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가슴에 씨를 뿌린다는 건

모태솔로와 첫사랑에 대하여

by 시화


모태솔로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남녀를 뜻하는 말입니다.

종종 모태솔로는 연애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요,

오죽하면 최근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제목의 연애프로그램이 나올 만큼

모태솔로라는 단어의 이미지는 살짝은 답답하거나, 쑥맥의 이미지로 소비되곤 합니다.


처음 만난 남녀는 몇십년을 본인의 방식대로 살아왔으니 당연히 삐그덕거립니다.

서로의 가치관과 생각, 연락 스타일, 하다못해 좋아하는 음식 취향까지

맞춰나갈 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둘 중 하나라도 연애경험이 없다면

서투름에 서로 답답한 상황이 훨씬 더 많이, 자주 연출될 것입니다.


이같은 이유는 모태솔로를 기피하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한 가지 정도를 덧붙이자면,

연애를 먼저 해본 쪽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몇 차례의 연애를 거쳐,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데이트 코스를 짜는 법이라던지

싸웠을 때 유연하게 해결하는 방식을 안다던지,

뭐든 알아서 센스있게 해낼 것 같은 그런 사람을 원하는 것이겠지요.

우스갯소리로, 네가 고치려고 하지 말고 언니들이 고쳐놓은 사람 쓰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듣곤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첫 걸음마는 존재합니다.

날 때부터 걷고 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서툰 발딛음으로 시작해 수많은 넘어짐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반복하며 마침내 뛸 수 있게 됩니다.




초두 효과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아시나요?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의 정보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 초두효과는 첫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가능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이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도나 필요도가 점차 감소하는 것인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계속해서 비슷한 것을 경험할수록 점차 가치가 떨어짐을 의미합니다.

물론 첫사랑 이후의 사랑을 무가치하다고 이야기하거나저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인생에 처음 사랑하는 경험은 이토록 강렬한 인상과 각인을 남깁니다.


첫사랑이 갖는 강점 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밖에 없던 세계에 누군가가 처음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도 큰 문제가 없던 이전까지의 관계와는 다르게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들여다보는 경험은 즐겁지만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과정 속 우리는

자신이 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을 알게 됩니다.

나는 어떨 때 사랑을 느끼는지,

불편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내 안에 숨겨진 결핍과 마음 깊은 곳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 내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과, 상대방이 사랑을 느끼는 방식이 다를 수 있음을 깨달으며

상대를 진정으로 위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마음에 가닿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이전에는 어느 정도 회피해도 괜찮았었지만, 연인 관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정면으로 맞서야 하기에 계속 부딪히고 해결하는 경험이 쌓이며 개인은 점점 더 성숙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의 첫사랑이 된다는 건 그 사람의 가슴에 씨를 뿌리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씨앗을 싹틔우고, 어린 관목이 되고, 큰 나무로 성장해 열매를 맺기까지

나무의 생애 속 모든 성장과정에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결국 누군가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사랑의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이 나라면 그것 자체로도 멋지고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영화 평론가 이동진님은 말했습니다.

첫사랑이 특별한 이유는 삶에서 앞으로의 사랑이 담길 서랍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요.

서툰 손끝으로 함께 만든 첫 서랍은 약간 어색한 모양새를 하고 있더라도 속에는 애정과 진심이 가득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랍은 이후의 사랑들을 품는 소중한 그릇이 됩니다.

소중한 서랍에 걸맞는 안전하고 좋은 사랑을 고르고, 신중히 담으며 담긴 사랑이 다치지 않고 잘 자라나도록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내 곁을 지켜줄 가장 가까운 사람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마음 속 결핍이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완벽한 반쪽'을 찾아 헤메는 여정 중에 있지는 않나요?

상대의 부족한 점이 보이면 쉽게 포기하거나 우리는 짝이 아니었다며 단념하지는 않나요?

상대방이 나의 결핍이나 부족함을 먼저 채워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연약함이 보인다면 내가 먼저 품어줄 줄 알고, 부족해도 감싸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서투름을 받아들여줄 줄 아는 것이 보다 성숙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태도겠지요.


취업 시장에서도 경력직만 선호하는 세상에서, 신입으로 지원했던 우리 모두 야속하다 느꼈을 겁니다.

기적처럼 바늘구멍같은 기회를 잡고 행복한 찰나도 잠시 사회생활의 쓴맛을 느끼며 부딪히고 깨진 첫 경험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었죠.

어쩌면 사랑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감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도 필요합니다.

사랑은 학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를 위한 배려도 해야 하고, 기술도 필요합니다.

기술은 학습으로 발전하기에 사랑이라는 세계에 첫 발을 내딛은 어색하고 서툰 첫사랑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조금 더 관용을 베풀고, 누군가의 처음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준다면

함께 만들어갈 첫 서랍이 더 특별하고 소중해질 거예요.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누군가에게 소중했던 존재로 기억되는 것.

첫사랑은 성공한다는 표현보다 이루어진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그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