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 것은 헌 것이 된다

영화 <Blue Valentine> 감상평

by 시화


<블루 발렌타인>은 낡아가는 사랑의 생애에 관한 영화이다.


안 될 이유 백 가지에 억지로 가져다 붙인 될 이유 한 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뜨거웠던 사랑은

낡아가는 살가죽과 함께 어떤 온기조차 간직하지 못한 채 다 식어버린 잿더미처럼 남루해지고, 끝내 소멸한다.





필름과 디지털의 대비


딘과 신디의 처음은 필름으로 기록되었다.

다시 찍을 수 없이 한 롤을 쓰면 거기에서 마무리되는. 돌아오지 않는 청춘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신디와 딘이 사랑을 시작하기로 한 순간 딘의 머리 뒤편으로 들어오는 빛은 속절없이 찬란하고 따듯하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혀진 모양새도 그러하다. 가득한 노이즈에 흔들린 장면들도 많지만, 돌아오지 않는 청춘이라는 이름 하에 불완전한 모든 앵글은 그대로 빛난다.

반면 디지털은 언제든 되풀이해서 찍을 수 있다. 반복되는 매일을 삼각대로 찍은 테이크는 겉으로는 온전해 보이나 모래 위에 지어진 집처럼 아슬아슬하다.


그들은 필름 속에서 사랑의 영속성을 믿고 영원을 약속했으나, 디지털로 찍힌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매일 속 어느새 찬란했던 빛은 가고 푸르게 질척이는 어둠과 권태만이 남았다.






그녀의 얼굴


그녀는 시종일관 얼음에 담갔다 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냉담한 그녀의 얼굴에는 더이상 어느 감정도 표정도 떠오르지 않은 채 이따금씩 한숨만 내쉴 뿐이다.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인지, 그저 자신의 답답함을 표현하는 것인지 모를 말들은 어쩔 수 없는 체념에 가깝다. 노력해보려는 남편의 말과 행동, 심지어 애정 행각조차 귀찮고 부대낀다.


노력할 의지, 지켜낼 의지가 없는 사랑의 첫 모습은 어찌나 간절했었던가.

우리가 도망쳐온 사랑은 어느새 초라해진 얼굴을 하고 있다. 억지로 비워내느라 생긴 커다란 구멍을 메우지도 못한 채,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지도 대단치도 않게 그저 쓸쓸하고 처량하다.





모든 새 것은 헌 것이 된다


삶에서의 생기와 구원을 쫓아 딘을 만났지만, 무차별한 권태의 폭격 속 그 모든 설렘과 새로움은 헌 것이 되었다. 칼에 찔린 듯한 강렬한 아픔이 있다면, 빼내지 못한 가시가 피부 밑에 남아 오래도록 쿡쿡 쑤시는 아픔도 있다.

그들은 더이상 서로를 마주보지 않는다. 신디의 직장으로 찾아온 딘은 대화를 시도하지만, 유리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서로를 마주보며 대화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방향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사소한 거절과 단절의 기억들은 마음 속 가시로 삼켜져 상대방을 향해 뻗친다.


촉망받던 미래 속 닥친 시련에서 딘은 신디의 구원이었다.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그녀는 모순적이게도 완전무결한 사랑을 꿈꾸었지만 어렵게 맺은 사랑의 맹세는 금세 빛을 잃고 만다.

시작될 때는 그 사람만 있다면 뭐든 될 것 같지만, 마칠 때는 그 사람이 없어도 될 이유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

영원한 사랑의 맹세로도 묶어지지 않는 것은 사람의 마음일 테다.






Blue + Valentine


"I feel Blue" 라는 말이 "나 우울해" 라는 말로 쓰이듯 영어권에서 파랑은 우울을 뜻한다.

반면 Valentine은 그 말 자체로 로맨틱하다. 블루와 발렌타인은 대조적인 이미지로 결합되어 있다.

딘과 신디의 결혼식에서 딘은 화사한 하늘빛의 수트를, 신디는 눈부시게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다. 그러나 둘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늘은 어둡고 탁한 푸른빛이며 둘의 옷차림 역시 회기가 가득하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붙어 영화의 제목을 만든 이유는,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병렬적으로 구성한 것과 관련이 있다. 현실에 잡아먹힌 우울한 현재는 Blue, 찬란하게 빛나던 사랑의 시작은 Valentine.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해 보여주는 방식으로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불꽃놀이는 끝났고 푸르고 위태로운 잔불만이 남아 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