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불행한 이는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다

by 시화

때때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불행을 마주하곤 한다.

그것이 발끝에 걸리는 작은 돌부리건, 넘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거대한 산이든간에 불행은 말 그대로 '행복하지 않은' 것이기에 반갑지 않다.

불행을 마주했을 때 그동안 나는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돌이켜 본다.

더듬어보는 기억들 중에서 제일 어렸던 나는 불행을 만나면 얼어버렸던 것 같다.

당혹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은 굳고, 얼굴은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 뜨거워진 볼 위로 짭조름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선명한 둘째 기억. 나를 유독 못살게 굴던 아이가 있었다.

하지 말라고 화도 내 보고, 나름대로 좋게도 이야기도 해 보고, 선생님께 이르겠다고 엄포도 놓았지만 그 아이는 보란 듯 더 얄궂게 굴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어린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웠다.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나는 더 밝게 지내려 애썼다.

힘이 드는 감정들을 티를 내고 표현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아이에게 너의 괴롭힘이 통했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라 생각해서였을까, 혹은 그 감정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느껴서였을까.

버석해진 얼굴 사이 입꼬리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길, 우연히 마주한 거울 속 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 표정을 짓지 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무표정이 웃는 표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웃는 표정 뒤에 가려둔 나의 진짜 얼굴이 가여워서 억지 웃음은 그만두기로 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불행들은 이따금씩 내 삶에 찾아와 훼방을 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울메이트와 몇 시간씩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장소에 가거나,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마음껏 청승도 떨어보고, 나를 위한 글을 쓴다.

흠.. 지금도 억지 웃음은 이따금씩 짓는 것 같지만, 더이상 불행을 나쁘게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면,

상처를 드러내고 바라보는 것이 내가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치유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그러니 힘들 때 마음껏 힘들어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역설적이게도 삶의 부피를 늘려주는 건 행복이 아닌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다.

최근 읽었던 소설 '모순'에서 마음에 박힌 구절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믿는다. 지금 당장은 너무 아프고 힘들더라도, 거친 파도를 겪고 난 이후 깊어질 눈과 단단한 마음을 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을 겪어볼 수는 없지만, 내가 겪었던 아픔을 통해 다른 이의 아픔에 더욱 깊숙한 위로와 공감을 비출 수 있다 믿는다.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하던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꺼내 바라보아주고,

글로, 내 자신에게 전하는 편지로, 혹은 자서전으로 스스로에게 전하는 따스한 질문의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될 나를 믿는다.

결국 기특해질 불행을 믿는다.


+ 오늘의 내가 응원하고 기도한다 내일의 너의 행복을!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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