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세장
성인이 된 후 장학금이라는 첫 목표의 달성 이후에 앞으로 순탄할 것만 같던 저의 유학 생활은 더 무거운 고민거리로 가득한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일상에서 즐거움을 못 느끼기 시작한 탓인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걱정인지, 이유 모를 인생의 첫 권태기가 찾아왔죠. 장학금 면접이라는 큰 일을 치르고 나니 다시 학업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지고 일일 아르바이트의 일수도 줄여갔어요.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인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는 날이면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동네 밤 산책을 즐겼습니다.
더위가 조금씩 식어가고, 하늘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옷소매가 길어지기 시작한 그 무렵 나태해져 가는 저를 보면 같은 반이었던 형, 누나들이 나와서 주변 산책이라도 하자며 권유를 했고, 취미로 했던 축구는 형과, 도쿄 시내 산책길과 카페 찾아다니는 일은 누나와 하게 되었어요. 집과 학교, 그리고 아르바이트만 오고 가던 저는 도쿄 온 지 7개월 만에 주변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학교와 직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의 선후배 관계,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인생 선배인 형, 누나를 통해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유학 길에 접어들었던 터라 제 또래의 친구들 보다는 선배들이 많았고 1살 차이의 누나를 제외하면 가까운 관계 중에서는 나이가 제일 적게 차이 나는 선배가 저와 8살 차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인생의 선배, 그리고 형, 누나 정도였지만 저의 부담감과 짐을 덜어주고자 여러 가지 신경을 써주시면서 친동생처럼 대해준 덕분에 가족과 같은 유대감의 관계가 늘어가기 시작했죠.
중간에 연락이 끊기거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불가피하게 도쿄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끈끈한 사이였다는 걸 이제야 체감했어요.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한국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피해 왔지만 어느샌가 마음 편히 속내를 털어놓고 기대는 사람들이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타지에서는 같은 나라의 사람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는 유학 선배와 어른들의 조언이 있었지만, 좋은 인복을 태어난 덕분인지 흔히 말하는 ‘좋은 사람’들로 주변이 가득했어요.