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엔 복숭아를 먹었습니다.
살짝은 가셨으나 아직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더위 탓에 갈증이 나서였는데요,
초여름의 맛이 덜 든 복숭아에 실망한 탓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여름을 지나며 단물이 꽉 차 그런지
오랜만에 먹은 복숭아는 참 맛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면서는
몸통을 감싸는 서늘한 공기를 만났습니다.
자연 바람의 시원한 감각이 너무 오랜만이라,
흠칫 놀랐지만 이내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가을이 온 걸까요,
제게 가을은 반갑고도 아쉬운 계절입니다.
누군가 넌 어느 계절이 좋냐 묻는다면, 저는 늘 모든 계절이 좋지만 겨울은 좀 싫다 대답합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설레는 봄, 울창한 나무 위 매미의 울음이 더운 공기를 가로지르는 여름을 지나
겨울은 그렇게 피어난 모든 것들이 죽음으로 돌진하는 계절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가을은, 저를 겨울로 데리고 가는 짧은 기차 여행인 것 같아요.
더위로 녹초가 된 몸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어주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도 시켜주지만 모든 여행이 그렇듯 끝나고 나면 늘 아쉽고 잠깐이라 느껴지니까요.
그래서 늘 이맘때쯤 되면,
얼른 선선한 바람과 대비되는 따스한 햇살을 쬐며
폭닥폭닥한 소재의 긴팔옷에 파묻힐 날이 오길 바라지만,
실상은 곧 올 두려운 겨울을 무기한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거두절미하고,
한 계절을 지나 옹골차진 복숭아를 먹으며
복숭아는 무엇을 먹고 이렇게 자랐을까 궁금했습니다.
복숭아는 여름을 먹고 자랍니다.
올해 초봄에는 산책하다 복사꽃을 만났었는데요,
이 복숭아에게도 꽃이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투명한 첫 잎이 펼쳐지고, 꽃잎에 주름이 생기고
이내 떨어져 씨방이 생기고
하나의 초록빛 열매로 맺어지기까지
복숭아는 여름의 햇살을 먹으며 크고 둥글어졌을 겁니다.
요란스럽고 쨍쨍한 햇살을 먹고 자라온 복숭아에게는 가을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질까요?
제게도 가을이라는 계절은
천방지축 생명력 가득하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단정하고 차분한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기에 부담스러운가 봅니다.
저는 평생 에너지를 나눠 써야 한다는 계산 없이,
유치하고 뜨겁게만 살고 싶은데 말이예요.
그럼에도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여름이 끝난다고 시간까지 멈추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흘러 겨울이 오고,
그렇게 흐르는 시간을 따라
삶도 계절도 끊임없이 흘러갑니다.
어쩌면 계절이나 삶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흐름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끝이 아니라
겨울은 새로운 봄을 데려올 테니까요.
어제 먹었던 복숭아를 키워낸 나무도
겨우내 나이테를 한 칸 더 넓혀
내년에는 달콤한 열매를 더 많이 맺을 수 있게 되겠지요.
말로는 겨울이 싫댔지만,
겨울에는 겨울만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저는 올해 연말에도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 기대하며
코 시린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즐기고 있을 텝니다.
저는 계절의 변화에 마음까지 마구 흔들리는 사람이지만,
이제부터는 큰 흐름에 집중하려 합니다.
시린 계절에도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속으로 하나둘 나이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저 역시 한 단계씩 성숙해질 테니까요.
이 모든 계절과 흐름을 지나며 더욱 풍성하고 달콤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일은 다가오는 가을을 힘껏 안아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