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선명했던 것들이 이제는 흐리고

by 시화

시간에는 힘이 있다.

뾰족하고 날카로웠던 마음들이 시간의 길을 따라 굴러가며 뭉툭해지기도 하고,

에일 듯 아팠던 기억들이 흔적도 없이 깔끔히 아물어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는 전부인 줄 알았던 것들,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들도 시간의 흐름 앞에 저절로 공손해지며

별 거 아닌 것 같은 기억이 되는 것을 보며 새삼 놀라는 요즘이다.

어른들이 하는 충고 중

‘나도 네 나이땐 그랬어’ 라는 말로 그때의 감정을 모두가 겪고 흘러가는 지극히 일반적인 감정으로 치부하고,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날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그저 어렸으니까, 그 나이에는 그게 전부인 줄 알았지 하고 넘기기엔 모두 소중한 기억들인데..

언제 만들어 두었는지도 모를 플레이리스트에서,

우리를 대입하며 따라 불렀던 노래들을 마주치면 그날의 내가 스치고,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가끔은 안아주고 싶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품을 내어주는 시간들도 참 좋고.

오글거리는 말들이 가득 담긴 일기장들을 뒤적이며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이 선물처럼 느껴진다.

어느 날에는 습하고 더운 비가 왔었고, 어느 날에는 따듯하게 스미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같은 하늘인데 어느 날에는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벅차오르기도 했었지.

어른이 된다는 건 모든 날이 조금씩 덜 새로워지고,

조금 더 덤덤한 마음으로 하루를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무디어져 가겠지만,

어영부영 지나가는 시간들 속 어제의 내가 만들어 둔 기억들을 우연히 다시 만나는 순간

그 때의 감정은 지금의 일인 양 생생히 곁으로 다가온다.

붙잡고 싶은 날들, 강렬한 빛이 지나가는 순간들, 그 시간 속에 머물면서도 벌써 그리운 날들이 있다.

아껴두다 꺼내볼 마음들을 펼쳐 꺼내놓는 일에 게으르지 말야야겠다.

그래야 오래된 마음들에 언젠가 다시 안길 수 있으니.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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