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산다는 것

나이테처럼 해가 갈수록 두터워지는 서술

by 시호

가까이 산다는 것.


경민이와는 가까이 산지 8년이 되었다. 1년 1년을 꽉 채운 것은 아니지만 두루뭉실하게 세어봤을 때 이웃으로 지낸지 여덟 해가 되었다. 시작은 고등학교 2년, 이후로 대학교 6년 - 나는 무려 같은 대학을 7년째 다니는 중이다. 가까이 산다는 것은 원하지 않을 때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저녁 약속을 잡았으나 우린 아침을 먹다가 마주쳤다. 학교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은 한 곳뿐이므로. 그는 스타일러에서 막 나온 듯이 다림질 되어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제 막 햇살을 받아 펴지기 시작하는 구겨진 빨래였고. 나는 머리가 까치집을 졌을 때 누르는 용도로만 모자를 쓴다. 약속이 있을 때나 수업에 나갈 때는 꼭 모자를 벗고 생활하기에 모자를 코끝까지 눌러쓴 상태의 나를 그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아침은 중요한 식사다. 하루의 에너지를 꼭꼭 씹어 삼키는 일이기에 혹여나 방해를 받을까 주로 혼자 식사를 하지만 오늘 그를 보니 알은 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룬 맥주를 오늘 사도 괜찮을까요?’라고 연락하는 후배를 어떻게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고 나서는 습관처럼 그의 사무실로 가 커피를 마셨다. 그는 커피를 ‘맛나게’ 내린다. ‘맛나게’ 내린다는 말이 굉장히 중요한데 적법한 절차를 따라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많지만 맛나게 커피를 내리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기 때문이다. 세상이 좋아져 우린 기준으로 삼을 만한 양식을 - 커피 뿐아니라 전분야에서 - 찾기 너무나도 쉬워졌다. 이로 인해 생기는 단점은 모두가 자신의 커피 맛에 권위를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이 빚어낸 것이 아닌 주어진 섬세함은 취향에 있어서 주체적인 행위를 제약한다. 자신이 도달할 수 없는 세밀한 공예를 접했을 때 사람은 그곳에 자신의 색을 칠하는 것에 불경함을 느끼기에. 그렇기에 좋은 레시피는 취향을 길러나가는데에 좋은 스타트가 되기 보다는 제약이 되고 만다. 경민이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권위에 압도되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데 성공한 것 같다. 그는 탐욕스러운 아기처럼 커피 가루를 흘리면서, 어쩌면 게걸스럽게 란 표현이 어울릴 만한 뉘앙스로 커피를 내린다. 그전까지는 커피 생각도 없었는데, 그의 욕망이 뚝뚝 흐르는 핸드 드립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군침을 삼키게 되는 것이다. 카페인을 멀리하는 중이라 처음엔 그에게 차를 부탁했지만 이내 내 몫의 커피도 한 잔 내려주기를 청하게 되었다.

차와 커피를 목 뒤로 넘기며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에 대한 얘기도, 경민이에 대한 얘기도 아닌 이야기들. 그는 최근에 블루보틀 드리퍼를 새로 들였다고 한다. 물빠짐 속도가 다른 드리퍼들에 비해 빠른 편이라 그에 맞춘 레시피를 찾고 있다고 한다. 난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의 화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당돌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신선한 대화들에 대하여. 화자가 화자의 의견이 아니라 자신이 눈여겨 관측한 것에 대해 떠들 때 나는 그 화자를 더욱 이해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들을 귀기울여 듣고 있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섬세한 기술(description)은 일체의 감상을 덧붙이지 않고도 화자가 대상에 지니고 있는 따뜻한 애정을 전달한다.


가까이 산다는 것은 좋든 싫든 서로에 대한 섬세한 기술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이웃끼리는 사계절처럼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을 목격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모른체 할 수도 없다. 그때마다 툭툭 주고 받는 한문장, 한문장이 나이테처럼 쌓여 이루는 두터운 서술은 앙상한 자아를 춥지 않게 해준다. 난 경민이와 따로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까이에 산다. 이는 객관적으로 관측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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