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킨 날

by 시화

지난 일요일에는 카페에서 난생 처음으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스무살의 초여름 무렵,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던 어느 카페는 얼음의 개수, 물의 양까지 ml로 맞추어 커피를 내곤 했었다.

우리 카페에서는 특히 수박 주스가 잘 나갔었는데, 언 수박을 해동시키는 초수까지 맞추어 몇 초를 더 해동하거나 얼음을 한 두개만 더 넣어도 사장님이 알 정도였다. 수박 주스뿐만 아니라 모든 음료의 레시피가 밀리리터 단위였으니 사장님의 가게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음료 맛은 정말 좋았고, 그래서인지 우리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많았다.

카페에서 일해본 사람들은 모두 알듯,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아메리카노였다.

아직 어려서 커피 맛을 몰랐던 나는 도대체 쓰고 맛없는 음료수를 무슨 맛으로 먹을까 의문스러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야 시원하니 입가심용으로 그렇다 치지만,

어릴 적 카페에 가면 엄마가 늘 시키던 뜨겁다 못해 입천장이 다 데던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내게 마치 사약과 비슷한 존재였다. 카페에서 일을 하며 주문이 들어오면 성심껏 내곤 했으나, 갓 내려 크레마가 가득한 샷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에 부으면서도 왜 이런 걸 마시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그걸 바닥까지 비우는 어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뜨거운 커피를 시키는 그런 ‘찐어른’ 의 날이 올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의 세계로 영영 가버린 것이겠구나 생각하던 날이 있었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것도 자의로!

그날은 정말 추웠다. 저녁을 먹고 오들오들 떨며 근처 카페로 도망치듯 들어가 메뉴를 고르려는데,

평소 마시던 라떼나 에이드류는 배부를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보통은 차를 주문하는데, 왠지 오늘은 ‘찐어른’이 될 그날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직원분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내 모습이 어색해 괜히 웃음이 났고,

그렇게 내 앞에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놓였다.

처음 마셔본 아메리카노는 생각보다 뜨겁지도, 너무 쓰지도 않았다.

추위에 언 손의 냉기를 거둬가 주었고, 쌉싸름한 커피 향기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고소한 크레마의 맛도 좋았고, 크레마가 사라질라 한 입 두 입 마시다보니 어느덧 잔의 바닥이 드러났다.

주문하며 내심 아직은 커피 맛을 모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섯 살 어린 내가 막연히 생각했듯,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맛을 안다는 건 돌아올 수 없는 어른의 세계로 영영 가버리는 거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뜨겁고 씁쓸한 아메리카노는 생각보다 따듯했고, 생각보다 향긋했다. 그 때는 그렇게 커보였던 것이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럼에도 그 때의 나에게는 다 큰 어른이 할 법할 행동을 하나씩 해나가는 내가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는 카페에 앉아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질 날이 오겠지?

스물여섯이 된 지금 나는 따듯한 아메리카노의 맛을 알아가고 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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