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는 날들이 이어지면, 그 종착역으로 나는 늘 홀로 떠나는 것을 택했다.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딛고 서있던 땅보다 거대한 바다에서 나의 고민은 한없이 작은 것이 되고,
넘실대는 파도가 걱정과 불안을 저 지평선 끝으로 가져가 줄 것 같다는 마음에 요트에 올랐다.
그렇게 떠난 강릉에서 선장님을 만났다.
그날 이후로, ‘간 김에’가 아니라 요트를 타기 위해 강릉을 자꾸만 찾았고,
어느새 그곳은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나의 가장 따듯한 도피처가 되었다.
유쾌하신 선장님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다.
혼자 온 나를 위해 서툴지만 내 카메라를 잡고 최선을 다해주셨고,
몸소 요트 위에서 포즈를 취하시며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꿀팁도 전수해 주셨다.
남들과는 달랐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선장님의 자유로움이 부러웠고,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셨다는 이야기와,
환상적이었다던 홍해 한 가운데서의 별이 쏟아지던 밤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언젠가는 꼭 그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꼭 요트 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겠다고 가져간 날에는, 선장님이 꼭 조르바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에 충실한 조르바의 모습이 내게는 선장님의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삶을 자신이 원하는 것들로 꾸려내는 능력으로 투영되어 큰 자극이자 환기가 되었으니까!
선장님은 종종 내게 글을 보내주신다.
매일을 살아내며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서 보내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의 삶을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에 대한 내용들도 보내주신다.
그런 선장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한 사람으로서의 선장님의 삶에 공감하게 되고,
세대를 떠나 진정한 친구로서의 이어짐을 느끼곤 한다.
요즈음 나는 책 읽기에 푹 빠져 있는데, 이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거리다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마음에 쏙 드는 구절을 찾았다.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더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 번 걸어보라.
그 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그동안 선장님이 보내주신 글들에 대한 답장 정도 보내는 게 다였지만,
왠지 오늘은 내가 느꼈던 감동을 함께 느끼시길 바라는 마음에 작은 보답 삼아 이 글을 보내드렸다.
선장님은 그동안 수많은 폭풍들을 거쳐왔으니, 자신의 눈도 그렇게 깊어지길 바란다는 답을 보내주셨다.
모든 만남은 내 안에서 별을 이룬다.
내게 찾아오는 수많은 인연들을 따듯한 시선으로 소중히 바라보아야겠다고 되새기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