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호흡과 긴 호흡의 글이 있다.
나는 꽤 오랜 세월
짧은 호흡의 글을 편식해서 읽고 써냈다.
내 멋대로 붙인 이름이지만,
개인의 삶에서의 단상을 담은 에세이나 산문이
짧은 호흡의 글을 대표한다 할 수 있겠고
명확함과는 거리가 있는, 때로는 모호하다 느껴질 수 있는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이나 평론 등이
긴 호흡의 글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나는 끈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민한 것들을 긴 호흡으로 늘어뜨리고
치렁치렁한 문장과 여러 장의 페이지 속에서
핵심으로 빛나는 보석같은 의미를 군데군데 배치하는 일이 내게는 숨바꼭질같이 느껴졌다.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를 보석을 찾기 위한 과정 속 인내와 불확실함이
이상하게도 늘 겁이 났다. 혹은 참을성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짧은 호흡의 글은 문단 몇 개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게 한다.
대개 삶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에피소드에서 얻은 작가의 통찰이 담기는데,
엇비슷한 타인의 일상을 신선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독자는 자신이 변화될 계기와 동기를 얻으려 한다.
하지만 나아갈 힘을 얻는 날만큼이나,
도저히 괜찮아지지 않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짧은 글을 쓸 에너지를 잃는다.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고무시키고, 일어날 동력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앞에 놓인 내 상황은 초라해지곤 한다. 억지로 글을 쓰고 의미를 찾으려 노력해도 글이 나보다 앞서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허울 좋은 말들이 자격없이 주어진 트로피라 여겨질 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또다시 글 뒤로 숨는다.
짧은 호흡의 글이
독자의 심장에 직통으로 꽂히는 작살이라면
긴 호흡의 글은 넓은 그물을 펴 던지는 것에 가깝다.
짧은 호흡의 글은 주제가 명확하다.
작가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응축시켜서 문단 안에 차곡차곡 눌러담고,
독자는 그 안에서 곧바로 위안이나 공감, 지식과 동기를 꺼내 쥔다.
친절하고, 쉽게 읽히며,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 짧은 글은 분명 강력한 힘을 지닌다.
반면 긴 호흡의 글은 독자에게 여백을 남겨둔다.
그물코를 아무리 촘촘히 짠다 한들 빠져나가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수십, 혹은 수백 페이지를 수놓는 활자의 바다를 만들고,
거대한 그물을 펼쳐 그 안에서 유영하게 한다.
독자에게 정보를 명확히 제시하지 않음으로서,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해석을 건져 올리는 과정에서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한다.
모호하기에, 읽는 이의 수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요즘 긴 호흡의 글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시인이 왜 이 단어를 사용해야만 했는지 궁금해하고
어떻게 이런 낯설면서도 알 것 같은 의미로 배치했을까
그의 머릿속 창작 주머니를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던가,
내가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선택을 되짚으며 비슷한 갈림길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하거나,
영화를 보고 나를 대입해 감상평이라는 명목으로 진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이미 닫힌 결말 속 낯부끄러운 자아와 솔직함을 담는 자유를 누리기도 한다.
꽤 오랜 기간 내게 문학은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확신 없는 내게는 정답같은 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알 수 없는 날들 속,
머무는 마음은 결론이 아닌 사유를 필요로 했다.
긴 호흡 속에 담긴 내 진심과 감정들은 그렇게 숨쉴 곳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