇다고 지금 공장의 상황을 보고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해야지… 전계장 보고서 내용 그대로 일단 하전무에게 먼저 보고를 하고 의견을 구해보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그럼 보고서 두고 가겠습니다.”


“수고했네. 생산과 관련해서 또 다른 일들이 생기면 수시로 보고해 주게.”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들 타이밍을 중요시하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지금은 아무도 결정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끄는 일이 계속 발생하였다.


사장의 부재로 인한 문제이기보다는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결정이 늦어지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고 의외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고 직원들조차 위만 쳐다보며 업무를 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도양 상사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나에겐 이별을 위한 명분이 필요했는데 굳이 내가 나서서 만들 필요 없이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업계의 특성상 창의성이 강조되어야 할 업무들이 민 애리 부사장의 눈에 들기 위한 맞춤형 제안들만 늘어나고 거래선들의 수수료도 점점 늦게 지급이 되기 시작하는 등의 파열음이 곳곳에서 발생하자 거래선들도 하나 둘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 계장님. 홍콩에서 박삼봉이라는 분의 전화 왔어요.”


“아…네… 바꿔주세요.”


“전 계장님… 잘 지내고 계시죠? 어찌 지내시나 전화 한번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야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요새 회사가 하도 어수선해서요. 그런데 어쩐 일 이세요?”


”사실은… 개인적인 일로 전 계장님과 협의를 좀 할까 해서요?”


“아…그러면 오늘 저녁에 다시 통화하면 안 될까요? 사무실에서 개인 일로 통화하기가 좀 그래서…”


“제가 좀 경솔했네요… 사무실이라는 걸 깜빡했네요. 헤헤헤…그러면 오늘 저녁 시간에 집으로 전화를 다시 하겠습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시간 9시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집 전화번호는 아시죠?”


“그럼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시간에 맞춰서 다시 전화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위인 박삼봉 지사장은 늘 나에게 존댓말을 쓰며 대해 주었다.


소개해준 거래선으로부터 꽤 많은 오더를 받아서 한동안 실적 관리에 문제가 없다 했는데 갑자기 개인적인 일로 나에게 상담을 하자 한 걸로 봐서는 무슨 변화가 생긴 게 틀림이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시간은 벌써 퇴근 무렵이 다 되었다.


이 이사는 까딱이 부장들이 사고 친 거래선들 방문하느라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을 예정이기에 일찍 나가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미스 고… 저 먼저 퇴근합니다. 혹시 누가 물으면… 수닐 거래처 만나러 갔다고 하세요. 헤헤헤.”


“알겠어요. 내가 먼저 가려고 했는데… 한발 늦었네요… 잘 들어가요. 호호호.”


일 하기도 싫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이삿짐을 하나도 정리를 못했기에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왔다.


옥탑방으로 올라가기 전에 간단히 저녁을 먹은 후 대충 짐 정리를 끝내니 박 삼봉 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 계장님. 박삼봉입니다. 통화 가능하신 가요?”


“네.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인연이었지만 남에게 해를 줄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개인적인 일이라는 말에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다.


“전 계장님. 그동안 전계장 님 덕분에 실적도 좋고 그래서 목숨줄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회사가 홍콩 지사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네? 아니 갑자기 지사를 왜 철수한데요?”


“아마도… 지금 본사가 상황이 좋지 않거든요. 곧 부도가 난다는 말도 들립니다. 그래서 더 이상 해외지사를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게 생겼습니다. 하하하.”


“저도 요즘 가자섬유가 어렵다는 소문을 듣기는 들었는데… 부도 상황까지 간 거는 몰랐네요.”


“올해 말쯤 최종 결론이 날 것 같은데… 인수하려고 하는 회사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문 닫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그럼 박 지사장님은 무슨 계획이 있으세요?”


“홍콩지사 철수하기 전까지는 좀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개인 사무실을 하나 만들어서 계속 홍콩에 남아 있으려고 해요.”


“오… 좋은 생각이네요. 한국에 다시 오는 것보다는 거기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나중에 사무실 내면 많이 도와주세요. 전계장 님이 원하면 무엇이든 제가 다 하도록 할게요. 하하하.”


“당연하죠.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와드려야죠. 저도 요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면 박 지사장님과 다시 얘기하도록 할게요.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무실 일정 정리되면 다시 한번 연락드릴게요. 잘 쉬세요.”


“네. 박 지사장님도 잘 쉬세요. 또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내가 꿈꾸는 새로운 일을 도와줄 우군을 만나게 되었다.


명분도 충분히 쌓이고 있으니 새로운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할 때가 되었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는 조직생활의 이치를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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