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에버랜드에 다녀왔습니다.
꿈과 희망의 나라로 불리는 놀이공원에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놀이기구들도 타고, 기린 친구들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이벤트로
에버랜드의 꽃인 퍼레이드를 보고 왔는데요
자리를 잡고 앉으니 반짝반짝한 알전구로 치장한
퍼레이드 행렬이 차례로 입장했고,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옷을 입은 퍼포머들이 빙글빙글 돌며
화려한 축제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퍼레이드는 정말 멋있었고,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봤다면 마냥 신나고 멋있는 광경이었겠으나
지금의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퍼레이드를 보기 전,
동심으로 돌아가 기대되는 마음으로 퍼레이드를 즐기기를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별 감흥이 없어 진심으로 즐기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삶에서의 많은 경험으로 인해 감동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
이제는 감정이 많이 무뎌진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퍼레이드를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가라앉은 마음으로 퍼레이드를 바라보고 있는데,
많은 퍼포머들 사이 한 분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분은 퍼포먼스 카의 한가운데에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어두웠던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부서져라 동동 뛰며 춤을 추는 모습은
밝게 웃는 모습을 상상하게 할 정도로 활기차고 신이 났습니다.
그 분이 연기를 쏠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저 역시 저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퍼레이드를 지켜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의 꿈을 만들어준 건 어른들이구나.
어린 아이이기에 당연한 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꿈 안에는 어른들의 각고의 노력과 숨은 헌신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소녀로 살고 싶습니다.
모든 일에 늘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보며 언제나 처음같은 마음으로 설레고 싶었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첫'이 붙은 단어들이 늘 큰 의미를 차지했던 것 같아요.
첫사랑, 첫눈, 첫번째, 첫만남...
처음은 언제나 설레고 두근거리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다음에 오는 것들은 무디어져 갔고
필연적으로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늘 여린 새잎같은 마음을 바랐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새싹은 여린 새잎을 가지고 있지만,
열매를 맺어내지는 못합니다.
새싹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햇빛의 몫, 때마다 내리는 비의 몫,
작은 쟁기로 뿌리내릴 숨구멍을 만들어주는 작은 벌레들의 몫,
먼저 살아낸 모든 생명들에게 할당된 몫이 모여 새싹을 나무로 만들어 줍니다.
어쩌면 그 분에게 그날 하루는 그저 할당된 일을 해내야만 하는 고된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모여
아이들의 첫 꿈을 만들어주고
그 동심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도 작은 불빛으로 남아있겠지요.
어쩌면 세상살이에 지쳐 무뎌진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그 희미한 기억이 다시금 설렘을 불러일으키고, 저처럼 그 감동을 기대하며 이 자리를 찾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른이라는 것이 때때로 모든 일에 무뎌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슬퍼질 때가 있지만,
누군가의 '첫 꿈'을 지켜주는 것 역시 어른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저는 늘 '첫'을 바랐지만, 사실 그 '첫'이 가능했던 건
수많은 처음을 지나온 어른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순수한 눈빛으로 빛을 만들어내고,
어른들은 그 빛을 받아내는 그림자가 되어주는 것이겠지요.
새싹이 자라 작은 나무가 되고,
작은 나무가 큰 나무가 되어 언젠가 열매를 맺듯이
저 역시 누군가의 꿈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늘 새싹처럼만 머물 수는 없지만,
새잎의 설렘과 고목의 단단함을 함께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요.
어쩌면 그것이 제가 찾던 '처음의 마음'을 이어가는 또다른 방식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