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두르케 1

좋고 나쁜 것에 상관 없이

by 시호

1.

휘뚜루마뚜루


나한테 시계란 단 4종이다.

롤렉스, 까르띠에, 카시오, 세이코.


시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가격 순으로 적은 것도 아니고, 선호하는 순서로 적은 것도 아니다.


롤렉스는 겸양의 자세를 함양할 필요가 있을 때 촬영한다. 쉽게 말하자면 요즘따라 일이 잘 풀리는 친구가 재수 없을 때다. 그가 숨 쉬듯 내뱉는 자랑에 이골이 날 때면 나는 롤렉스 매장에 들린다. 나도 내 근황토크를 하는 겸 일상 사진을 찍어 보내는 데 이때 우연인양 롤렉스 매장이 일부 담기게 찍어 보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도 알 수 있겠지. '나만 잘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 자랑하고 다니는 거구나.' 롤렉스를 쇼핑하는 것 정도야 예사 일일 정도로 돈을 벌지만 자랑하지 않는 친구1 흉내를 내는 셈이다. 겸손으로 친구가 더욱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까르띠에는 관능적이고 싶을 때 바라본다. 지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믿지 못하겠지만 세상엔 나보다 똑똑하고 몸 좋은 청년이 많다. 타국으로 여행 간 여자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을 때, 그리고 그녀가 올린 스토리의 귀퉁이로 훈훈한 청년이 빼꼼하고 있을 때 나는 까르띠에의 카탈로그를 검색한다. 까르띠에의 모델들은 중성적이다. 가녀리고, 우아하며, 단단하다. 그들의 표정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양성구유의 매력을 겸비한 치명적인 연인이 되는 듯하다. 그 준수한 청년이 우락부락해 보인다면 '난 저 이보다 단순히 몸이 나쁜 것이 아니다. 머리가 나쁘면 머리가 고생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더 얇은 팔뚝은 내 깊은 지성을 표상하는 것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매력이 돋보인다면 '저 미는 가짜다. 내가 친히 이 주먹으로 몇 번 얼굴을 두들겨주면 곧장 증발하고 말 아지랑이 같은 허상.'라고 중얼거리며 셀카를 찍는다. 이때 입술은 꼭 다물어야한다. 화보의 모델들처럼 분노와 기쁨 중 미소 쪽에 한걸음 가까운 무표정을 짓고서. 열 장 정도 찍고선 그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그녀에게 전송한다. "오늘은 몇 시쯤 통화할까?"


카시오는 시계 부서질 지도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이 시계 말고 카시오를 차고 나올 걸'하고 후회할 때 떠올린다. 한참 테니스를 치다가, 손목 쪽으로 강스매시가 날라올 때 그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카시오, 카시오, 카시오.' 이미 반응하기엔 늦었다. 카시오의 그 무식할 정도의 내구성이 지금 차고 있는 세이코에 깃들기를 바라며 눈 뜬 채로 죽는다.


세이코는 별로 설명할 것이 없는데 응당 손목 시계가 그렇듯이 왼쪽 손목에 찬다.

매일 보는 사이이기에 별다른 에피소드도 없고 감정도 들지 않는다.


결국엔 시계를 하나만 차는 것 아니냐,

물을 수 있다.

맞다. 하지만 롤렉스를 차야하는데 세이코를 찬 것과 까르띠에를 차야할 때 세이코를 찬 것과, 카시오를 차야할 때 세이코를 찬 것은 엄연히 다르다. 손목을 흘깃 볼 때마다 원래 차야했던 것의 애티튜드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내가 시계를 안 산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현명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난 시계를 4종 모두 소유한 것과 진배없다. 그리고, 원래 손목 하나엔 시계를 하나밖에 찰 수 없다. 시계를 여럿 구비하려는 사람들은 이 명언을 꼭 명심하도록 - 왼손, 오른손에 하나씩 찰 수 있잖아, 하고 습관적으로 반박했다면 스스로 반성하기를.



P.S.

이 글은 이례적이게도 롤렉스와 까르띠에, 카시오, 세이코를 모두 상정하고 작성되었다.

시계를 차고 나올걸, 후회하고 있기에.

불쑥 노트와 펜만 든 채 기숙사 독서실로 나왔다. 세 살 어린 룸메랑 말다툼 중 삐진 걸 보여주겠다고 뛰쳐나온 길이다. 적당히 시늉만 하고 적당한 때에 포근한 내 이불로 복귀하려 했는데 시각을 알 수가 없으니 낙서 같은 글만 끄적인다. 새벽의 독서실은 무척 춥다. 거주를 염두에 두지 않고 삼면을 통창으로 만들었기에 더더욱. 한 사십 분쯤 지났나? 한껏 툴툴대고 나왔거늘 십 분도 안 되어 돌아가면 가오가 죽는데. 입술이 시퍼래져 곱은 손을 매만지며 삐질삐질 들어오면 누가 봐도 추워서 돌아온 모양새지 않는가. 너무 일찍 포기하고 돌아와서 엄마도 눈치 채지 못한 초등학생의 가출처럼 되지 않으려면 족히 1시간 쯤은 뻐겨야한다. 난 손목시계를 찬 사람의 에티튜드로 권태롭게 시간을 때운다.


나이를 스물 여섯 개 먹고서도 이런다. 스물 여섯의 에티튜드는 어디로 갔을까? 후, 페르디두르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까이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