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쓸모

by 시화

글을 쓰는 것이 소화시키는 과정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먹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책을 찾는가?

답은 인간이 질문하는 존재임에 있다.






요즈음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다.

겨울을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이 계절이 외롭지 않은 이유는

예쁘게 내리는 눈과 추위에 꼼짝없이 집에 있는 시간 덕분이다.

폭닥폭닥한 잠옷을 입고,

주광빛의 불빛이 나오는 병아리색 조명을 켜고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는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 중의 하나이다.


얼마 전 '애도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었다.

누군가를 잘 떠나보내는 것이 어쩌면 잘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메세지를 담은 책을 읽으며,

그간의 내 모습을 돌아보고 큰 위로를 얻었다.

그 책을 필두로, 이번 겨울에만 10권 정도의 책을 구입해 읽는 중인데

내가 느낀 독서의 쓸모를 공유하고 싶다.



1.

첫째, 책은 공인된 콘텐츠이다.


어릴 적, 교과서에는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바다의 규모를 넘어서, 거의 정보의 우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지구 반대편의 북극곰 두 마리가 뽀뽀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많은 콘텐츠들을 통해 방대한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특히나 요즘에는 숏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으로 원하는 지식을 빠르게 취사 선택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서점에는 언제나 사람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런 시대에도 굳이 책을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책은 공인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흩어져 있는 지식의 낱알을 모아 체에 내리고,

깨끗한 물에 씻어

한 그릇의 밥을 짓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정제해 연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책은 한 명 이상의 편집과 수정을 거쳐, 필요없는 정보를 골라내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조사 하나, 단어 하나까지 고민해서 만든

'잘 지은 밥 한 그릇'이다.


영상이나 검색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지식의 집합체인 책은 믿을 만한 양질의 컨텐츠다.

모 광고의 비유를 빌려, 인터넷의 정보가 믹스커피라면, 책은 T.O.P다. :)




2.

둘째, 천 권의 책을 읽으면 천 개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짧은 생 속에서, 우리는 한정된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여행으로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조금 더 다채로운 삶을 그리는 사람도 있으나

인간의 삶은 짧고, 연습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살아온 만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의 등장 인물이나 스토리에 자신을 대입해

대신 인생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

영화나 영상 매체는 우리에게 시청각 효과를 주어 직접 보고 듣게 하지만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제동이 걸리기 마련이다.

제작비의 한계로 인해 감독이 상상하는 것만큼의 세트를 만들어내지 못할 수도 있고,

기술력의 한계로 인해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거나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은 상상하게 한다.

때로 우리는 휘황찬란한 cg와 화려한 세트로 만들어진 영화보다,

섬세하게 고른 단어와 비유가 모여 만들어진 한 문장에 생생한 장면을 그린다.

같은 장면이더라도, 글은 우리에게 더 높은 해상도로 세상을 보게 한다.

글은 사람을 상상하게 하기에, 한계 없는 삶을 살게 한다.




3.

셋째, 기회비용이 들기에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책을 읽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재미있는 게 이다지도 많은 세상에서, 흰 종이에 적혀진 검은 글씨의 집합체를

몇 시간 이상 보고 있는 것은 꽤 지루하다 느껴질 수 있다.

또, 요즘의 책은 적지 않은 값을 자랑한다.

책 한 권에 밥 한 끼에 커피 한 잔 정도 마실 수 있는 금액이 들어가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사서 읽기를 꺼린다.


하지만 나는 책을 사서 읽어보라 권유하고 싶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도 좋지만, 돈을 주고 구입하면 내 책이라는 애착이 생긴다.

기회비용을 지불했기에 읽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더 집중해서 읽게 되고, 밑줄을 긋는다던가 필사를 하는 과정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된다.


또 책은 결론에 도달한 사고의 흐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책을 읽는 데에 소요된 시간만큼,

수많은 문장이 모여 한 점의 결론에 도달한 경위와 흐름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는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힌다.

이를테면 0과 1 사이에 있는 소수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고를 세밀하게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더욱 다채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원인에서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독서는 분명 유익이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백단향나무로만 되어 있는 숲은 없다는 격언처럼,

인생이라는 책 한 권 속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이 적당히 버무려져

아름다운 추억 한 페이지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인생에서 풍랑을 만나며,

그 속에서 신에게 질문한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느냐고,

아니면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이 있냐고.


질문하게 만드는 것은 쾌락이 아닌 고통이다.

행복한 자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만족하며 살아갈 뿐

묻는 것은 언제나 불행을 맞닥뜨린 자이다.

더 많이 고통받으면 더 많이 묻는다.

좀 더 절실하게 질문하는 자가 해답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질문을 품을 때,

누군가 먼저 다녀온 길을 찾는다.


그리고 책은 언제나 해답을 준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